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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일 공연한 놀이패 한라산의 마당극 <조천중학원>의 한 장면. ⓒ제주의소리

[리뷰] 놀이패 한라산 마당극 <조천중학원>...1987년 창립후 매년 4.3 창작 공연 무대올려

연극도 4.3도 이제야 알아가기 시작한 기자 입장에서 제주 극단 ‘놀이패 한라산’의 존재는 놀라움이다. 1987년 창립해 한 해도 거르지 않고 4.3 창작 공연을 선보였는데, ‘마당극’을 고집하는 사실상 유일한 지역 극단이다. 극 예술로 보나, 4.3 추모로 보나 이같은 열정은 전무후무하다고 할법하다. 올해 4.3 70주년이란 특별한 시점을 맞아, 제주4.3평화재단이 ‘70주년 특별공로상’ 문화예술부문 수상자로 놀이패 한라산을 선정한 것은 당연한 결과라는 평가도 그래서 나온다.

놀이패 한라산의 신작 <조천중학원>(연출 김수보, 극본 김경훈)이 18일 오후 제주문예회관 소극장에서 초연을 올렸다. 극장은 고정 좌석뿐만 아니라 임시로 만든 좌석까지 가득 들어찰 만큼 성황을 이뤘다.

지난 4월을 잠시 돌이켜보자. 문예회관을 중심으로 대대적으로 열린 ‘4.3문화대전’에서 놀이패 한라산은 여러 차례 선보인 레퍼토리 <사월굿 헛묘>를 들고 왔다. 4.3 70주년을 위해 제주 극단 오이가 특별히 제작한 연극 <4통 3반 복층사건>, 실내 공연으로 다시 탈바꿈한 4.3역사집체극 <한라>, 4.3과 유사한 사건 ‘화순탄광사건’을 다룬 극단 '경험과 상상'의 초청 뮤지컬 <화순 1946> 등 변화를 느낄 만 한 여러 작품과 비교하면 다소 힘이 빠지는 모양새처럼 느껴졌다.

그렇기에 올 한 해가 지나기 전에 등장한 신작 <조천중학원>은 개인적으로 더욱 반갑게 느껴진다. 소극장을 꽉꽉 채운 많은 관객들 역시 비슷하게 공감했으리라 짐작해본다.

<조천중학원>은 아시다시피 마당극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는 ‘마당극은 한국 현대에 성립된 연극 양식으로, 한국 전통연희의 공동체적 성격을 계승해 무대와 관객의 적극적이고 집단적 소통과 시공간의 놀이적이고 유연한 운용을 핵심적 특징으로 하는 한국 현대에 성립된 연극 양식’이라고 정의한다.

1970년대부터 90년대 초반까지는 성행했지만, 사회 변화 속에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등장하면서 점차 쇠퇴했다는 평가다. 당연히 2018년 오늘 날에는 더더욱 낯선 공연이다. 

그래서 관객과 무대의 물리적 경계가 정말 ‘코 앞’에 불과하고, 초입부터 관객과 무대가 어우러지는 <조천중학원>의 분위기에 적응하기 까지는 (마당극이 익숙하지 않은 입장에서) 다소 시간이 필요했다.

<조천중학원>은 1946년 3월 문을 열었지만 2년 만에 사라진 실제 학교 ‘조천중학원’을 소재로 한다. 재학생 우승혁(강봉진 역), 신제균(고춘섭), 한송이(부정애), 윤현숙(양인순), 강창훈(이순식) 씨까지 다섯 명이 출연한다.

작품은 조천중학원 역사를 재학생의 시선으로 압축해 보여준다. 일제가 물러가고 새로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포부, 그러나 3.1절 기념대회 발포사건, 총파업 등으로 분위기는 점점 험악해지고 끝내 학교를 떠나 각자의 길로 떠나는 다섯 명. 소책자 표지 설명처럼 ‘4.3의 봄, 창창한 청춘들의 사랑과 혁명의 서사’를 짧고 굵게 그려냈다.

사실 <조천중학원>에 대해 불편하게 여길 사람들도 분명 있다. 실제 조천중학원에 몸 담았던 대표 교사 몇몇(현복유, 이덕구 등)은 극우세력이 쌍심지를 켜고 비난하는 인물이다. 작품 속에서는 ‘덕구 선생’ 같은 대사가 등장하며, 학교가 없어지고 일부 학생이 무장대가 됐다는 것을 암시하는 대사(산에 들어간다)도 나온다. 미군에 대해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내는 연기까지 더하면 ‘빨갱이 학교를 미화하는 공연’이라고 피 토하듯 키보드를 두들길 댓글이 이미 눈에 선하다.

그러나 제주4.3이 단순하게 단언할 수 없는 역사이듯, <조천중학원> 역시 몇몇 실존 인물 행보와 이념의 덧칠을 벗겨내고 바라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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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천중학원>의 한 장면. 제공=양동규. ⓒ제주의소리

혼란 가득했지만 더이상 침략 받지 않고 지배 받지 않는 온전한 독립국가인 ‘우리나라’를 간절히 원했던 시기, 다른 세상과 다른 삶을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이 가득했던 나날, 다시는 만나지 않을 것으로 기대한 적폐 세력(친일파)이 다시 군림하듯 등장하면서 느낀 좌절, 공권력의 이름으로 저지르는 무차별적인 폭력.

이런 역사 속에서 <조천중학원>은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때’ 제주인들의 순수한 갈망은 무엇이었을까? 복잡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당시 혈기 넘치는 청소년, 청년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 마음은 이념과 무관한 새 세상을 원하던 열망이었으리라 상상한다. 물론 실제 역사는 그런 열망이 좌·우익으로 나뉘어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놀이패 한라산은 한반도가 두 쪽으로 나뉘기 전, 일제 지배의 굴레에서 벗어나 당당한 내 나라를 원했던 해방 후 ‘밑바닥 민심’에 주목한다.

항쟁, 폭동, 좌익, 우익...지난 결과를 앞으로 끌어당겨 작품에 색깔을 덧입힐 필요는 없다고 본다. 1945년 8월 15일, 분명 그때 (친일파를 제외한) 모든 제주도민은 환호성을 질렀고, 꿈을 꿨다. 그 꿈은 예측할 수 없는 시대 상황 속에 갈라지고 깨져 끝내 핏빛으로 물들었지만, 분명 한 명 한 명 마음 속에 존재했다. 색안경을 잠시 내려놓고 <조천중학원>을 본다면 잊힌 ‘그 꿈’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연기, 연출, 조명, 음악, 소품 등 다른 작품성을 논하기에 앞서 4.3에 천착해온 놀이패 한라산의 노고는 어느 정도 감안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려운 길을 찾아서 가는 건 쉽지 않은 결심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꼭 말하고 싶은 건, 다양한 배우진 문제다. 작품 속 나이는 10대, 20대인데 실제 배우 나이는 중년을 넘긴다. ‘창창한 청춘’을 연기하는 무대 위 배우를 적응하려면 제법 시간이 필요하다.

조천중학원생들이 ‘올드 보이(Old Boy)’일 수밖에 없는 건, 놀이패 한라산의 고민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마당극으로 4.3의 진실을 부르짖었던 청년들은 어느새 머리가 벗겨지고 주름살이 깊게 패인 아저씨, 아줌마가 됐다. 새로운 동력으로 더욱 흥겹게 마당 위를 뛰노는 놀이패 한라산을 보고 싶다. 

계절의 변화를 적절하게 보여주는 복장, 제주어 특유의 맛을 잘 살려낸 유머, 당시 제주사람들이 불렀던 노래, 콜레라·징용 등 다른 사회 문제까지 짧게라도 언급하는 내용 등이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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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천중학원> 제작진과 배우들. 제공=양동규. ⓒ제주의소리

그에 비해 소박한 라이브 연주, 무대, 연기 모두 ‘날 것’의 느낌이 강한데, 마당극 고유한 느낌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에게는 다소 낯설 수 있다는 생각이다. 군데군데 연기 공백을 채우고, 시간의 흐름을 더 분명하게 구분하는 연출 역시 고민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무엇보다 공연 중 사진 촬영은 주최 측의 승인이 있다 하더라도 극히 제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가뜩이나 작은 소극장에 카메라 연사 소리가 들리면서 작품에 집중하는 데 애를 먹었다. 필요하다면 리허설 때 촬영하는 게 바람직하다. 

‘우린 비슷한 꿈을 꾼 것 같아.’
- <조천중학원> 대사 가운데 일부.
김용철 조천중학원 학생회장이 경찰·서북청년단의 고문 끝에 숨진 뒤, 절망하는 인물 사이로 가장 나이 많은 선배 양인순(배우 윤현숙)이 던진 말이다. 70년 전 조천중학원생들이 꾸던 꿈은 70년이 지난 오늘 날 어디에 있을까? 조금 서투르지만 혼신을 다한 연기를 보며 오래 전 제주도민을 하나로 만든 그 꿈을 만나보자.

<조천중학원>의 남은 공연은 23일 오후 3시와 7시 제주문예회관 소극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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