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갑생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연구원, 1949년 일본→부산 여객선 영상·문서 발굴

귀향(歸鄕). 

고향 가는 길이라면 누군가는 그리움에 가슴을 설레겠지만, 적어도 1949년 3월 4일 일본 나가사키에서 부산행 배에 몸을 실어야만 했던 제주인들은 공포, 두려움이 앞섰다. 흐릿한 흑백 영상 속 무표정한 얼굴로 검문을 기다리는 사람들. 전쟁을 피해 뿔뿔이 흩어진 오늘 날 시리아, 예멘 난민들이 겹쳐 보인다.

제주4.3의 광풍을 피해 일본으로 피신했던 제주 난민들의 행적을 뒷받침할 영상이 처음으로 발굴돼 관심을 모은다. 전갑생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연구원은 미국 국립문서관리청(NARA)이 보관하고 있던 영상과 미군 문서를 최근 공개했다. 

▲ 1949년 3월 4일 일본 나가사키에서 출발해 부산항에 도착한 여객선 승객들이 나란히 앉아있다. 사진 뒷편에는 검문하는 사람도 보인다. 이 가운데는 일본에서 강제 추방되는 제주도민들도 포함돼 있다. 제공=전갑생. ⓒ제주의소리

영상은 미군이 촬영한 것으로 1949년 3월 4일 일본 나가사키에서 출발해 부산으로 가는 일본 여객선 橘丸(TACHIBANA MARU)호를 담았다. 당시 여객선에는 700명 가까이 탑승해 있었는데, 이 가운데는 한국인 송환자(legal Korean repatriates) 334명도 포함돼 있다. 도쿄, 오사카, 교토, 효고 등 일본 전 지역에서 모은 인원인데 교토가 40명으로 가장 많고, 오사카 35명, 도쿄 30명 순이다. 

관련 내용은 미군 24사단이 생산한 문서에 상세히 담겨있다. 문서는 미군정청 부산항만사령부 등 상부에 전달됐다. 전 연구원은 송환자 334명이 일본에서 강제 추방당한 인원이라고 판단했다. 특히 4.3을 피해 일본으로 밀입국한 제주 출신도 포함돼 있다고 강조한다. 당시 강제 추방 당한 재일한국인의 모습을 담은 영상은 이번이 첫 발견으로 알려진다. 지난 20일 KBS가 최초 보도했고, <제주의소리>도 전 연구원을 통해 영상과 문서를 입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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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군 24사단이 1949년 3월 3일 생산한 문서. 일본 나가사키에서 부산항으로 보내는 강제 추방자(legal Korean repatriates) 334명의 정보가 기록돼 있다. 제공=전갑생. ⓒ제주의소리

▲ 전갑생 연구원. ⓒ제주의소리
전 연구원은 논문 <한국전쟁기 오무라수용소(大村收容所)의 재일조선인 강제추방에 관한 연구>(2009), <오무라 수용소와 재일조선인의 강제추방 법제화>(2015) 등을 발표한 역사 학자다. 현재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에서 ‘한국현대사’ 전공으로 연구 활동 중이다.

저서는 《한국전쟁과 분단의 트라우마 - 새로운 자료, 다른 시각》(도서출판 선인·2011)과 《부산의 도시 형성과 일본인들》(도서출판 선인·2008·공저), 《원자폭탄, 1945년 히로시마…2013년 합천》(도서출판 선인·2012·공저) 등이 있다.

전 연구원은 “영상 속에 나오는 시기만 하더라도 일본에서 외국인으로 등록돼 있지 않은 한국인들은 나가사키현 오무라 수용소로 옮겨가서 추방됐다”며 “그러나 사회·경제적으로 불안한 상황을 피하고자 다시 밀입국하는 상황이 빈번하게 벌어졌다. 제주는 더더욱 그런 경향이 강했다”고 밝혔다.

총 7분 42초 분량의 영상은 전 연구원이 지난해 10월부터 미국 국립문서관리청를 통해 확보한 자료다. 영상 안에는 경찰로 추정되는 단속 인원이 승객 숫자를 세고 물품을 확인하는 장면, 경찰 통제에 성인 남성들이 열을 맞춰 대기하는 장면 등이 담겼다.

전 연구원이 발표한 논문에서 따르면, 남한 미군정은 1946년 2월 19일 법령 제49호에 의거하여 ‘集團歸國者(집단귀국자)’의 해외여행을 금지시켰다. 조선인들의 재입국 시도가 빈번해지자 미군정 외무처는 1946년 5월 15일 법령 72호에 의해 ‘허가 없이는 절대로 일본에 입국할 수 없다’고 공포한다. 전 연구원은 “GHQ(연합국최고사령부)나 남한 미군정은 재일조선인의 재입국 자체를 금지시켜 ‘밀항러시’를 낳은 원인을 제공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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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항에 들어오는 일본 여객선 橘丸(TACHIBANA MARU)호. 제공=전갑생.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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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로 보이는 검문 인력이 승객을 확인하고 있다. 제공=전갑생.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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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객선에서 내려 어디론가 이동하는 남루한 차림의 승객들. 제공=전갑생.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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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항에 내린 아이들의 모습. 제공=전갑생. ⓒ제주의소리

특히 제주 같은 경우, 4.3 당시 적지 않은 도민들이 목숨을 건지기 위해 일본으로 밀입국했다. 그들은 오사카 등지에 터전을 마련해 살아갔는데, 영상 속 강제 추방자 명단에서 오사카가 35명으로 비교적 높은 비중을 차지한 것도 이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전 연구원은 “애초 영상 중심으로 모으는 과정에서 미군정 문서도 발견하게 됐다”며 “일본에서 추방된 시기를 고려해 국내외 기록을 보다 넓게 살펴보면 강제 추방자들의 구체적인 행적도 확인할 수 있다. 계속해서 연구를 이어나갈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김종민 전 4.3위원회 전문위원은 “초토화 작전이 발발하자 신변의 위협을 느낀 도민들은 일본으로 밀항을 시도했다. 이 영상은 그들이 일본 정부에 체포되고 강제 송환된 모습이다. 흡사 오늘 날 전쟁을 피한 시리아, 예멘 난민들과 똑같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또 “구사일생으로 일본에 갔는데, 다시 쫓겨 돌아가는 그들의 심정은 과연 어땠을까? 아마 죽음의 땅으로 다시 돌려보내지는 심정이 아니었을까. 난민은 본국으로 돌아갔을 때 정치적 탄압과 생명의 위협을 받는 경우에 한해 인정받는다. 영상 속 도민들이야 말로 단어 그대로의 난민”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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