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강임의 포토] 프리즘에 비친세상

요즘 ‘바다 이야기’로 세상이 떠들썩합니다. 청정해야 할 바다가 왜 이렇게 혼탁해져 가는 것일까요? 세간에 흘러나오는 ‘바다이야기’를 듣자하니, 한 여름 흘린 땀을 식혀 주었던 바다가 폭풍을 만난 것 같습니다.

‘바다이야기’로 걸려 든 사회적 이슈는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넓은 바다는 인간의 모든 ‘때’를 다 벗겨줄 줄 알았는데, 벗기지 못할 ‘때’가 있나 봅니다.

▲ 유년의 바다이야기, 이랬습니다. ⓒ 김강임
아무튼 뜨거웠던 바다는 그 열기를 식히고 다시 계절 속으로 들어갑니다. 이쯤해서 올 여름 '바다이야기'는 추억을 갈무리하고 가을을 맞이했으면 합니다.

바다이야기하면 뭐니뭐니 해도 백사장이 추억입니다. 햇빛에 익어간 백사장 위를 맨발로 로 걸어 본적이 있습니까? 까칠까칠 하면서도 뜨거운 감촉이 발바닥에 닿기라도 하면 어느새 오장이 뜨끈 거리지요. 발을 해독시키는 유일한 작업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얀 모래알이 펼쳐진 백사장은 낭만적이지만, 검은 모래알이 펼쳐진 모래밭은 몸을 달구기도 합니다. 파도가 남실대는 바다 위에 몸을 맡기다가도 검은 모래 위에 앉아 있으면 어느새 따끈따끈한 유년의 이야기가 흘러나옵니다.

▲ 백사장에서 모래성을 쌓았던 바다이야기도 있었지요. ⓒ 김강임
가슴 속에 간직한 것들을 모조리 꺼내놓고,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성을 쌓아봅니다. 모래로 쌓아 놓은 성벽이 행여 무너져버릴까 조바심이 생깁니다. 성은 외부와의 단절입니다. 하지만 모래성은 쌓았다가 다시 부숴버릴 수가 있지요. 누군가가 정성들여 쌓아놓은 모래성. 무엇을 지키기 위함인지 모르겠으나, 분명 바다이야기를 나누었을 테지요.

▲ 그때는 바다가 엄마품처럼 따뜻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바다이야기'는 왜 이렇게 혼탁해져 가는 것일까요? ⓒ 김강임
검은 모래 한줌을 쥐어든 아이는 넓은 바다 세상을 알까요? 재롱을 부리는 아이는 바다가 엄마의 품입니다. 이 아이에게 ‘바다이야기’는 안중에도 없습니다. 다만 아이에게는 엄마 품처럼 따스한 바다와 놀이터 같은 백사장이 전부입니다.

▲ 백사장에서는 신발이 필요없습니다. ⓒ 김강임
백사장에서 신발 신은 사람을 보았나요? 백사장에서는 신발이 필요 없습니다. 누군가가 벗어놓은 신발이지만, 아무도 눈여겨보는 사람이 없습니다. 백사장에 가면 옷을 걸친다는 것 자체가 거추장스럽지요. 알몸이 얼마나 자유로운 것인가를 느끼게 하는 곳이 바로 바다입니다.

▲ 백사장에서 짓는 집은 크기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느 동네에 짓느냐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 김강임
서너 뼘 파 놓은 굴 속에 앉아있는 아이는 검은 모래밭에 집을 지었습니다. 모래밭에 집을 지어보세요. 크기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느 동네에 집을 지을까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자신의 몸 하나만 들어가는 집이면 됩니다. 백사장에 지은 집은 프리미엄도 없습니다. 강북도 없고 강남도 없는 동네가 바로 백사장입니다.

▲ '바다이야기', 제발 추억사냥이길 바랍니다. ⓒ 김강임
밀려오는 파도에 몸을 실어보면 바다는 깨알 같은 모래를 가져갑니다. 황금을 캐러간 ‘바다 이야기’와, 추억 사냥을 나간 ‘바다이야기’는 무엇이 다를까요?

▲ 유년의 추억을 안고 바다에 나가보세요. ⓒ 김강임
유년의 바다를 떠올려 봅시다. 그때, 바다는 수평선 저 너머에서 달려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백사장은 우리들의 놀이터였지요. 장난감이 없어도 심심하지 않는 놀이터. 그러나 어떤 이는 그 바다 놀이터를 오염시키고 있습니다. 제발 정치는 바다에서 싸우지 말았으면 합니다.

▲ 검은 모래위에 찍힌 자신의 발자국은 황금사냥 입니까?, 추억사냥 입니까? ⓒ 김강임
검은 모래 위에 자신의 발자국을 찍어봅시다. 그리고 유년시절 나눴던 ‘바다이야기’처럼 꿈과 낭만, 순수가 담긴 추억의 ‘바다이야기’를 담아 보세요.
요즘 '바다이야기'로 세간이 떠들썩합니다. 청정해야 할 바다가 이렇게 혼탁해졌다니요. 제주 이호해수욕장 백사장에서 나눈 유년의 '바다이야기'를 가슴에 담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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