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도 받아들이지 않은 그들을 위한 이지유의 헌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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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지유 작가는 31일까지 비아아트에서 전시 '돌아오지 않는 배'를 진행한다. 전시장에서 작품 사이에 서있는 이지유 작가. ⓒ제주의소리

이지유 작가, 제일제주인 1세대 다룬 전시 <돌아오지 않는 배>...31일까지 비아아트서

제주 출신 미술작가 이지유 씨의 최근 전시 <돌아오지 않는 배>는 지난 2016년 전시 <유영(遊泳)>과 이어진다. <유영>이 4.3의 광풍을 피해 일본으로 건너가 평생을 살았던 제주해녀 故 양의헌 할머니의 개인사를 조명했다면, <돌아오지 않는 배>는 양 할머니처럼 기구한 운명의 길을 걸었던 ‘재일제주인’으로 확장했다.

이지유 작가는 12월 1일부터 31일까지 제주시 관덕로 대동호텔 1층에 위치한 갤러리 ‘비아아트’에서 개인전 <돌아오지 않는 배>를 연다. 

앞서 말했듯 이지유 작가의 신작은 개인(양의헌)에게 주목했던 시선을 집단(재일제주인 1세대)으로 넓혀, 그들의 역사와 아픔을 비추고자 노력했다.

여기서 ‘노력’이라는 표현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작품 작업을 위해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일본을 수차례 직접 찾아간 수고, 남한·북한·일본 사이에 존재하는 경계인의 설움을 이해하고 예술로 표현하기 위한 고민이다.

작가는 일본 오사카 이쿠노구에 있는 고령의 제주인들을 만날 때까지 박은희 비아아트 대표, 김창후 전 4.3연구소장, 현지 관계자 등 다양한 이들의 도움을 받았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오사카 츠루하시 시장 인근 ‘사랑방’을 찾아갈 수 있었다. 이곳은 재일제주인 1세대들이 모여 지내는 일종의 요양 시설이다.

작가는 일본에서 강동호, 임용길, 송복희 등 1세대를 비롯해 양의헌 할머니의 딸 등을 만날 수 있었고, 경계인으로 살며 감내해야 했던 그들의 아픔과 마주했다.

전시는 이런 현장 취재 과정을 통해 완성된 회화 10점과 사진 6점, 영상 1점을 선보인다. 이 가운데는 증언을 바탕으로 작가의 상상력, 자료를 더해 새롭게 구성한 회화 작품도 눈에 띈다. 낯선 일본에서 살아남기 위해 괴물이 돼야 했던 재일제주인 ‘김준평’을 그린 최양일 감독의 일본 영화 <피와 뼈>(2004)도 영감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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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장 풍경. 왼쪽은 재일제주인 1세대 할머니의 젊은 시절을 그린 작품. 오른쪽은 복시환, 군대환 등 제주와 연관된 배를 주제로 한 작품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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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지유의 작품 <밀항(강동호)>, acrylic on linen(persimmon dye-감물), 2018.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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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지유의 작품 <코리예츠, 만주르, 그리고 군대환>, pencil on paper, 2018. ⓒ제주의소리

특히 전시 제목에도 등장하는 ‘배’는 작품 소재나 주제 전반에 걸쳐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일제강점기 제주와 오사카를 오간 군대환, 해방 초기 제주사회의 부조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복시환 사건 등이 그렇다. 

작가는 전시 소개 글에서 “우리 주변을 가르는 수많은 경계들, 넘을 수 있는 경계와 넘을 수 없는 경계들 사이를 가로질렀던 수많은 배들, 그리고 그 배를 탔던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라고 소개한다.

또 “제주사람들이 겪어야 했던 역사적 특수성을 식민자본주의의 관점에서 바라보고자 했다. 원악도(遠惡島)라 불렸던 변방의 공간, 그로 인한 소통 불능과 수탈의 과정이 이동수단과 식민주의의 발전과 더불어 어떻게 제주라는 심각하게 황폐화했는지, 소통의 어려움과 몰이해가 어떤 비극적 결과를 가져왔는지 담담히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양의헌 할머니의 딸에게 받은 가족사진을 화폭에 옮긴 <해녀 양의헌과 북의 가족>, 강동호 할아버지에게 일본 밀항에 대한 기억을 전해 듣고 상상으로 그린 <밀항> 등 이지유 작가의 전시 작품은 한 점 한 점마다 고유한 역사가 담겨 있다. 그것은 많은 이들의 눈물과 피로 써내려갔지만 애석하게도 점차 잊히는 엄연한 '제주의 역사'이기에 관람객에게 깊은 고민의 기회를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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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지유의 작품 <family reunion, 해녀 양의헌과 북의 가족>, 캔버스에 아크릴, 2018.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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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일제주인 1세대 강동호 할아버지가 기억하는 제주 모습.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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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지유의 작품 <사랑방, 오사카>, c-print, 2018.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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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지유 작가의 영상 작품. 배 위에서 촬영한 영상으로, 여객선을 타고 현해탄을 건넌 재일제주인 1세대들의 심정을 표현한 작품이다. ⓒ제주의소리

박은희 비아아트 대표는 “<돌아오지 않는 배>는 결과만큼이나 작가가 현실 문제에 다가가는 과정이 무엇보다 의미있는 전시”라며 "제주에서 일본으로의 이동, 식민의 수탈, 소통의 부재, 그리고 전쟁으로 이어진 역사의 비극을 작가는 무덤덤한 색채와 객관적인 서사 장면으로 그려낸다"고 호평했다. 

작가는 “이번 작업 과정에서 ‘재일제주인 1세대들의 문제를 가볍게 여기지 말아달라’고 당부한 김창후 전 소장님의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며 “남한, 북한, 일본 어디에서도 받아들이지 않은 그들의 목소리를 세상에 들려줘야 한다는 작가로서의 책임감이 나를 움직였다. 조사 과정이 힘들었고 주제를 예술로 표현하는 방법 역시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절감한다. 한 걸음 더 다가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겠다”고 소감을 남겼다.

이번 전시는 제주문화예술재단이 후원했다.

비아아트 
제주시 관덕로15길 6, 대동호텔 1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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