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섬 숨, 쉼] 딸과 엄마가 사이좋게 나눠먹어

점심시간이 시작되자마자 미리 약속한 네 명의 여고생은 달리기 시작한다. 꽉 움켜잡은 각자의 손안에서는 동전 몇 개가 갇혀 숨 못 쉬겠다고 아우성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여고생 네 명은 택시를 잡아타고 산지천에 있는 보리분식으로 가 떡볶이를 먹고 학교로 돌아온다. 네 명의 손안에 있던 동전들이 제 갈 길을 갔기에 돌아오는 길은 편안하게 주먹을 펴고 돌아온다. 30년도 훨씬 넘은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같은 여고 추억담의 하나다. 택시비가 얼마였는지, 누구랑 갔었는지, 도대체 왜 그렇게 했는지는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다. 그렇게 애써 먹은 떡볶이 맛이 어땠는지도 잘 모르겠다. 다만 작은 일탈이 주는 스릴, 흥분만 마음 한편에 기분 좋게 저장되어 있다.

추억이 아니라 맛으로 떡볶이를 기억하자면 대학시절 추억을 소환해야 한다. 난 바다를 건너 육지에 있는 대학으로 갔다. 당시 서울 아이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야, 정말 한라산에서 공을 뻥 차면 바다에 빠지니?”라는 질문을 하던 때였다. 다시 돌아간다면 비행기 타 본 사람에게만 답하겠다고 멋지게 되받아치겠지만 그때는 그냥 “아니”라고만 했던 것 같다. 

학교 앞 포장마차에서 팔던 서울 떡볶이는 단 맛을 품은 매운 양념장이 되직하게 듬뿍 배여 있었다. 낯선 타지에 올라가 세상과 부딪히며 살던 내게 이쑤시개로 하나씩 찍어 먹던 그 큼지막한 떡볶이는 작은 위안이 되어주었다. 그때의 기억 때문일까, 지금도 난 서울에 가면 포장마차에서 파는 떡볶이를 자주 먹는다.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고향에 돌아와 직장을 다니며 주로 먹었던 것은 국물 떡볶이였다. 시청 앞 분식점에서 팔던 국물 떡볶이는 떡과 야채를 건더기처럼 건져먹다 수저로 한 번씩 떠먹는 국물 맛이 좋았다. 조금 과장하면 맛의 화룡점정. 세월은 흘러 결혼했고 아들, 딸이 생겼다. 아이들과 시청 주변에 있는 떡볶이 집을 자주 찾았다. 그 사이에도 세월은 쉼 없이 흘러 딸이 벌써 내가 졸업한 여고를 다니는 여고생이 되었다. 

지난해 겨울 요맘때, 딸과 함께 제주시내 웬만한 떡볶이를 다 먹어 보았다. 딸이 방학 보충수업을 신청하지 않았더니 끼니 해결이 온전히 내 몫이 되었다. 1~2월이면 너무 바빠 시간이 별로 없던 나는 간단한 한 끼로 맛있게 먹기 좋은 떡볶이를 추천했다. 딸은 치즈를 듬뿍 얹은 밀떡을, 나는 쌀떡을 좋아했다. 나는 같이 먹는 음식으로 튀김이나 순대를 , 딸은 치즈 스틱을 좋아했다. 하지만 취향 때문에 다투지 않고 서로 양보하며 사이좋게 나눠 먹었다. 먹으면서 우린 맛있는 수다를 떨었다. 학교 일 드라마 패션 사람관계 등등 모든 일상의 삶이 수다의 그물망 안으로 들어왔다. 그 사이 모녀는 몸과 마음이 함께 넉넉해졌다. 올 겨울에는 마음만 넉넉해지고자 둘 다 노력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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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가 졸업하고 현재 딸이 다니는 여고 주변 분식집에서 파는 모닥치기. 제공=홍경희. ⓒ제주의소리

애들이 어릴 때는 자주 집에서 떡볶이를 해 먹었는데 요즘은 일 년에 한 번 정도 해먹는 것 같다. 두어 달 전 갑자기 떡볶이를 준비하는 나를 보고 우리 딸은 웬일이야 하면서도 “양배추 넣지 마” 라는 주문을 잊지 않았다. 멸치, 다시마, 버섯에 냉장고 안을 유랑하는 시든 야채를 넣고 끓인 육수, 꿀과 설탕이 황금 비율로 들어간 고추장 양념, 어묵과 삶은 계란까지는 다 동의하는데 양배추에서 잠깐 실랑이. 그래도 만드는 사람 마음대로이기에 이번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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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취향대로 양배추를 듬뿍 썰어 넣었다. 잠깐 입을 삐죽이던 딸이 그래도 엄마가 만든 떡볶이가 맛있다고 덕담을 해주었다. 재료만 좋으면 누구나 맛있게 할 수 있는 떡볶이지만 딸에게는 ‘엄마만의 손맛’이라고 자랑했다. 

기왕에 떡볶이 말이 나왔으니 겨울이 가기 전에 한 번 더 집에서 해먹어야겠다. 이번에는 양배추도 듬뿍 썰어놓겠지만 스르르 녹는 치즈도 아낌없이 넣어 딸과 사이좋게 나눠 먹겠다. / 홍경희 제주교재사 대표( https://blog.naver.com/jejubaramsu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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