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 로컬리티즘의 극복과 사회적 약소자의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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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世通, 제주 읽기] (123) 마타요시 에이키, 《돼지의 보복》, 곽형덕 역, 창비,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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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타요시 에이키, 《돼지의 보복》, 곽형덕 역, 창비, 2019. 출처=알라딘.

1.
오키나와 작가 마타요시 에이키(又吉栄喜, 1947~)의 작품집 《돼지의 보복》이 2014년에 작품집 《긴네무 집》이 한국어로 번역 출간된 이후 최근 두 번째로 번역되었다. 모두 일본근대문학연구자 곽형덕의 번역으로 이뤄졌다. 《돼지의 보복》에는 두 작품이 실려있는데, 하나는 1996년 제114회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작품 <돼지의 보복>이며, 다른 하나는 <등에 그려진 협죽도>가 그것이다. 

<돼지의 보복>과 관련하여, 인상 깊게 남아 있는 장면이 있다. 곽형덕과 함께 오키나와를 방문한 2017년 여름, 마타요시의 친절한 배려로 <돼지의 보복>의 무대가 된 마지야섬 곳곳을 작가와 동행하면서 한국에서 머지않아 출간될 <돼지의 보복>에 대한 상상의 지평을 온몸으로 감각했던 것은, 문학과 현실, 문학과 현장, 문학과 작가 등속이 어떻게 조우하고 있는지를 직접 체감하고 배운 소중한 계기였다. 그 무더위 속 땀에 흥건히 적신 티셔츠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당신의 작품 속 주요 공간을 직접 안내해주신 것을 생각할 때마다 국가와 민족을 초월하여 큰 작가의 문학적 품격이 넓고 깊은 것에 감화를 받곤 한다. 

2.
《돼지의 보복》에 실린 두 작품 <돼지의 보복>과 <등에 그려진 협죽도>를 읽으면서, 좁게는 오키나와의 로컬리티와 관련한 오키나와의 삶과 자연에 대해 넓게는 오키나와의 로컬리티에 국한되지 않는 범인류적이면서 세계적인 삶과 문제의식에 대한 작가의 웅숭깊은 면모를 만나게 된다. 

우선, <돼지의 보복>에서 각별히 주목해야 할 오키나와의 민간전승, 가령 풍장(風葬)과 우간 및 우따끼, 유따 등은 오키나와의 정체성과 분리할 수 없는 것으로, 이것은 이 작품의 완성도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핵심이다. 여기서 좀 더 예의주시하고 싶은 것은, 자칫 이러한 민간전승이 오키나와의 현재적 삶과 동떨어진 채 오키나와 과거의 삶을 숭배·미화한다든지, 오키나와를 개별적이고 특수한 섬의 공동체로 스스로를 봉인·폐쇄시킨다든지 하는 일종의 오키나와 로컬리티즘에 갇히는 게 아니라 오키나와의 현재를 살고 있는 사회적 소수자들(작중에서는 스낵바 ‘달빛 해변’의 세 여성)과 아직 본격적으로 사회에 입문하기 전 단계의 청년(류큐대학 신입생)의 삶의 문제의식과 연접함으로써 오키나와 민간전승과 오키나와의 현재가 회통(會通)하고 있다는 작가의 치열한 산문정신이다. 작품의 도입에서 출몰한 돼지의 난장, 이로 인한 돼지의 액막이를 위해 방문한 마지야섬에서 돼지의 음식을 먹은 후 곤혹을 치른 식중독, 이 모든 과정에서 시나브로 각자의 삶을 치유하는 길을 모색하게 되는 ‘달빛 해변’의 여성들과 류큐대학 신입생 쇼오끼찌의 모습은 오키나와가 당면한 삶의 문제뿐만 아니라 인간이 삶의 현실에서 고뇌하고 헤쳐나가야 할 삶의 분투를 보인다는 점에서 오키나와 로컬리티즘을 극복하는 서사적 세계성을 증명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쇼오끼찌가 풍장된 그의 아버지의 유골을 신격화하는, 그래서 아버지가 풍장된 곳을 마지야섬의 또 다른 성소인 ‘우따끼’로 만드는 장면을 접하면서, 다소 엉뚱하지만, 쇼오끼찌는 쇼오끼찌로 표상되는 오키나와 전‘후’ 세대로서 그 이전 세대와 길항(拮抗)할 뿐만 아니라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그 이전 세대를 넘어서 새로운 자기 세대의 삶의 지평을 모색하는 ‘자기 구제’의 통과제의로 읽힌다. 소설에서도 언급되듯, 쇼오끼찌가 “우따끼를 만드는 것은 전대미문의 일”(113쪽)이지만, “쇼오끼찌는 일부러 잘 알지도 못하는 우따끼에 여자들을 데려가기보다 자신의 신이 있는 이 우따끼로 데려오기로 결심”(112쪽)하고 이를 수행함으로써 쇼오끼찌 이전 세대(오키나와 전쟁 체험 세대 및 전쟁의 상흔을 겪고 있는 세대)가 공고히 결탁해 있는 오키나와의 퇴행과 정체(停滯)로부터 벗어나 오키나와의 새로운 세대―이것은 작중에서 쇼오끼찌가 류큐대학 신입생이라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음―가 새롭고 창발적 삶의 의지로서 오키나와의 현재와 미래의 지평을 열어가야 한다는 작가의 서사적 욕망으로 읽힌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 말미에서 스낵바의 여성들이 쇼오끼찌를 두고, “쇼오끼찌는 우리의 소유물이 아니야. 신의 것이야”(125쪽)라고 하는 말의 밑자리에는, 오키나와 전‘후’의 삶을 살고 있는―특히, 이 작품이 1996년에 쓰인 것을 감안해 볼 때, 1995년에 일어난 미군에 의한 오키나와 어린 여자애를 상대로 한 집단 성폭력이 오키나와의 섬의 분노와 투쟁으로 번진 것은 오키나와 전‘후’의 폭력과 상처가 얼마나 오키나와를 억압하고 있는지 단적으로 알 수 있다.―현실에서, 쇼오끼찌와 같은 젊은 신세대들이 오키나와 전‘후’의 고통을 치유해줄 수 있는 새로운 자기 세대의 역할을 담대히 수행해야 한다는 작가의 서사적 의지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말하자면, 쇼오끼찌는 오키나와 전‘후’를 창발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오키나와의 새로운 미래의 전망을 열어갈 무격(巫覡)으로서 서사적 지위를 지닌다고 할까. 

3.
다음으로, <등에 그려진 협죽도>를 읽는 동안 오키나와와 베트남, 그리고 한국을 포괄하는 동아시아를 생각하게 된다. 그의 다른 작품 <긴네무 집>과 <조지가 사살한 멧돼지> 등에서 보인 서사적 문제의식은 <등에 그려진 협죽도>와 포개지면서 한층 풍요로우면서 예각적으로 다가온다. 마타요시의 다른 작품들을 접하면서도 새삼 느끼는 바이듯, 이번 작품에서도 그는 섬세하고 날카롭게 작품을 전개하면서도 문학적 미의식을 결코 놓치지 않는다. 머지않아 베트남 전선으로 가야 할 미군 병사 재키, 재키에게 사랑을 느끼면서 동병상련을 앓고 있는 혼혈 미찌꼬의 관계 속에서 보이는 내면의 풍경은 처연하면서도 아름답다고 해야할까. 

그렇다. 처연한 아름다움. 바로 여기서 마타요시의 작품이 갖는 매혹이 있다. 분명, 오키나와는 미군의 점령지배를 당하고, 미군 기지가 오키나와의 삶을 실질적으로 위협하는, 그래서 오키나와는 미국과 적대적 관계를 유지하는데도 불구하고 마타요시의 시선은 여기에 머무르지 않고 국가와 민족의 문제와 다른 사회적 약소자(弱小者)의 시각에서 인간의 삶을 서사화한다. 그리하여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민족과 국가의 경계를 넘어 사회적 약소자들끼리의 연대를 통한 범인류애를 서사적으로 실천하고 있다. 미군 병사 재키와 오키나와 혼혈 여성 미찌꼬의 관계는 그래서 문제적이다. 이 둘의 관계를 ‘철조망과 꽃’으로 은유하고 있는 것은 매우 적확한 문학적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재키와 미찌꼬의 첫 우연한 만남이 미군 기지의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만났고, 그 철조망 근처에 산재해있는 오키나와의 협죽도와 각종 들꽃. 이 첫 장면에서 철조망 안과 밖에 대해 무심결 나누는 그들의 대화. 오키나와가 베트남전쟁 무렵 베트남을 공격하기 위한 군사 기지로서 살풍경한 공간인데도 불구하고 작가는 이 공간을 에워싸고 있는 사회적 약소자들의 공포와 두려움, 하지만 이곳에서도 서로의 치명적 상처를 보듬어 감싸 안는 그들만의 낭만적 사랑……. 그래서인지, 이 작품을 읽는 동안 한편으로는 전쟁의 긴장감이 감도는가 하면, 또 다른 한편으로는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욱 처연하고 아름답게 보이는 사회적 약소자들의 사랑에 신열(辛熱)을 앓곤 했다. 다시 강조하건대, ‘철조망과 꽃’이 자아내는 서사적 상징과 미의식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는 점을 고백해본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논쟁적 지점을 형성하는 부분이 눈에 띈다. 미찌꼬의 아버지 미군 백인 병사는 한국전쟁에서 죽었고, 오키나와에서 베트남으로 파병된 미군 병사들도 베트남에서 죽었고, 어쩌면 재키도 죽을 수 있다. 이에 대해 작품 속에서는 “임종을 맞고 있는 인간은 무엇을 해도 용서받을 수 있다고 자신을 타일러 온 것이다”(172쪽)고 하는 미찌꼬의 심경이 드러난 부분이 있는데, 이것은 죽음에 직면한 모든 인간에 대해 작가 마타요시 특유의 초월적 철학의 견해로 생각된다. 하지만, 인간은 초월적 존재이기보다 역사․사회적 존재로서 죽음에 직면했을 때 살아 있을 적 모든 잘못을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어쩌면 죽음을 물신화함으로써 삶의 경건성을 무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미찌꼬의 이러한 심경을 접하면서 이 대목을 집필한 작가의 생각이 무척 궁금하다. 여기에는 오키나와의 생사관(生死觀)이 미찌꼬의 심경에 어떻게 투사되고 있는지, 그래서 미찌꼬의 시선으로 그의 아버지와 재키를 이해하는 측면 등을 보다 깊게 헤아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4.
이번에 한국어로 번역된 《돼지의 보복》이 한국의 독자들에게 마타요시 작가의 문학세계를 널리 알리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오키나와 문학이 지닌 또 다른 세계성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는 길을 열었다는 점에서, 이후 또 다른 문제작이 소개되기를 기대한다. 무엇보다 2019년 기해년을 맞이하여, 오키나와의 민간전승과 연관된 제의 및 일상의 문화 곳곳에서 돼지가 작품의 단순한 소재 차원을 넘어 작품의 문제의식과 깊숙이 연관되고 있다는 점에서 오키나와의 로컬리티즘에 갇히지 않는 서사적 장치로 부각되고 있는 점을 눈여겨 본다면 이 작품집을 읽는 묘미가 한층 새롭게 다가오리라.

▷ 고명철 교수

1970년 제주 출생. 광운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1998년 <월간문학> 신인문학상에서 <변방에서 타오르는 민족문학의 불꽃-현기영의 소설세계>가 당선되면서 문학평론가 등단. 4.3문학을 전 지구적 차원에서 새로운 세계문학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연구와 비평에 매진하고 있다.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문학(문화)을 공부하는 ‘트리콘’ 대표. 계간 <실천문학>, <리얼리스트>, <리토피아>, <비평과 전망> 편집위원 역임. 저서로는 《흔들리는 대지의 서사》, 《리얼리즘이 희망이다》, 《잠 못 이루는 리얼리스트》, 《문학, 전위적 저항의 정치성》, 《뼈꽃이 피다》, 《칼날 위에 서다》 등 다수. 젊은평론가상, 고석규비평문학상, 성균문학상 수상. mcritic@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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