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댁은 쇠소깍을 끼고 앉은 서귀포시 하효동.

결혼을 하고 난 후 쇠소깍은 나에게 제사 때 혹은 명절 때 차례준비를 마치고 나면 산책을 즐기는 곳이 되었다.

쇠소깍의 상류 효돈천, 그 크기가 제주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 펑펑 울지도 모른다.

막내녀석과 카메라를 들고 쇠소깍의 상류 효돈천에서 어린아이마냥 이리 저리 바위를 통통 건너뛰다 물수제비를 만들고 저 바위틈에  누워 푸른 하늘을 끌어안고 잠을 청하기도 하는데 어찌보면 이런 것이 특별한 나의 낙인지도 모를 일이다.

   
 
 
올 여름 휴가때 나의 창작을 지도해 주시는 최광림 선생님과 하도시인, 그리고 동료 몇몇이 쇠소깍을 찾았다.

전날, 돌문화 공원에서 물 위를 걷다가 디카를 물에 빠트리는 바람에 아쉬운대로 일회용 카메라를 구입하고선 사용하고 스캔했다.

담수와 해수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곳, 살아있는 용암 줄기 쇠소깍.

쇠소깍은 마을이름 '효돈'의 옛 표현인 '쇠돈'의 '쇠'와 연못이라는 의미의 '소', '각'은 옛말의 '-깍'이란 접미사로써 끝을 나타내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용암이 흘러내려가며 굳어져 마치 계곡을 형성한 것 같은 '쇠소',  지금도 거대한 용암 줄기가 흐르 는 듯한 착각을  준다.

   
 
 
지하수의 끝자락인 쇠소깍은 맑고 차가운 물을 토해내며 곧바로 바다로 이어져 해수화된다.

바닷물이 담수화 된다는 이 곳, 깊은 수심과 용암으로 이루어진 기암괴석, 그리고 울창한 소나무숲이 조화를 이루며 새소리만이 나그네를 반기는 정적의 공간이다.

섭씨 18도의 용출수를 유지하므로 가을에 잔잔한 물가로 뛰어들더라도 차갑지가 않다. 이곳은 제주에서 가장 오래전에 분출한 조면암이 분포하는 지역으로 학술적인 연구가 계속되고 있다.

   
 
 
서귀포칠십리의 숨겨진 비경 중 하나로서 찾는 이의 발걸음을 붙잡고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곳 '쇠소깍'.

삼십 여년 전에 쇠소깍은 맑은 호수와 검은모래, 파란 바다가 한데 어울려 무척 신비로웠는데 하효마을회관을 지으면서 쇠소깍의 모래를 팔았다고 한다.

이제 50살을 바라보는, 당시 어린 아이었던 이들은 쇠소깍에서 헤엄치며 놀다가 돌아올 때는 모래를 실은 트럭이 인가까지 태워다 주기도 했다고 말한다.

   
 
 
그 후 쇠소깍의 검은모래는 흔적만이 있을 뿐이었고, 이 곳의 검은모래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아쉬움에 그리움만 켜켜이 쌓았다.

그 검은모래가 돌아왔다.
거짐 삼십여 년의 세월이 흘러간 올 여름. 7월29일 내가 쇠소깍을 찾았을 때는 검은모래 해변축제가 벌어지고 있었다.

마치도 풍류객들이 저 테우안에서 가야금을 타고 술을 마시며 주거니 받거니 즉흥시라도 읊고 있을 것만 같은 착각에 나를 빠지게 했다.

   
 
 
비록 저 태우에 앉아 가야금을 타고 춤을 추고 한 잔 술에 즉흥시를 읊지는 못할지라도, 하도시인이 자신이 지은 '낮달'이란 동시에 곡을 붙인 동요를 불렀다.

저 신비로운 물빛과 풍경에 멍하니 빠져든 채.

금방이라도 낮달 하나가 사뿐사뿐 걸어 나올 것만 같다 저 푸른 물결 위로….

   
 
 
지난해 벌초를 끝내고 차마 그냥 올 수 없는 숨겨둔 애인 같은 쇠소깍에 들렀다.

얼마 전의 제삿날은 마침 일요일이었다.

잘 정비된 산책로 너머로 나무에 가려 쉽게 볼 수 없는 절경에 아쉬움을 던지자 남편이 한 마디 던진다.

"그렇게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다면 그게 곧 자연훼손인 게여"

아, 난 언제나 이 쇠소깍에 들를때 마다 물귀신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혼자 저 물 속을 유유히 흐르는 물귀신이 되어 신비스러운 절경들과 열애에 빠지고 싶다.

   
 
 

쇠소깍 아래로 소금막이라 불리는 바닷가, 보목동으로 이어지는 해안절경 또한 볼만하다.

   
 
 

개발에 무너지는 모습이 조금은 가슴 아프지만 무언가 하나를 얻을려면 당연히 잃는 것도 있어야겠지.

   
 
 
가장 따뜻한 곳에 사는 사람들의 온화한 성격이 개발로 인해 너무 물질에 밝혀 훼손되지 않는 성품으로 오래오래 남아주길 바랄 뿐이다.

저 바위 위의 우묵사스레피나무처럼 늘 그 자리에 변치않는 모습으로….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