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같은 6년 투병생활 '소설'과 '詩'로 이겨낸 이민선양中 졸업 후 대입검정고시 합격 앞둬..."용기와 희망주는 글 쓸래요"

▲ 한때 희귀병으로 불릴 정도로 6년 동안 '이유모를' 병환에 시달렸던 이민선양.

제주시 노형동에서 DJ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아빠 이명갑씨(49.제주시 노형동)는 막내 딸 민선이(16)를 볼 때마다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인천에서 살던 시절, 초등학교 4학년때 부터 이유없이 병치례를 했던 민선이가 정상적으로 공부는 물론 학교 생활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기 때문. 혹자는 '불치병'이니 '희귀병'이니 억장이 무너지는 소리만 해댔다.

"제주에 내려오기 직전까지도 인하대 병원에서 보름 동안 입원하며 각종 검사를 했지만 병명을 모르겠다고 하더군요. 아이는 죽어가는데 이상이 없다고만 하니 참 미칠 지경이었지요. 한마디로 죽음의 문턱을 드나드는 심정이었지요"(아빠)

6년간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깨끗한 제주에 가면 병이 나아질까"

 이민선의 시 습작 2편

나의 행복
                                             이민선

나는 행복하구나.

밥 세끼 얻어먹을 수 있어..
그 밥 세끼에 사랑이 없다한들
불행할 수 있겠느냐?

나는 먹을 수 있기에 행복하구나.

사랑을 알기에..
유리창에 달라붙은
이슬의 마음을 알기에..

나는 행복하구나.
참 행복하구나.
.........................................................
내 친구
                                               
이민선

내 친구는 눈물을 가진 사람입니다.
내 친구의 눈물은
빗방울이 되어
세상에 소리없이 내립니다
난 그런 눈물을 좋아합니다.

내 친구는 그림자를 가진 사람입니다.
내 친구의 그림자는
큰 그늘이 되어
여름을 소리없이 식혀줍니다.
난 그런 그림자를 좋아합니다.

3년전 "물 좋고 공기 맑은 쾌적한 환경에서 지내면 병세가 나아질 것"이라는 주변사람의 권유에 가족 모두 제주에 내려왔지만 쉬이 병세는 호전되지 않았다.

"보통 아이들보다 대화를 나눠보면 남다르다"는 말을 자주 들었던 민선이였지만 전학을 와서도 쉬도때도 없이 아픈 그를 급우들은 따뜻하게 맞아주지 않았다.

"신성여중 1학년 2학기에 전학을 왔는데 몸이 약하고 잦은 결석을 하다보니 당연히 동급생과 어울릴 수가 없었죠."(아빠)

결국 친구들로 부터 따돌림을 당하던 민선이는 '왕따'를 당할 정도로 혼자만의 '외로운' 시간을 보냈다.

그래도 남을 배려하는 성격을 타고난 탓인지 민선이는 학교일이라면 누구보다 먼저 솔선수범해서 궂은 일을 도맡아 했다.

그리고 2학년에 올라가서는 치열한 경합끝에 '반장'이 됐다. 호감을 보인 숱한 친구들에게 인기를 얻은 탓이었다. 지금도 "학교생활도 즐기며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고 기억할 정도로 즐거운 시간이었다.

하지만 행복한 시간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그래도 졸업은 하자'...결국 고교 진학 기회 놓쳐

1년 동안  병세가 호전되는가 싶더니 결국 지난해 3학년에 진급하자마자 수업 도중 쓰러져 의식을 잃은 후에 병세가 급속히 악화되기 시작한 것.

"지난해 5월 서울대 병원에서 일단 '만성편두통'이라는 진단을 받았어요. '편두통'과 달리 죽고 싶을 정도로 머리가 아프고 고통이 수반되는 것이라는데...정말 무서운 병이라는 걸 그 때 알았지요".(아빠)

'그래도 졸업은 하자'.

학교측의 권유에 의해 등교는 했지만, 학교에서  쓰러지면 데려오고 하는 일을 수없이 반복해야 했다. 그리고 가까스로 올해 초 학교를 마쳤다. 하지만 이미 고입 시험을 볼 시기는 놓친 뒤였다.

시험을 보다가도 쓰러져서 조퇴를 하다보니 당연히 시험 성적은 '0'점 처리가 많았고, 전체 석차는  꼴찌를 맴돌았다.

하지만 올해 3월부터 증세가 다시 나아지기 시작하자 민선이는 스스로 새로운 도전을 시도했다. 인터넷 강의를 통해 대입검정고시를 준비한 것이다.

2개월 반만에 준비한 대입검정고시..."무난히 합격할 것 같아요"

요즘 어느 때 보다 머리가 맑아진 민선이는 날아갈 듯이 기쁘다. 지난 8월 3일 치른 대입검정고시에 당당히 합격할 것 같은 확신이 선 때문이다.

"답안 표시에 실수만 없었다면 합격할 것예요. 무의미하게 가만히 있는 것 보다 뭔가를 도전하고 싶었는데 눈앞에 가장 큰일로 보였던 검정고시를 목표로 덤볐어요. 좋은 결실을 맺을 것 같아 정말 기뻐요."

좋아하던 글쓰기까지 끊으면서 준비한 2개월 반의 시간이었다. 만약  떨어지면 내년 4월이 있다는 생각도 했지만 "막상 공부를 하다보니 욕심이 나더라"는 민선이는 오는 28일 합격 발표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 파란닷컴에 필명 '은행나무'로 연재 중인 소설 '응큼한 그 남자'

포털에 '명랑 로맨스' 소설 연재....10일만에 '인기작가 톱 10'에 올라

갑자기 찾아온 경사는 이 뿐만이 아니다.

알 수 없는 병으로 한때 좋아하던 글쓰기를 중단했던 민선이가 10여일 전 포털사이트 연재소설 코너에 올린 '응큼한 그 남자'란 제목의 '온라인 소설'이  순식간에 인기 소설의 대열에 합류한 것.

지난 10일부터 파란닷컴 연재소설 코너(http://novel.paran.com/series)에 올리기 시작한 그의 소설은 현재 인기연재소설 랭킹 톱 10에 올라 있다. 빠르면 하루에 두편, 늦어도 이틀에 한편씩은 꼭 올린다.

'응큼한 그 남자'는 명랑로맨스로 '사랑과 우정사이를 넘나드는 알콩달콩한 세 남녀의 사랑이야기.

심장외과 레지던트 2년차의 민준석과 한국대 국문과 3학년에 재학중인 당당한 여자 정세영의 사랑 구도에 정세영이 마음에 둔 선배 박정혁이 끼어든다. 현재 11번째 올린 이야기는 막 삼각관계가 시작되는 과정. 만나긴 했지만 서로 사랑을 느낀 단계는 아니다.

"어쩌면 세영은 제 이상향일 수도 있어요. 사랑과 일, 공부 모두 당당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여성상이랄까...."

▲ 중문해수욕장 앞에서.

다음 소설카페에서 수년간 다진 '솜씨' 결실

사실 민선이의 소설은 갑자기 인기를 끈 것은 아니다.

병세가 호전됐을 중학교 2학년 무렵, 민선이는 다음(Daum) 소설카페를 통해 끊임없는 습작을 통해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그 때부터 서서히 인기를 예감하면서 '용기'가 생겼음은 물론이다.

"똑 같은 스토리를 갖고 캐릭터를 바꾸기를 수차례, '대화체'와 '표현' 등을 조금씩 다듬어 나갔어요. 스토리를 전개하는데 보다 치밀함을 더하는 작업을 쉼없이 한 거죠. 그 때 작업한 이야기를 다듬어 파란닷컴에 올렸는데 다행이 좋은 반응을 보이는 것 같아요."

"아직 제가 보기에도 이야기 구성이 굉장히 어색하고 이상해 보인다"는 그는 "앞으로 쓸 이야기는 계속 다듬어 나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삼각관계의 로망스. 나이에 어울리지(?) 않은 그의 성숙한 글쓰기의 힘은 뭘까.

아빠 명갑씨는 "아무래도 어릴적 부터 책을 많이 읽었던게 도움이 된 것 같다"며 "별도로 글쓰기 공부를 했다거나 특별하게 수업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지나치게 생각할 정도로 또래 아이들과는 생각이 달랐어요. 솔직히 (막내가) 가장 큰 걱정이었죠. 지금도 혹시하는 마음에 걱정도 되지만 거의 '이겼냈다'고 생각해요. 글을 천직으로 삼고 싶다고 한 만큼 열심히 격려해주고 지켜줘야 할 것 같아요." 

누구나 그렇듯 여전히 딸을 바라보는 부모의 심정은 늘 염려되는 탓이다.

"누구나 한가지씩은 힘들어...다만 정도의 차이일 뿐"

막내 민선이를 바라보는 아빠와 엄마는 요즘 너무나 행복하다.

졸업과 동시에 대한항공 국제선에서 스튜어디어스로 근무하고 있는 큰 딸과 군대 졸업 후 복학해 '보험계리사' 준비를 하고 있는 둘째, 그리고 인터넷 소설로 인기를 끌고 있는 민선이까지 대입검정고시 합격을 앞에 둔 마당에 남부러울 것이 없다.

"가장 힘들었던 점이요? 단지 전 아팠을 뿐이예요. 늘 엄마와 아빠를 보면 '저보다 더 힘들겠다'는 생각에 오히려 용기를 얻곤 했어요."

소설 뿐만이 아니라 시작(詩作)까지 남다른 재주를 보이고 있는 민선이는 "사실 시가 더 어렵다. 국문학과에 가서 글쓰기에 대해 더 배우고 싶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자신이 겪어왔던 아픔을 공유하고 또 다른 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간절함 때문이다.

"아프고 힘든 것은 누구에게나 있어요. 저 역시 한때 그렇다고 생각했지만...나만 특별히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이기적이라고 생각해요. 누구나 한가지씩은 아프고 힘들다고 해요. 다만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 모두가 평범하거든요."

'아픈만큼 성숙해진' 민선이가 오늘 밤도 늦은 시간까지 컴퓨터 앞에서 자판을 끄적이는 이유다.

베테랑 DJ 아빠의 '애청자'였던 딸 민선이

민선이의 정신적 기둥이었던 아빠 이명갑씨(49.추억의 쉘부르 운영)는 DJ 출신 음악인이다.

고교때부터 음악에 빠진 이후 다운타운가에서 주로 활동을 하다 입대전에 청주MBC의 '별의 빛나는 밤에'를 진행했을 정도로 제법 소문난 베테랑 DJ로 알려졌다.

군대 시절에서도 행정반 근무를 하며 '전우들과 함께'라는 음악프로를 만들어 진행하기도 했다.

잠시 집안사정으로 음악을 중단했다가 10년전 부터 DJ활동을 재계, 3년째 제주에서 DJ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제주MBC의 FM '정오의 희망곡'에서 2년여 동안 매주 수요일마다 '팝스퍼레이드'를  진행한 바 있다.

아빠의 음악 프로를 누구보다 아꼈던 민선이는 또 누구보다 열심히 들었던 든든한 '애청자'였다.

인터넷을 할 줄 모른다는 아빠는 '아날로그', 딸은 누구보다 앞서가는 '디지털 로그형' 인간이다.

짧은 시간끝에 준비한 검정고시의 결과로 가족도 놀라고 스스로도 놀랐다는 아빠는 "한편으로는 다시 아플까 걱정도 돼지만  '거의 이겨냈다'고 생각한다"며 딸에 대한 강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