[기고] 고병수 탑동365일의원 원장·한국일차보건의료학회 회장 

지난 12월 5일 원희룡 제주특별자치도지사는 도민과 국민들의 뜻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결단을 내리고 말았다. 비록 중국의 녹지그룹이 운영하는 영리병원이 국내 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으면서 외국인 대상으로만 진료하게 되는 조건부 허용이라지만 원칙을 저버렸으며, 한국 보건의료의 미래에 구멍을 내버린 것이나 다름없다.

제주도의 발표 이후 전국에서 이에 대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는데, 필자는 영리병원 허용에 대한 분명한 반대 의견과 더불어 논란이 되는 부분에 대해 정리하고자 한다.

영리병원은 ‘영리법인병원’이란 뜻으로 영리법인이 의료기관을 개설해서 그 이익을 투자자가 가져가게 한다는 뜻이다. 쉽게 주식회사를 생각하면 된다. 일부 사람들은 지금도 국내 병원이 이익을 내고 있는데 무슨 차이냐고 하겠지만 법인으로서 의료기관은 엄격히 투자와 이익 환수에 대해서 금지하고 있는데, 즉 병원 운영의 이익을 외부 투자자가 취하지 못하게 하고 있는 점이 다르다. 의료의 공공성을 중요시 한 조치이며, 의료기관의 개설 주체에 대한 것과 함께 법으로 정한 것이다.

원래 의료란 것이 어려운 학문이기도 하지만 이와 함께 경제, 사회, 정치, 복지 등과 연결되면 풀기 어려운 실타래가 되고 만다. 그래서 정책마다 팽팽하게 맞서는 양상을 보이기 십상이지만 조금만 파고들어가 보면 자본주의에 대한 환상과 이에 대한 정치적 타협의 산물임을 알게 되어 분노하게 된다. 그 부분들을 짧은 지면이지만 들여다보기로 하자.

영리병원에 대한 환상들

영리병원에 대한 첫 번째 환상은 국가나 지역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가장 시민들에게 먹히는 허언이다. 그 예로 드는 것이 면적은 제주도 절반도 안 되면서 인구는 580만명 정도로 인구밀도가 높은 섬나라인 싱가포르이다. 몇몇 영리병원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싱가포르가 의료 영리화를 통해 국익을 창출하고 있다고 강조하지만 이는 전체를 보지 않고 단면만 보는 협소한 시각에서 나타나는 주장이다.

싱가포르는 나라가 작고 자원이 없어서 금융과 관광자원을 주 수입으로 살아가는데, 영리병원 허용으로 국가의 수입을 올리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싱가포르의 영리병원은 한국처럼 인구 5000만이 넘고, 무역 규모가 OECD 10위에 근접한 나라가 따라가려고 발버둥치는 모델이 아닌 것이다. 더욱이 외국 자본을 들여서 한다는 것은 그 이익이 국내로 얌전히 들어오지 않는다는 문제도 있다.

국가의 부를 늘리는 것이 아니더라도 제주도 지역경제를 살릴 것이라는 환상도 참담한 문제이다. 48병상에 의사 몇 명과 간호 인력 포함 의료진 58명, 행정 인력 76명 등 134명이라는 수치가 지역경제를 살릴 규모인지 묻고 싶다.

게다가 그 인력 중에 제주도민은 몇 명일까? 더 중요한 것은 거기서 이익이 난다고 제주도, 아니 서귀포 시민들에게 온전히 돌아갈 것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물론 근처 편의점이나 식당, 숙박업소 정도는 도움을 받을 것이다. 이렇게 의료의 공공성을 파괴하면서, 제주도의 자연을 망가뜨리면서 지역경제에 성냥불 수준의 도움을 줄 거라면 우리는 지금이라도 당장 걷어치우라고 말해야 한다.

영리병원에 대한 두 번째 환상은 의료의 질, 혹은 의료서비스를 높일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야말로 중대한 오판이다. 그 어느 나라도 영리병원을 통해 그 나라의 의료의 질을 높인 경우는 없다. 이익을 쫓다보니 필요한 인력을 감축해서 의료사고가 나기 쉽고, 환자 관리는 더 형편없다는 게 여러 나라의 경험이다. 싱가포르나 태국은 그러잖아도 의사들이 모자라는 판에 돈을 쫓아 영리병원으로 몰리면서 지역의 의사가 부족해지고 점차 의료의 질이 떨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영리병원에서 간호사를 덜 고용하다보니 환자 관리가 잘 안 되기도 하고, 여러 가지 부실로 유아 사망률이나 입원 환자 사망률이 더 높다는 통계가 있다. 영국의 영리병원에서는 심혈관센터나 응급실, 신생아실 등 비용은 많이 들어가나 수익 창출이 어려운 진료는 안 하고, 고관절치환이나 비교적 쉬우면서 수입이 좋은 것들만 진료내용으로 하고 있다.

 그나마 수술 환자가 합병증이 생기면 다른 병원으로 보내 버리니 응급 환자나 부작용 관리에서 보면 저급한 수준이라고 한다. 미국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비영리 병원들이 시설과 장비, 의료진이 월등히 낫고 좋은 평가를 받지만 영리병원들은 오히려 열악한 수준이다. 그만큼 영리를 쫓아가다보니 학문적 성과나 국민들 만족도에서 떨어지는 것이다.

더 많은 환상과 오해가 있지만 지면 관계 상 마지막으로 영리병원에 대한 환상 한 가지만 덧붙이고자 한다. 이번 녹지그룹의 작은 영리병원이 제주도 더 나아가 국내 보건의료체계에 절대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환상이다. 물론 지금 개설 허가된 녹지그룹의 병원은 규모가 작은 편이다. 하지만 잘 되면 규모를 늘리려고 할 것이고, 다른 지역에서도 영리병원 허용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의사들이나 의료인들이 그 쪽을 쫓아가지 않겠는가? 대한민국이 의사 수 부족 국가이고, 건강보험 보장성이 60%를 겨우 넘는 수준이라는 걸 안다면 그러한 현상은 곧 필수 의료인력 부족을 심화시킬 뿐 아니라 건강보험이라는 울타리를 부수고 민간보험을 통한 영리병원 이용이 늘게 되어 대한민국 보건의료의 기둥인 전국민건강보험이라는 둑에 구멍이 생길 것이다. 그러한 우려가 기우라고 쉽게 얘기하면 안 된다. 잘못된 정책 허용은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말미암아 국민들의 고통을 낳고 말았다는 경험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더 큰 비용 감수하지 않기 위해 영리병원 취소해야

원희룡 도지사는 외국인 진료 중심, 국내 건강보험에 적용 받지 않는 선에서 영리병원을 허용한다고 했지만 건강권에 대한 헌법 가치 및 진료 거부를 불허한 의료법 등을 들고 나오는 녹지병원측과 어떻게 싸울 것인가? 차라리 공론조사위원회의 권고와 제주도민들의 뜻에 따라 영리병원 취소를 결정하면서 지금 비용이 들더라도 훗날의 더 큰 비용을 줄일 생각을 했어야 한다. 그리고 영리병원이라는 얄팍한 술수 보다는 건강한 제주를 만들기 위한 정책을 만드는데 골몰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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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병수 탑동365일의원 원장·한국일차보건의료학회 회장.

국민의 건강은 자본이나 불확실과 거래하는 것이 아니라 원칙을 지키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한 나라의 보건의료는 근본적으로 사회서비스이며 일종의 공공재와 같기 때문에 투자자의 소득 극대화를 위해 지역경제 활성화라느니, 일자리 창출이라는 거짓된 논리로 허상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알량한 영리병원 허용 보다는 우리의 후진적 의료제도를 개선하고 보장성을 더 높이면서 국민 건강을 위해 할 일도 태산인데 말이다. / 고병수 탑동365일의원 원장·한국일차보건의료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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