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UNESCO)가 인증한 세계자연유산 한라산에는 다양한 야생식물이 자생하고 있습니다. 섬 전체가 한라산의 영역이나 다름없는 제주는 해안 저지대에서 오름과 하천, 곶자왈, 그리고 백록담 정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환경과 지역에 분포하는 야생식물들이 오랫동안 생태계를 이루며 뿌리 내렸습니다. 멸종위기 식물에서부터 지천에 퍼져 있는 야생식물까지 능히 식물의 보고(寶庫)라 할 만합니다. <제주의소리>가 세계자연유산 한라산에 자라는 식물의 가치를 널리 알려 지속적인 보전에 힘을 싣기 위한 ‘세계자연유산 한라산의 식물 이야기’를 카드뉴스 형태로 매월 격주로 연재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세계자연유산 한라산의 식물 이야기] (27) 백서향 (Daphne kiusiana Miq.) -팥꽃나무과-

2019년 1월의 막바지에 추위다운 추위는 아직 오지 않은 것 같은데, 봄은 멀지 않은지 제주의 허파, 곶자왈에서는 백서향 꽃이 피어나고 있습니다. 제주의 봄은 이 꽃향기에서 출발한다고 하는 백서향으로 안내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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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의소리

※ 참고로 제주도의 곶자왈에서 피어나는 백서향은 2013년 제주백서향으로 한국식물분류학회지에 등재되면서 제주백서향이라고도 불리고 있습니다. 다만 아직까지 국가식물표준목록이나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에는 제주백서향으로 등록되지 않아 여기서는 제주백서향이 아닌 백서향으로 소개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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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의소리

2013년에 실린 식물분류학회지 논문을 보면 제주에서 자라는 백서향을 ‘제주백서향(Daphne jejudoensis M.Kim)’이라는 별도의 종으로 구분합니다. 

제주백서향은 꽃받침통과 열편(꽃잎이 펼쳐진 부분)에 털이 없고 긴 타원형 잎을 가진 것으로 백서향과 구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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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의소리

백서향의 속명 ‘Daphne’는 희랍의 여신 이름에서 유래했고, 종소명(種小名)인 ‘kiusian’는 일본 규슈지역에서 처음 관찰됐다는 뜻에서 붙여졌다고 합니다. 1월 쌀쌀한 날씨에도 어김없이 꽃은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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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의소리

원래 자주색 꽃이 피고 상서로운 향기가 난다고 하는 서향나무와는 다르게, 흰색 꽃이 핀다고 해서 ‘백서향’으로 불렸습니다. 그 향기가 천리를 간다는 속설에 천리향으로도 불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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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의소리

여기서 백서향을 노래한 유유님의 시 한 편 들려드립니다.

곶자왈의 백서향
유유

울퉁불퉁 돌무더기 넘고 넘어
얼기설기 덩굴나무 돌고 돌아
곶자왈 깊숙이 숨었건만
영혼을 잡아끄는 향기만은 어쩔 수 없어라

유혹할 맘 없는데
친구 필요하다고 생각한 적도 없는데
왜 자꾸 접근하는가
더 깊이 들어가야겠구나

봄이 되면
아니 봄이 오고 있는 것 미리 알게 되어
본의 아니게
현혹하는 천리향 뿌려야 하니
백서향의 숙명이란 그런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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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의소리

향기가 천리를 간다는 천리향으로 알려진 꽃, 백서향에게는 아름다운 전설이 전해져 내려옵니다. 

이른 봄, 사찰에서 여러 가지 봄단장을 하던 비구니 스님이 단잠에 빠졌는데요, 그야말로 장자의 ‘나비의 꿈(胡蝶之夢)’처럼 나비가 되어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얼마나 지났을까? 깊이 잠이 든 비구니가 향기에 취해 잠에서 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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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서향 미성숙 열매. ⓒ제주의소리

꽃향기에 취해 향기가 나는 곳으로 한없이 걷다보니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게 꿈에서 본 청순한 흰 꽃들이 만발한 무릉도원이었습니다. 천상의 화원은 나비와 벌이 날아다니고, 향기가 가득해 모든 생물들이 행복해하는, 그야말로 극락정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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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의소리

비구니가 잠결에 맡은 기분 좋은 향기를 찾아 처음에는 꽃 이름을 꿈속의 향기로운 꽃이란 뜻으로 ‘수향(睡香)’이라 불렀습니다. 그 후 부처님이 내린 상서로운 향기를 가진 꽃이라 하여 ‘서향(瑞香)’으로 바꿔 불렀다고 하네요. 

중국에 있는 서향은 우리 것과 달라 흰색 꽃이 핀다고 하여 백서향으로 불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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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서향 성숙된 열매. ⓒ제주의소리

가장 일찍 봄소식을 전해주는 백서향의 향기가 가득한 곶자왈을 한 번 방문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백서향과 더불어 봄에 가장 먼저 꽃을 피운다는 길마가지 나무에도 꽃이 피고, 땅에는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광대나물, 냉이 등 많은 식물이 꽃을 피웁니다. 봄은 이렇게 우리 곁에 가까이 와 있다는 것을 식물들이 먼저 알려주고 있습니다. 

꽃말이 ‘꿈속의 사랑’이라고 하는 백서향의 향기가 <제주의소리> 독자 분들 가정에 가득 전해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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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의소리

** ‘세계자연유산 한라산의 식물 이야기’는 한라산국립공원의 협조로 <제주의소리> 블로그 뉴스 객원기자로 활동해온 문성필 시민기자와 특별취재팀이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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