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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4.3 재심 사건을 이끈 양동윤 제주4·3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 대표가 소송 배경과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인터뷰] 양동윤 4.3도민연대 대표 “4.3역사 정의 실현된 날”...수형인 12명 추가 재심 청구
 
1999년 9월15일 당시 국민회의 제주4.3사건 진상규명특별위원회 부위원장이던 추미애 국회의원이 정부기록보존소 부산지소 지하서고에서 발견한 4.3수형인 명부를 언론에 처음 공개했다.
 
미군정 보고서와 구술 자료로만 알려져 왔던 군법회의의 실체가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대토벌 작전으로 죽은 줄 알았던 사람들이 군사 재판을 받아 교도소로 끌려간 사실이 드러났다.
 
양동윤 제주4·3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4.3도민연대) 대표는 수형인 명부를 토대로 이듬해부터 전국 형무소 순례를 시작했다. 인천과 전주, 목포, 대구, 마포형무소까지 10년간 곳곳을 누볐다.
 
역사적 사실과 구술을 토대로 자료를 발굴하며 사람들을 만났다. 이 과정에서 수형 생활을 경험한 생존자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양 대표가 확인한 생존 수형인만 40명에 달했다.
 
생존자 대부분이 팔순을 넘긴 나이였다. 서둘러 채록 작업을 시작했다. 그 사이 8명이 세상을 떠났다. 고인들이 남기고 간 자리를 컸다. 빈 자리는 억울함과 70년의 한으로 채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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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4.3 재심 사건을 이끈 양동윤 제주4·3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 대표가 소송 배경이 된 4.3수형인명부를 설명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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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수형인명부에 적힌 생존 수형인 부원휴의 기록. 부원휴 할아버지는 4.3당시 제주농업학교 5학년 학생이었다. 집으로 가던 길에 군인에게 끌려가 고문을 당했다. 1948년 1차 군법회의에서 내란죄로 징역 1년을 선고 받았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어느 날 현창용(88) 어르신이 날 찾아왔어. 재판을 받게 해달라고 하시더군. 죽기 전에 법정에서 억울함을 풀고 싶다고. 20년 감옥살이를 지울 수 있겠나. 그래서 하자고 했지. 내가.”

대답은 했지만 벽이 높았다. 공소장과 판결문이 없이 재심 청구에 나선 사례는 없었다. 여러 법조인에게 자문을 구했지만 소송 요건을 갖추지 못해 재심이 어렵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개별 소송 대신 일괄적인 배상과 보상 내용을 담은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4.3특별법) 개정이 우선이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2015년 양 대표는 과거사 전문 변호사인 법무법인 해마루의 장완익 대표를 만나 재심사건 변호를 부탁했다. 이듬해 제주를 찾은 변호인단은 재심이 아닌 국가배상소송을 역제안 했다. 
 
양 대표는 돈보다 누명을 벗는 것이 먼저라며 고개를 저었다. 소송준비에 꼬박 1년이 걸렸다. 법리검토를 마친 변호인단이 2017년 4월 법원에 재심을 청구하면서 역사적 재판이 시작됐다.
    
“수형인명부 발견 당시 소송은 생각하지도 못했어. 생존자를 만나면서 잘못된 공권력으로 인한 피해를 국가기록을 통해 밝힐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지. 생존자들이 살아 있는 역사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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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4.3 재심 사건을 이끈 양동윤 제주4·3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 대표가 소송 배경과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법정에서도 수형 생존인들의 진술과 경험은 재심 선고의 중요 요소였다. 재판부는 2018년 9월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3개월 뒤 검찰은 스스로 공소 기각을 구형했다.

70년 전 군법회의를 거쳐 이뤄진 구금이 부당하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 됐다. 법원도 이를 받아들여 2019년 1월17일 최종적으로 공소기각을 판결했다.
 
공소기각은 형사소송법 제327조에 따라 공소제기 절차가 법률에 위반해 무효일 경우 재판을 끝내는 절차다. 70년 전 공소제기가 잘못됐다는 사실상 무죄 취지의 선고다.
 
“이번 재판은 왜곡된 역사를 바로 잡는 하나의 계기가 될 수 있어. 70년 전 빨갱이, 폭도로 내몰린 죄 없은 사람들의 억움함이 확인된 거지. 4.3역사의 정의가 실현된 거야. 바로 오늘.”
 
소송은 끝이 아니다. 4.3도민연대는 생존 수형인 30명 중 나머지 12명과 함께 다시 재심 절차를 진행하기로 했다. 이중 6명은 현재 제주를 떠나 다른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진척 없는 4.3특별법 개정에도 긍정적인 영향이 미치겠지. 4.3의 전국화도 마찬가지고. 앞으로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첫째도 진상규명, 둘째도 진상규명, 셋째도 진상규명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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