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자기가 가진 생각때문에 죽을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다. 사상의 고귀함과 양심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말이다.
인간의 행동양식을 규정하는 여러 이데올로그중에 재미있는 것중의 하나가 바로 일과 여가에 관한 것이다.
그 이데올로그의 변천과정을 천년의 스펙트럼으로 들여다보면 경기변동의 주기처럼 어느 때는 여가, 즉 놀기가, 어느 때는 일, 즉 노동이 지배적 주류를 형성하고 있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고대와 중세, 그리고 종교혁명 이전의 근대 초반까지는 '여가사회' 노는 게 최고인 시대였다. 여가는 신의 축복이었고 노동은 신의 형벌이었다. 잘나가가는 사람들은 잘노는 사람들이었고 예술에서 부터 명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항 여가형태가 만연하였다.
그러던 것이 르네상스와 프로테스탄트혁명, 그리고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사회가 노동을 요구하게되었고 이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그의 역전환이 일어났다. 이른바 노동이야말로 신성한 것이고 신의 뜻으로 천명된 것이다. 여가는 신을 저버리는 행위이며 추방해야할 사회악 신세로 전락하였다.
지배계층, 이들을 옹호하는 지식인들(예나 지금이나 같은 걸 보면 희얀하다)은 노동과 그것에 의해 이루어지는 업적만을 추앙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결과는 결국 과도한 노동과 그로인한 생존위협으로 나타났다. 일이란 것이 신성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자각한 것이다. 노동의 단축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였다. 그것이 민중의 투쟁속에서 실질적인 인권과 민주주의 신장으로 연계되어 갔다.
인간에게 '게으를 수 있는 권리', '일하지 않을 권리'가 천부로 있음을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 나머지 반쪽에 숨겨져 있던 '느림의 지혜'를 발견한 것이다.

그렇다. 인생에 있어 중요한 것은 여가다. 일하는 것보다 노는 것이 좋은 것이다. 가능하면 많이놀고 많이쉬는 것이 장땡이다(놀고 쉬는 방법은 문제지만). 이 당연한 진리를 이렇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좋은 지 모른다. 공부, 일, 업적, 성과 이런 단어들 사실 알고보면 별개 아니다. 제대로 된 삶과는 어쩌면 크게 관계없는지도 모른다. '많이들 놀아라'
이런 측면에서 일주일에 이틀을 쉬자는 것은 참으로 환영할 일이다. 그것이 진짜 인권의 신장이요, 인간성의 해방일 것이다.

다시 오늘의 현실로 돌아와서 주5일근무를 계기로 두가지를 짚고 싶다. 하나는 국가적 관점인데 공동소유의 정신을 확대해 보자는 것이다. 주5일 근무 국회통과가 사실 일에 찌들고 지친 민중의 노동량을 생각하고 이제부터는 많이 쉬어보라고 배려해준 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총량의 일에 대해 개인의 참여시간을 줄이고 그 시간을 다른 사람에게 할당함으로써 전체적인 노동자의 수는 많게 하려는 실업축소의 의미가 담겨있다. 차제에 같이 일하고 같이 나누는 공동체 정신을 되새겨봤으면 하는 것이다.
두번째는 제주적 관점인데 주5일 근무를 계기로 우리의 관광정책을 도민위주로 전환하라는 말이다. 도민의 여가정책이 관광객 위주의 그런 정책보다 우위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 도민들이 놀고 쉬고 즐기는 곳에 관광객이 곁다리 끼는 것이지 관광객이 그런 곳에 우리 도민들이 붙는 것이 아니다. 사실 그렇게 되어야 제주가 제대로 된 관광지로 갈 수 있는 것이다. 놀아본 사람이 남도 놀수있게 해주는 법이다.

말 나온 김에 지금까지 제주도의 관광정책을 보면 도무지 도민, 즉 주인인 우리가 보이지 않는 것이 문제다. 차제에 관광개발도 도민에게 되돌려주었으면 한다. 국제자유도시다 뭐다 하면서 되지도 않을 환상과 망상에만 사로잡혀 있을 것이 아니라 다가오는 여가시대, 가족여행에 주축이될 그 시대에는 제주의 생태.문화 등 일상의 체험이 주민에 의해 있는 그대로 방문자에게 제공되는 관광지, 이른바 정직한 국민여가지대, 자유시간도시가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모습일 것이다.
터놓고 말하면, 제주는 환타스틱하지도 않고 세계적 휴양지가 될 잠재력도 부족하다. 그런데도 자꾸 그렇다고 하면 이건 병(?)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송재호의 포커스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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