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낭 2018] 일손 덜고-제주 제대로 느끼는 ‘낭만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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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11월 낭만부자 프로그램 참가자들. 이들은 숙식을 함께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다정한 사이가 됐다. ⓒ 제주의소리

[기사보강=19일 14:12] 서울에서 학습용 가구를 만들던 아들은 3년 전 고향인 서귀포 효돈으로 돌아왔다. 30년만이다. 감귤 수확철 마다 일손이 없어 전전긍긍하는 아버지를 보다 못해 내린 결정이다.

사실 그의 아버지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반복되는 인력난은 제주 감귤농가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문제였다. 거듭된 고민 끝에 생각 하나가 번뜩였다. 공정여행 ‘제주 농부로 살아보기’. 농촌에 장기 체류하며 일손 취약 농가에 노동력을 제공하면서 제주의 자연과 문화를 느끼는 여행.

사회혁신 소셜벤처의 탄생을 뒷받침하는 제주사회적경제지원센터의 2018년 클낭 챌린지에서 최종 4인으로 선정된 김평진(51)씨의 아이디어다. 주변 게스트하우스와의 협업을 통해 현실화 가능성을 찾은 그는 클낭 챌린지를 통해 사업모델을 구체화했고 공정여행 ‘낭만부자’를 운영을 본격화했다. 클낭의 법률, 경영, 특허 등 컨설팅을 통해 꿈꾸던 모델을 완성해나가고 있다.

여든을 앞둔 아버지가 일손을 구하지 못해 난처해하자 떠올린 이 아이디어는 이미 순항 중이다. 올해 가을 10박 11일 프로그램 참가자들은 수확이 가능한 날은 귤을 따고, 비가 내리거나 일정상 수확이 불가능한 날에 이들은 자유여행을 했다. 한 기수가 끝나면 중간에 여행을 갔다가 다음 기수에 참가하는 여행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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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낭만부자' 아이디어를 현실화한 효돈 출신의 김평진 씨. ⓒ 제주의소리

여행자들에게는 기존 감귤 수확 경험자의 2/3 정도를 노동량 기준으로 삼아 부담을 줄였다. 다른 감귤농장에 비해 늦게 일과를 시작하고 일찍 끝내면서도 적정수준의 일당을 제공하는 방식은 효율을 극대화해야하는 경영자 입장에서는 쉽지 않은 선택이다. 그러나 고질적인 인력난을 해소하면서 새로운 대안관광을 제시할 수 있다는 생각에 낭만부자는 점점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소규모 단위로 운영되는 매 기수 프로그램 참가자들은 ‘형님, 동생, 이모’하면서 친구가 된다. 돌집을 개조해 귤밭 앞에 만든 숙소는 제주만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된다. 화목보일러에 쓸 나무도 캐고, 밥도 해 먹으면서 제주농촌의 삶의 양식을 느낄 수 있다.

11월말 만난 이귀완(62, 경기 포천)씨는 공직에서 퇴임한 뒤 “제주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여행을 하고 싶었다”고 신청 이유를 밝혔다. 그는 “귤을 따며 생각을 정리하고, 참가자들과 어울려서 친해지고, 쉬는 날에는 오름을 다니면서 힐링을 하는 느낌”이라며 “훑어보는 관광이 아닌 제주의 문화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이 여행이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들은 받은 일당을 지역에서 다시 소비한다. 얼마 전에는 고사리 맛에 반한 한 참가자가 남원읍 신례리에서 10만원이 넘는 고사리를 구매한 적도 있었다.

일자리사업이나 인력지원사업이 아니라 제주의 가치에 공감하면서 공존하는 여행 프로그램을 통해 고질적인 농촌 인력난을 돌파하고 있는 셈이다.

김평진 씨는 “한 번 여행을 하더라도 제주 특산물인 귤을 수확하면서 제주문화를 배우고 함께 어울리는 기회가 되는만큼 이 모델이 확산됐으면 한다”며 “이들이 실제 지역민들에게 환원되는 소비를 한다는 것도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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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낭만부자의 귤밭과 돌집을 개조한 숙소. ⓒ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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