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성화고 도약, 그 현장을 가다] ①제주고 관광조리과 '일석삼조' 화상영상교육

많은 이들이 특성화고의 위기를 이야기하곤 한다. 특성화고 진학의 주 목적인 취업률이 점차 떨어지면서 전국적으로 진학생이 감소하고 있는 추세다. 산업 기반이 편중된 제주는 지역적인 특성과 맞물려, 지난해 발생한 불의의 사고가 시장을 더욱 위축시켰다. 이제 변화의 기로를 맞아 제주지역 특성화고가 현장을 주목한다. <제주의소리>는 제주에서 가장 오랜 전통을 지닌 제주고등학교 학생들의 사례를 중심으로 새로운 도약의 키워드를 현장에서 찾아본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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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상교육 실습을 하고 있는 제주고등학교 관광조리과 학생들. ⓒ제주의소리
모니터 속의 푸른 눈 셰프는 능숙한 솜씨로 선홍빛 고기를 손질했다. 학생들의 눈동자도 바쁘게 움직였다. 모니터를 응시하랴, 도마 위 식재료를 다루랴 바빴지만 이내 근사한 스테이크 한 접시를 완성시켰다.

제주고등학교 관광조리과 실습실에선 올해부터 타 학교와 차별화 된 특별한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화상 영상 시스템을 통해 해외의 유명 셰프다 직접 요리방법을 사사하는 프로그램이다.

제주도교육청은 지난해 호주 NSW주립 기술전문대학위원회(NSW TAFE)와 도내 특성화고 학생의 직업교육 훈련과 교류, 전문교과 교사의 연수, 훈련과정 개발 등을 함께 노력한다는 내용의 업무협약을 맺었다.

그중 백미는 전문교과 화상교육이다. 올해 3월부터 실시된 교육은 단순히 셰프가 요리방법을 알려주는 것에 그치지 않는, 실시간 소통으로 이뤄진다. 호주 셰프가 학생들의 조리하는 모습을 직접 보며 지시를 내리고, 학생들은 궁금한 점을 직접 물어보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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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상교육 실습을 하고 있는 제주고등학교 관광조리과 학생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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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상교육 실습을 하고 있는 제주고등학교 관광조리과 학생들. ⓒ제주의소리
자연스레 모든 수업 과정은 영어로 진행된다. 취업시장이 제한적일 수 밖에 없는 제주의 지역적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글로벌 취업으로 시야를 넓혔다. 사실상 구호로만 그치곤 했던 '글로벌 경쟁력 향상'을 모색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인 셈이다.

겨울방학을 앞둔 관광조리과 1학년 학생들의 2018년 마지막 조리실습이 진행된 지난 19일, <제주의소리> 기자가 직접 현장을 찾았다. 

학생들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이날 교육은 3학년 선배들이 앞서 배웠던 화상교육을 복습하는 시간으로 진행됐다. 평소와는 달리 영어로 소개되는 레시피에 학생들은 귀를 쫑긋 세웠다.

영상 속 셰프는 스테이크 조리법을 상세히 알려줬다. 레어, 미디움, 웰던 등 고기를 굽는 방법부터 좋은 고기를 고르는 방법, 식감의 차이, 스테이크에 사용할 수 있는 허브 등에 대한 교육이 이뤄졌다.

음식을 돋보이게 하는 가니쉬의 종류도 영양소를 고려해 소개됐고, 최근 고객들의 선호도까지 다뤘다.

1학년 학생들의 경우 화상교육을 처음 접하다보니 보다 전문적인 요리용어를 쉽게 알아듣지는 못했다. 그러나 일선 현장에서 직접 사용되는 단어를 직접 들어보고 되뇌이는 과정은 그 자체로 자양분이 되기에 충분했다.

교육과 언어, 취업 연계까지 '일석삼조'의 효과를 누리는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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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상교육 실습을 하고 있는 제주고등학교 관광조리과 학생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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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상교육 실습을 하고 있는 제주고등학교 관광조리과 학생들. ⓒ제주의소리
평소 요리를 좋아하기도 했고 빠른 취업을 위해 제주고에 진학했다는 강대혁(17) 군은 "공부하는 시간을 아껴서 제 특성을 더 잘 살릴 수 있는 기회가 많다는 점이 정말 좋은 것 같다"며 "생각했던 것보다 학교의 지원이 탄탄하다. 오늘과 같이 외국시장을 목적으로 배우는 프로그램 등이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요리사인 아버지의 등을 보고 어렸을 적부터 요리사로서의 꿈을 키워왔다는 김민석(17) 군. 이미 중학교 시절 한식조리사 자격증을 취득한 김군 역시 해외시장에 포커스를 맞춘 학교의 지원 프로그램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김군은 "사실 육지부에 있는 요리학교로 진학하려다가 잘 풀리지 않았는데, 제주고에도 여러가지 지원프로그램이 잘 돼있어 많이 놀랐다"며 "가능한 한 세계 여러나라를 다녀보며 요리를 배워보고 싶다. 졸업 후 일본에 있는 조리사대학교에 가는 것이 목표인데 이를 위해 방과후 프로그램을 통해 일본어 공부를 하며 JLPT(일본어능력시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단짝친구인 박푸름(17), 윤서진(17) 양은 "고교 진학 전에도 집에서 쿠키를 직접 구워보는 등 요리에 관심이 많았는데, 고등학교에 조리과가 있어서 참 반가웠다. 매 실습이 너무 재미있고 유익해 기억이 생생하다"며 "다양한 자격증을 따고 3학년에는 싱가포르에 가는 것이 목표"라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 화상교육 실습을 하고 있는 제주고등학교 관광조리과 학생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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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상교육 실습을 하고 있는 제주고등학교 관광조리과 학생들. ⓒ제주의소리
이들의 바람대로 제주고 학생들은 취업반이 되면 다양한 해외 교육·취업 연계 프로그램을 선택할 수 있다.

제주에 터를 잡은 람정제주개발 제주신화월드의 본사가 있는 싱가포르에서 어학연수를 받고 1년간 취업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학생들은 현장을 직접 경험하며 취업 계획을 보다 명확하게 세우고, 기업의 입장에서는 검증된 우수 인력을 받아들일 수 있는 윈-윈 효과를 누릴 수 있다.

호주 TAFE와의 협약도 화상교육 선에서 그치지 않고, 직접 교육을 받으러 해당 국가에 체류하는 프로그램을 포함하고 있다. 

국제영어능력 평가시험인 아이엘츠(IELS)를 치뤄 요건을 갖추면 6개월 간 호주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다. 올해초에는 제주도내 전체 특성화고 학생들 중 10명이 이 기회를 얻었는데, 이중 제주고 학생만 5명, 조리과 학생이 3명이었다.

학과 언어수업도 학생들의 취업 계획과 맞물려 진행된다. 영어를 배우더라도 교과서 위주의 인문계고와 달리 회화 위주의 실용영어를 중심으로 이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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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상교육 실습을 하고 있는 제주고등학교 관광조리과 학생들. ⓒ제주의소리
▲ 화상교육 실습을 하고 있는 제주고등학교 관광조리과 학생들. ⓒ제주의소리
제주고 관광조리과 이진현 교사는 "볶거나, 조리거나, 튀기거나, 굽거나, 조리법에 따라 사용하는 단어도 모두 다르다보니 주방에서 사용할 수 있는 단어를 학과 시간에 공부하게 된다. 수능 영어가 아닌 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영어"라고 설명했다.

이 교사는 "사실 새로운 언어를 처음 배우면 겁먹기 마련이다. 졸업한 친구들도 영어가 들리지 않아 애를 먹는데, 화상수업 등 직접 영어로 대화를 나누는 기회가 생기다보니 자신감도 붙고, 면접 점수도 이전보다 높게 나온다"며 "취업프로그램을 적극 활용해 학생들의 능력 개발을 장려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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