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농장에서 갤러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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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은희의 예술문화 이야기] 36. 중선농원 갤러리 2의 <박주애, 이승미, 이해강> 전시 

수년간 귤을 재배하는 과수원이 여러 가지 용도로 진화해 왔다. 최근 한 방송을 탄 <커피 프린스>의 카페부터 팜파티 공간까지 사람을 끄는 시설을 들여서 변신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 힘든 감귤농사에 비해 수익이 떨어지고 감귤을 따야 할 시기마다 겪는 인력난까지 어려운 현실을 고려하면 이런 소소한 변화는 불가피해 보인다. 

그런 과수원의 변화 중에 눈에 띄는 곳이 있다. 제주시 영평동에 위치한 ‘중선농원’에 들어온 ‘갤러리 2’이다. 중선농원은 제주 토박이에게 익숙한 중선전기 대표가 오래전에 만든 과수원으로 노년을 보내다 아들 부부에게 물려주었고 부부는 가족과 친지의 도움으로 주거공간과 감귤창고를 개조해 문화시설로 만들었다. 중선농원을 물려받은 아들이 바로 현재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로 종종 언급되는 제주출신의 유명인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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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선농원 갤러리2 전경. 제공=양은희. ⓒ제주의소리

갤러리 2도 평범한 갤러리가 아니다. 서울 평창동과 제주, 두 곳에서 운영하는 이 갤러리는 정재호 대표와 부인이 각각 서울과 제주를 맡아 운영하고 있다. 서울의 전시장은 2007년부터 현재까지 국내외 유명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고 제주 중선농원의 전시장은 2016년부터 제주에서 보기 힘든 작가들을 소개하고 있다. 정재호 대표는 최근 미술계에서 주목받는 인물이다. 그는 작년에 동료들과 함께 서울에서 ‘솔로쇼’라는 이름의 아트페어를 선보이며 한국미술시장과 전시의 지형을 바꾸었다. 이 아트페어는 컨벤션 센터나 대관용 미술관에서 여는 아트페어와 달리 영천시장의 폐건물을 활용해 만든 프로젝트형 아트페어로 참가한 갤러리들이 각각 1명을 전시하는 형식을 취했고, 소문을 듣고 온 인파가 좁은 길을 매우면서 도시재생 효과까지 누린 바 있다. 그가 구상과 운영에 참여한 ‘더 갤러리스트’는 서울 청담동의 문화공간에서 살롱식 아트페어로 문화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2019년에도 새로운 형식의 아트페어를 선보인다고 한다.

바쁜 현대인의 삶을 탈출해 느리게 살려는 사람들이 늘면서 제주는 지난 10여 간 다양한 인물들의 성지가 되었고, 갤러리 2의 대표도 그 행렬을 따라 들어와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 그러다가 중선농원 주인의 요청으로 제주에 ‘갤러리 2’을 연 것이다. 귤농장 한가운데 호젓하게 자리를 잡은 갤러리 2는 서울의 번잡한 미술계와는 거리가 멀고 차가 없으면 가지 못할 정도로 접근성이 좋은 편은 아니다. 바로 그 덕분에 하늘과 나무와 풀 사이에서 사람이 만든 예술의 힘이 얼마나 다채로운지 감상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불편한 길을 뚫고 사람들이 찾아와 전시를 보고 바로 옆 건물 카페에 앉아 느리게 시간을 즐기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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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선농원의 카페. 제공=양은희. ⓒ제주의소리

제주에 있는 갤러리로서 제주 작가를 소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1년에 한 번씩 제주 작가를 위해 공간을 제공하고 있는데, 올해 겨울에는 제주 출신의 청년작가, 박주애, 이해강을 선보이고 있다. 이번에 열린 <박주애, 이승미, 이해강>은 두 친구 사이에 이승미가 낀 전시로 젊은 재능들의 우정과 예술에 대한 열정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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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선농원 갤러리 2 전시 <박주애, 이승미, 이해강>. 제공=중선농원 갤러리2, 양은희. ⓒ제주의소리

3명 모두 제주에서 태어나 어릴 적 친구가 된 후 지금까지 가까이 지내며 예술에 대해 이야기하고 격려하는 사이이다. 올해 만 30이 된 그들은 제주에 거주하거나 제주를 오가며 살고 있는데, 이번 전시로 공적인 공간에서 다시 조우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나이가 ‘입지’ 에 접어들자 청년의 치기를 부릴 여유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직감한 듯하다. 작가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박주애와 이해강 외에 작가를 지원하는 제주문화예술재단에서 근무하는 이승미가 참여한 전시로 아마도 같이 작가의 길을 가지 못한 친구를 초대해 작업에 대해 이야기하고 전시공간을 해석하며 동행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박주애와 이해강은 요즘 유행하는 개념인 ‘청년작가’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여러 가지 작업을 하고 있다. 제주문화예술재단의 청년작가 지원 사업으로 해외 경험을 한 박주애는 초현실주의적 회화로 유명하다. 신화의 섬 제주에서 자라서인지 일상에서 주목한 평범한 이미지들이 충격적일 정도로 낯선 것들과 연결되고 상식을 전복시킨다. 최근에는 유사한 감수성을 입체와 설치로 확장하고 있는데, 서울의 갤러리 2가 그 재능을 주목해 전시를 열어주고 있다. 이해강은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며 매료된 도시적 감성을 낙서같은 스트리트 아트부터 애니메이션까지 여러 매체로 소화하며 국내외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두 사람이 이번 전시에 보여준 작업은 서로 대조적이다. 박주애는 벽에 그린 개와 제작한 토끼인형에 친구 이해강의 얼굴을 넣어 괴기스러움과 일상성을 접목하는가 하면 또 다른 개와 개의 배설물에 자신의 얼굴을 넣어 동물과 인간, 저속한 상상과 좌절된 성욕, 환상과 현실 사이를 당차게 질주하는 데, 어딘지 모르게 거침없고 영악한 시선으로 세상이 모르는 이면을 담고 있는 것 같다. 반면에 이해강은 이승미와 함께 그라피티와 추상의 중간정도에 있는 평면 작업을 만들었다. 천 위에 자유롭게 퍼지는 선들은 일종의 우정의 무도처럼 양보와 질주를 반복한다. 이승미가 이질적인 두 작가의 작업을 매개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이해강과 역동적인 선들의 춤을 만드는 데 박주애가 질투할 정도로 유희적이다. 

어쩌면 바로 그 젊음의 유희가 이번 전시를 단순한 우정의 장이 아니라 세 사람 사이의 균형을 깨는 긴장의 공간으로 만드는 것 같다. 전시장 가운데 크게 자리잡은 박주애의 아바타 이해강과 절묘하게 조화로운 이해강과 이승미의 선의 무도 사이의 깨진 균형은 이 전시가 끝난 후 저마다 각자의 길을 가는 추동력이 될지도 모르겠다. 전시는 2월 28일까지이다. 

* 이 글은 <월간미술> 2월호에 소개된 필자의 전시리뷰 ‘박주애, 이승미, 이해강’를 수정·보완한 것이다. 

 ▲필자 양은희는...

양은희는 제주에서 나고 자라 대학을 졸업한 후 미학, 미술사, 박물관학을 공부했으며, 뉴욕시립대(CUNY)에서 미술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9 인천여성미술비엔날레>, <조우: 제주도립미술관 개관 1주년 기념전>, <연접지점: 아시아가 만나다> 등의 전시를 기획했으며, 여러 미술잡지에 글을 써왔다. 뉴욕을 현대미술의 눈으로 살펴 본 『뉴욕, 아트 앤 더 시티』 (2007, 2010), 『22개 키워드로 보는 현대미술』(공저, 2017)의 저자이자 『기호학과 시각예술』(공역, 1995),『아방가르드』(1997),『개념 미술』(2007)의 번역자이기도 하다. 전 건국대학교 글로컬문화전략연구소 연구교수. 현재 스페이스 D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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