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필이면 '통쾌한 세상'인가? 세상이 도무지 통쾌하지 못해서이다.

여기저기서 한숨 쉬는 소리, 분노하는 소리, 절망으로 쓰러져 가는 소리가 들려서이다.

사람살이란 게 늘 통쾌할 수야 없을 터이지만, 그래도 더러는 속 시원하고 손뼉치며 기꺼워해야 할 일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하기야 간간이는 제대로 굴러가는 모양새가 보이기는 하지만, 그런 일조차도 이 땅의 소금 되기를 자청한 사람들의 안간힘 끝에 겨우겨우 가닥을 잡아가는 모양새라, 그나마 다행이라는 느낌과 안쓰러운 느낌이 뒤범벅이 될 뿐, 통쾌하기까지는 않다.

그런데도 굳이 이 엉뚱한 타이틀을 붙이는 까닭은 그만큼 '통쾌한 세상'을 열망하기 때문이다.

사람살이가 얽히고 설키어 있어 쉽사리 온세상이 통쾌해지겠냐마는, 그저 한 가닥 한 가닥씩이라도 풀어 가면, 어느 결에 우리 삶의 지평을 관통하는 해법이 나오지 말란 법이 있으랴.

그렇다고 내가 온 세상을 관통하는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라는 가당찮은 생각은 하지 않는다. 보이는 만큼, 짚어지는 만큼 '뒤집기'를 할 따름이다.

어두운 구석을 뒤집으면 밝은 구석이 보일 것이고, 구린 구석을 뒤집으면 상쾌한 구석도 보일 것이다. 한심하고 비열한 구석을 뒤집으면 반듯한 구석도 보일 것이고, 부정의를 뒤집으면 정의도 보일 것이다.

이렇게 자꾸 뒤집어보다 보면, 보이는 만큼 세상을 통쾌하게 만들 힘도 생길 것이다. 이런 믿음이 내가 '통쾌한 세상'이라는 글을 쓰는 이유이다.
<하순애의 통쾌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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