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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펠리니를 찾아서> 포스터. 출처=다음 영화.

[장일홍의 세상 사는 이야기] 65. 영화에 대한 영화, 영화 속의 영화 : 메타 영화

최근에 본 외화 <펠리니를 찾아서>의 스토리는 이렇다.

미국 오하이오 주의 한 도시에 사는 세상 물정 모르고 사회 경험도 전혀 없는 20세의 순진하 처녀 루시가 어느 날 우연히 펠리니 영화제가 열리는 영화관에서 이탈리아 영화감독 페데리코 펠리니의 영화 <길>을 보고 감명을 받는다.

루시는 펠리니가 연출한 영화들을 비디오로 섭렵하고 나서 그를 연모하게 되고, 급기야 펠리니를 찾아서 로마로 떠난다. 루시는 로마행 비행기를 탔으나 베로나(이탈리아 북부도시, <로미오와 줄리엣의 무대>에 불시착하고, 거기서 청년 화가를 만나 잠시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펠리니를 잊지 못하는 루시는 다시 로마로 향하다가 이번에도 기차를 잘못 타서 물의 도시 베니스에 도착한다. 베니스에서 한 건달 청년을 만나 그와 함께 파티장에 갔다가 강간당할 위기에서 벗어나, 로마로 펠리니의 집을 찾아간다. 그 집 앞에서 루시는 청년 화가와 재회하고 결국 두 사람은 함께 살게 된다. 그 사이에 73세가 된 펠리니는 사망한다. 

이 영화의 라스트 신은 루시가 옛날의 영화관에서 보았던 <길>을 다시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다. 영화도 슬펐지만 펠리니의 죽음이 그녀를 울게 만든 것이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언제나 슬프다. 내가 겪어봐서 안다.)

이 영화의 감상 포인트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이 영화는 로드 무비이면서 ‘메타 영화’이다. 메타 영화는 영화를 대상화하여 만들어진 영화이다. 말하자면 펠리니의 영화를 인용하거나 패러디화한 것이다. <길>의 백치 소녀 젤소미나와 루시는 유사한 캐릭터(바보 천사?)를 지녔다.

<길>이 떠돌이들의 이야기라면 루시도 길 위에서 떠도는 유랑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를 펠리니 영화에 대한 탐구 내지는 분석으로 본다.

둘째, 루시의 철부지 행동에서 나는 어떤 데자뷔(기시감)을 느꼈다. 이 영화는 루시가 펠리니라는 꿈 또는 환상을 찾아 방황하는 이야기다. 그러니까 펠리니는 꿈 또는 환상의 다른 이름, 상징어란 말이다.

루시의 엄마가 딸을 세상과 절연시켜 온실 속의 화초처럼 키운 것 같이 다자이 오사무의 <사양>에 등장하는 황실의 후예인 가즈꼬의 엄마도 딸을 증류수 같은 인간을 키웠다. 변소에 갈 때도 “엄마는 꽃 따러 간다”고 해서 세상은 온통 무지개빛 환상으로 채색되었다.

가즈꼬도 루시가 펠리니의 영화에 반한 것처럼 우에하라의 소설에 반하여 “저는 당신의 아이를 낳고 싶어요”라고 편지를 보낸다. (모든 작가들은 이처럼 열광적인 독자를 기대하지만 여태껏 나는 단 한 통의 편지도 받지 못했다. 문자메시지 조차 없다.)

또 하나의 기시감은 펠리니의 어록 “환상은 유일한 리얼리즘”이라는 것이다. 펠리니에게 판타지와 현실은 경계가 모호하다. 아니, 의미가 없다. 그것은 마치 장자가 ‘호접몽’에서 읊은 것처럼 환상이 현실이고, 현실이 환상이기 때문이다.

나와 대상의 구별이 없는 ‘물아일체(物我一體)’, ‘만물제동(萬物齊同)’의 세계가 펠리니의 영화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이 영화에서 루시가 펠리니(꿈, 환상)를 찾지 못하고 청년 화가와 재회하는 건, 꿈은 역시 꿈에 불과하다고 현실의 지평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게 인간의 굴레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게 아닐까?

이 영화에서 떠돌이 광대 잠파노가 백치 소녀 젤소미나에게 던지는 대사가 인상적이다. 

“신은 길가에 구르는 돌멩이 하나도 아무 목적 없이 만들지 않는다. 만물은 다 존재 이유가 있다. 너도 마찬가지다.(너를 보내는 것은 신의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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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일홍 극작가.
페데리코 펠리니(1920~1993)는 <길>을 비롯한 많은 영화로 국제영화상을 다수 수상했고, 네오 리얼리즘에 입각한 사실적인 영화에서 몽환적인 환생의 세계를 그린 영화까지 다양한 영화적 상상력과 미장센을 구사한 감독이다. 그는 세계 영화사에 우뚝 솟은 거봉 중의 하나다. 그는 영화사의 도도한 흐름에 떠밀려 가지 않고 오히려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어 놓았다. 새로운 영상 언어로 오직 그만의 독특한 영화 문법을 써내려 갔던 것이다.

최근 코미디 한국영화 <극한직업>이 관객 수 천만 명을 훌쩍 넘어섰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영화도 인상적이지만, 뛰어난 작가주의 영화 <펠리니를 찾아서>는 오랜만에 내 가슴에 불도장을 찍었다. 남 몰래 펠리니의 영혼을 들여다 본 느낌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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