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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재성 변호사(오른쪽)가 2018년 11월26일 제주4.3재심사건에 대한 2차 공판을 앞두고 법정에 참고자료로 제출한 1950년 7월1일 미군 촬영 사진에 대해 설명을 하는 모습. ⓒ제주의소리
[신년 인터뷰] 4.3재심 사건 이끈 임재성 변호사...돈 보다 억울함 풀고 싶다는 말에 ‘뭉클’ 
 
“제주도 인구의 10분의 1인 2만5000명 이상이 희생됐습니다. 제주 전지역 300여개 마을, 2만여 가구가 소실됐습니다. 엄청난 비극이 이념과 공권력의 이름으로 자행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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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의 최종 의견입니다. 피고인들에 대한 공소제기의 절차는 형사소송법 제327조 제2호의 법률 규정에 위반해 무효인 만큼 피고인들 전원에 대해 공소기각 판결을 구합니다“
 
2018년 12월17일 제주지방법원 제201호실. 제주4.3 70년 역사상 처음으로 법정에서 국가 권력기관의 공식 사과가 있었다. 당시 그는 담당검사를 마주하며 변호인석에 앉아 있었다.
 
평균 나이 구순인 17명의 생존 수형인들이 법정에서 모든 과정을 지켜봤다. ‘검찰이 무죄를 구형한 것과 같다’는 그의 말에 휠체어에 몸을 맡긴 어르신들은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
 
불가능한 재판이라던 일각의 예상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재심 개시 결정에 이어 검찰의 공소기각 구형까지 이끌어 낸 법무법인 해마루의 임재성(38.변호사시험 4회) 변호사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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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4.3 수형인 생존자들의 변호를 맡은 임재성 변호사(오른쪽)가 2017년 4월19일 제주지방법원 민원실을 찾아 ‘4.3수형 희생자 불법 군사재판 재심청구서’를 접수하는 모습. ⓒ제주의소리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사상 첫 대법원 전원합의체 무죄 판결과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대법원 승소 확정 판결에 이어 4.3 재심사건까지 그는 어려운 길을 마다하지 않았다.
 
임 변호사와 4.3 재심의 만남은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소송을 주도한 ‘제주4.3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가 법무법인 해마루의 장완익 변호사를 찾으면서 부터다.
 
가습기살균제사건과 4·16세월호참사 특별위원장을 맡고 있는 장 변호사는 국가가 지켜주지 못한 이들 옆에서 함께하는 과거사 전문 변호사다.
 
2016년 장 변호사를 따라 제주를 찾았다. 4.3도민연대를 만난 자리에서 재심이 아닌 국가배상소송을 제안했다. 생존 수형인들은 돈보다 누명을 벗는 것이 먼저라며 고개를 저었다.
 
“국가배상과 재판부존재 확인, 재심 세 가지를 두고 고민했습니다. 그때는 국가배상을 생각했었죠. 불법구금을 입증하고 국가차원의 배상을 받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재심을 선택했죠”
 
죽기 전 법정에서 무죄를 확인하고 싶다는 어르신들의 요청에 마음이 움직였다. 역사 자료, 관련 사례, 생존자들의 진술을 모았다. 선배 법조인들의 의견도 들었다. 꼬박 1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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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3월19일 제주지방법원에서 4.3수형인 생존자 재심사건에 대해 첫 청구인 진술을 앞두고 임재성 변호사(오른쪽)가 제주4.3도민연대 관계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제주의소리
제주4.3 70주년을 1년 앞둔 2017년 4월 제주지방법원을 방문해 4.3재심 청구서를 접수했다. 4.3사건 발발 69년 만에 국가를 상대로 한 사상 첫 재판 요구였다.
 
“그 전에도 재판은 열릴 수 있었어요. 전기성(96) 할아버지는 1960년대 재심을 준비했습니다. 전 할아버지가 재심을 요구했다는 기록은 목포형무소 문서에도 남아 있습니다. 양근방(85) 할아버지도 2008년 재심 변호사를 찾아 다녔지만 어렵다는 답변만 들어야 했습니다”
 
실제 재판은 순탄치 않았다. 수형인 명부 외에 재판기록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초유의 재판이었기 때문이다. 법무부와 국방부 등 모든 기관에 관련 자료를 요청했지만 회신은 없었다.
 
재판부도 마찬가지였다. 법원 명의로 국가기록원과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 등에 자료를 요청했지만 재판 기록은 대한민국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사법부가 공식적으로 4.3 재판에 대한 자료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줬죠. 이는 당시 재판이 절차적 정당성을 상실한 채 불법적으로 이뤄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동시에 저희에게는 재판 기록 없이 변호를 이끌어야 한다는 어려움을 재확인하는 순간 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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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3월19일 제주지방법원에서 4.3수형인 생존자 재심사건에 대해 첫 청구인 진술을 앞두고 임재성 변호사가 재판 과정을 설명하는 모습. ⓒ제주의소리
기록은 없지만 기억은 남아 있었다. 치매 증세로 진술을 하지 못한 정기성 할아버지를 제외한 17명의 생존 수형인들은 불법 구금과 폭행 등 아픈 기억을 되살려 70년의 한을 쏟아냈다.
 
4.3에 대한 사상 첫 국가 권력기관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결국 검찰은 생존 수형인 18명 전원에 공소기각을 구형했다. 검찰 스스로 공소절차의 문제점을 인정하는 순간이었다.
 
“2003년 4.3에 대해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의 공식 사과가 있었죠. 2007년에는 입법부인 국회에서 4.3특별법이 개정되면서 수형인도 희생자에 포함이 됐습니다. 그리고 2018년 사법부인 법원에서 생존 수형인에 대한 권리구제 절차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재판은 아직도 진행중이다. 어르신들에게는 내란과 간첩이라는 전과 기록이 여전히 남아있다. 새해 1월17일 역사적인 선고가 예정돼 있다. 고령의 생존 수형인들은 하루 한시가 급하다.
 
“오희춘 할머니는 재심 신청 자체를 가족들에게 얘기하지 못하셨어요. 재판에서 억울함을 쏟아내며 태도도 달라지셨어요. 피해자의 모습에서 이제는 당당한 증언자가 되신 거죠. 18명의 어르신들에게는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이제는 국가가 대답해야 할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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