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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 16일 극단 ‘연극공동체 다움’가 연극 <송이섬의 바람>을 마치고 관객과의 인사를 나누고 있다. ⓒ제주의소리

[리뷰] 연극공동체 다움 <송이섬의 바람>

1월 16일 제주 세이레아트센터에서 창단 공연을 선보인 극단 ‘연극공동체 다움’의 연극 <송이섬의 바람>은 꽤 놀라웠다. 

줄거리는 ‘송이섬’이라는 가상 공간을 배경으로 한다. 그곳은 주인공 한소원(황은미 역)의 고향이면서 치매를 앓는 한소원의 할머니가 사는 곳이기도 하다. 

정부는 환경 파괴를 이유로 송이섬을 1년간 폐쇄하기로 전격 결정한다. 할머니 집을 게스트하우스로 개조해 이제야 정착하려 한 주인공은 쫓겨나갈 위기에 놓였다. 송이섬에 추진되는 ‘친환경 테마파크’가 정상 추진되면 계속 섬에 남아있지 않을까 싶어, 테마파크 개발 주민 동의를 받는데 앞장선다. 그러던 중 주인공이 테마파크 부지 내 할머니 집 근처에서 고인돌을 발견하면서 상황은 예상치 못하게 흘러간다.

옛 해녀 작업복을 간직한 할머니, 중국 자본을 등에 업은 친환경 테마파크 등 작품 속 설정을 굳이 꺼내지 않아도 송이섬은 한 눈에 봐도 제주도다. 극본을 쓴 서민우 씨는 섬 폐쇄라는 설정에 대해 실제로 폐쇄 조치했던 필리핀 보라카이 사례를 참고했다고 밝혔다.

앞뒤가 맞지 않는 ‘친환경 테마파크 개발’, 밀려드는 관광객으로 경제적인 이득을 얻지만 정작 섬의 지속가능한 발전에는 무관심한 주민들, 취업난·경제난에 내몰려 꿈꾸는 걸 잊어버린 청년 세대. 작품은 난개발로 몸살을 앓는 제주도의 현실을 꼬집으면서, 동시에 오늘 날 청년들이 마주하는 고민까지 함께 조명한다. 

색다른 설정 만큼이나 배우들의 연기력과 호흡은 무척 인상 깊다.

현실에 내몰려 막다른 곳에서 발버둥치는 주인공 한소원 역을 소화한 황은미 씨는 내내 삐딱하면서 까칠한 느낌을 잘 간직했다. 그러나 감정을 쏟아낼 때는 180도 돌변하면서 무대를 장악했다. 극 중에서 5개가 넘는 단역을 소화한 현슬기 씨는 배역마다 똑 부러지는 연기로 작품 속에 녹아들었다. 나머지 배우들도 관객 입장에서 볼 때 빈틈이나 실수가 특별히 기억나지 않을 만큼 좋은 연기력을 선보였다. 자칫 작위적으로 느낄 만 한 배우들 간의 계획된 주고받는 합은 매끄러웠고, 극 구석구석에 담긴 작은 구성들도 흥미로웠다.

극 전체로도 볼 때, 빠른 진행으로 흐름을 이끄는 초반부와 내면 연기 등으로 갈등을 표출하는 후반부를 적절히 조율하는 모습은 ‘이게 창단 공연 맞나’라는 놀라움이 저절로 들게 했다. 무대 장치들을 자연스럽게 극에 녹여내며 사용하는 여유도 빼놓을 수 없다.

주인공이 자신의 고민을 토로하면서 일상 언어와 마치 고전 낭독 같은 언어를 함께 사용하는 모습이 다소 이질적으로 느껴졌고, 사실상 제주가 배경이지만 제주다움이 희미한 연기는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러나 억지 지적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만큼 완성도가 높았다.

16일 첫 공연을 마치고 나서 이례적으로 관객과의 만남이 준비됐다. 이 자리에서 연극공동체 다움은 제주에 온 지 1년도 안되는 배우 황은미, 서민우 씨가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황은미 씨는 예전 관광 목적으로 제주에 왔을 때 자연·사람에 대한 좋은 기억을 받아 언젠가 제주에서 살아보겠다고 다짐했고, 6개월 전부터 정착했다고 이야기했다. 그런 황은미 씨가 동료 서민우 씨를 끌고 왔는데, 두 명은 구좌읍 월정리에서 즉석 연극 공연 ‘연극 버스킹’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송이섬의 바람>은 주변 인연을 끌어모아 준비 끝에 완성한 작품이다. 황은미, 서민우 씨가 연극공동체 다움의 단원이고 나머지 홍한별, 최호원, 김아라나, 설창호, 현슬기, 신다영, 성현제 씨는 이번 공연을 위해 특별히 참여한 일종의 객원이다. 

공연이 끝나고 난 뒤, 이들의 실력은 어디서 왔을지 궁금했다. 어렵지 않게 그 배경을 찾을 수 있었는데, 바로 연희단거리패였다. 

연희단거리패는 연극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익히 알만 하고, 모르는 사람도 지난해 연극인 이윤택 씨 관련 ‘미투’로 들어봤을 부산 지역 극단이다. 1986년 창단해 많은 히트작을 남기고 배우들을 양성한 국내 대표 극단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예술감독이었던 이윤택 씨의 단원 성추문으로 지난해 2월 해체됐다. 이 씨는 상습 성추행 혐의로 1심 징역 6년을 선고받고 구속 수감 중이다.

이제야 만천하에 드러난 극단 리더의 불미스러운 일과는 별개로, 연희단거리패의 실력은 자타가 공인한 바 있다. <오구>, <햄릿>, <길 떠나는 가족> 등은 대중적으로 널리 인기를 얻은 흥행작이다. 서양 고전을 한국적인 느낌, 연희단거리패 만의 연기로 재해석했다는 찬사를 받을 만큼 국내 연극계에서 연희단거리패의 존재감은 남달랐다고 알려진다.

<송이섬의 바람> 출연 배우 상당수는 연희단거리패에 속하거나 작품에 출연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특히 연출을 맡은 이승헌 씨는 연희단거리패 배우장을 맡아 극단 해체 직전까지 주연 배우로 활약했다. 황은미, 서민우 씨는 각각 우리극연구소 23기, 20기 출신으로 연희단거리패 작품에 다수 출연했다. 우리극연구소는 이윤택 씨 등 여러 연극인이 1994년에 만든 연기자 훈련·양성 단체다. 이승헌 연출은 우리극연구소 청년배우 훈련과정의 연기 강사로도 활동했다.

이제야 첫 발을 뗀 연극공동체 다움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연희단거리패와 인연이 있다는 것이 전부다. 사실 관계도 모르고 이윤택 씨의 부적절한 행동과 그들을 연결하는 건 섣부르고 잘못된 판단이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있다. 이들 공연에선 연희단거리패 이력을 한 글자도 찾아볼 수 없다. 이해는 되지만 씁쓸한 대목이다. 자신들과 무관한 억울한 오해가 걱정 됐을지 모르겠지만, 실력을 믿고 당당히 정면 돌파하면 어땠을지 한 마디 남겨본다. 

신생 극단 연극공동체 다움이 낯선 제주에서 첫 선을 보인 작품 <송이섬의 바람>. 분명 재미있고 볼 만 한 작품이다. 만만치 않은 내공의 배우들이 만든 무대는 최근 제주에서 쉽게 접하지 못한 경험이었다. 

관객과의 대화에서 황은미 씨는 ‘제주의 더 많은 문제, 역사를 다룰 생각이 있냐’는 질문에 “이번 공연을 준비하면서 느꼈지만 (제주에 대한) 공부가 더 필요해보인다”고 답했다. <송이섬의 바람>이 끝나면 이전처럼 월정리에서 즉석 연기 공연을 펼치며 제주에서 계속 연극의 꿈을 키워가겠다는 황은미, 서민우 씨 두 배우의 행보를 주목해본다.

<송이섬의 바람>은 20일까지 세이레아트센터(서광로 182-6)에서 공연을 이어간다. 평일 오후 7시 30분, 주말 오후 3시다. 관람료는 일반 1만5000원, 학생-청소년 1만원이다.

문의: 010-6630-2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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