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올의

거침없는 언변과 파격적인 행보로 대중의 주목을 받아왔던 도올 김용옥 선생이 청소년들을 위해 논술 지침서 <논술과 철학 강의 1,2>를 출간했다.

책은 2006년 2월부터 8월 사이 한국교육방송공사(EBS) 텔레비전을 통해 방영된 '논술세대를 위한 철학교실' 50강에 강의했던 내용과 강의하면서 얻었던 느낌과 체험을 바탕으로 썼다.

그 중 제 1권은 논술의 문제를 이론적으로 접근한 책으로서 세 대목으로 구성하였다. 전반부는 억압과 폭력으로 점철되었던 우리 현대사에서 논술이 가지는 의미를 되짚어 보았고, 중반부는 인간 삶의 문제를 들여다보는 창으로서의 '철학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마지막 후반부는 '좋은 글을 쓰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첫째 대목, 논술과 폭력

▲ 책의 표지
논술이란 "논리적으로 서술한다"는 의미이므로 인간 이성에 호소할 수 있도록 개인의 의사를 글로서 개진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현대사를 되돌아보면 불행히도 인간 이성이 차지할 여지가 없는 억압과 폭력의 역사였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저지른 만행에 대해서 저자는 백암 박은식 선생의 표현을 빌려 "조선의 남녀노소를 총으로 죽이고, 칼로 찔러 죽이고, 몽둥이로 쳐죽이고, 목을 졸라 죽이고, 주먹으로 때려죽이고, 발로 차 죽이고, 도끼로 찍어 죽이고, 생매장하기도 하고, 코를 꿰기도 하고, 갈비뼈를 발라내기도 하고, 배를 따기도 하고……, 인간이라면 차마 할 수 없는 짓들을 저네들은 오락으로 삼았다"며 그 잔인함을 비난했다.

1945년 미국은 식민지의 지배자로서 이 땅에 왔다. 저자는 "미군정의 무지스러운 정책은 일제식민지 잔재의 청산을 요구했던 민중과 독립운동세력들에게는 좌절을 안겨주는 반면, 친일세력에게는 유리한 입지를 마련해주는 반역사적 결과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남한 정치사의 출발은 애초부터 민중의 지지기반이 없었고, 자신의 주체적인 사상기반이 없었기 때문에 이승만 정권을 끊임없이 전복의 위험에 직면했다. 사회는 무능과 부패와 혼란의 도가니로 빠져갔고, 마침내 4.19학생 혁명에 의해 정권이 교체되었다.

저자는 이 와중에 특이한 해석을 내 놓았다. 박정희는 4.19학생혁명의 성공을 보면서 미국이 혁명에 의한 정권교체를 허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이 땅에 존재한다는 것을 체험하면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는 것이다. 즉 그의 군사쿠데타 결심은 4.19혁명 와중에 이미 섰다는 뜻이다.

"보통학교교사, 일본군장교, 조선경비대 장교, 남로당 당원, 동료배신, 하극상 쿠데타"로 이어지는 박정희의 삶에 대해 저자는 끊임없는 배신과 변신의 여로였다고 말했다. 저자는 논술이라는 주제에서 박정희의 가장 큰 문제는 폭력성이라고 했다.

유신체제의 경제발전이 "야당지도자들이나, 시인들, 사상가, 민중지도자"들을 향해 가한 그의 모든 폭력성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고 했다. 그의 여러 가지 만행은 그의 사후에 더욱 극렬하게 노출되었는데, 1980년 5월 금남로에 뿌려진 선혈로 상징되는 수많은 희생이 그것이라고 했다.

전두환은 스스로를 박정희의 아들이라 자처했고, 박정희처럼 이 나라 민중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하고 억압해야 이 나라의 지도자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가 1980년 5월 18일 인구 73만의 광주시에 2만여 명의 무장병력을 투입해서 시민들을 향해 집단발포를 감행하여 금남로를 피바다로 만든 것이 광주시민들이 목도한 현실이며, 20세기 우리 역사에 내재하는 폭력의 문제였다.

이렇게 폭력이 난무하는 상황에서는 오직 저항만이 있을 뿐이기에 70∼80년대에는 합리적 의사소통이 오히려 수치스럽게 여겨졌다고 했다. 그리고 이런 지적 흐름이 오늘날에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고 했다.

둘째 대목 : 논술과 철학의 문제

도울은 철학이 난해하거나 난삽한 이유에 대한 문제에서 철학자들의 깊은 성찰을 주문했다. 이해되지 않은 언어는 철학언어가 아니기에 엘리트들의 지적 권위주의에 갇힌 철학언어를 파괴해야 한다고 했다. 철학이란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인데 많은 철학자들이 순수 사변의 줄기만을 기술하여 철학이 난해하게 되어버렸다고 했다. 그 결과 대중의 참여가 없는 지적활동으로 전락하여 철학이 문명의 액세서리로 끝나고 만다고 지적했다.

서양사상에 대한 엘리트들의 그릇된 번역 습관도 꾸짖고 있다. 저자는 죤 로크의 유명한 책 'An Essa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을 '사람의 이해력에 대한 수필'이라 번역하지 않고, '인간오성론(人間悟性論)'이라 부르는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하면서, 한국의 지식인들이 지니는 언어의 보수성과 그로 인해 야기되는 불통번역의 부작용을 질타하고 있다.

저자는 학생들에게 철학을 쉽게 하는 방법으로 1. 알 수 있는 것만 정확히 알아도 된다 2. 철학자의 권위를 인정치 말라 3. 종교적 신앙은 사유의 단절이다 4. 핵심적 개념만 집중적으로 이해하라 5. 좋은 선생님께 물어라 등을 주문하고 있다.

셋째 마당 : 논술문장론

저자는 논술은 말이 아닌 글이므로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구어를 기준으로 삼기는 하지만, 기나긴 문어적 전통을 수용하여 간결하고 함축적이며 명료하게 구성해야한다고 주문했다. 문장론의 핵심은 이해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며 그 이해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 여러 가지 주문을 던졌는데 그중 몇 가지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글의 대상층 기준 : 논술 문장이 너무 늙어도 안 되고 너무 젊어도 안 된다. 대략 25세부터 30세 사이의 교육받은 표준 젊은이의 언어를 사용하라.

2. 글씨 잘 쓰기 : 서도(書道)란 반드시 먹을 갈아 쓸 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볼펜으로 쓰는 것도 모두 서도인 것이다. 서도란 쓰는 행위의 길이요 도이므로 글씨를 잘 쓰는 것이 나의 삶의 지성의 표현이고 일상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지고의 예술이다.

3. 의미의 면적이 좁은 단어를 선택 : 명료하게 의도되지 않은 애매성이나 포괄성은 무지의 광란일 뿐이요, 문장의 타락이니 종잡을 수 없는 추상언어보다는 구체적인 일상사물에 즉하여 사고를 진행하고 문장을 구성하는 것이 좋다.

4. 머릿속에서 먼저 대강을 구성 : 어려운 문제라도 그와 관련된 자기 나름대로의 주제의식과 논리구조를 찾아내어 문장을 구성하고, 첫 고와 마지막 구에 대강 만족할 만한 명구가 떠오르면 그것이 성공적인 문장을 확보해준다.

5. 명사적 구성법보다는 동사적 구성법 : 데모군중을 리드하는 학생 대표의 외침을 예로 들면서 "학우들이여! 가열찬 투쟁의 자리를 고수하자!"라고 외치는 것보다는 "학우들이여! 싸우자! 나가자!"는 식의 간결한 동사적 표현이 훨씬 더 의미전달이 명료하다.

6. 교정의 중요성 : 위대한 교정인에게 내 문장을 맡겨보면 내 문장의 허점이 쉽게 드러난다. 내가 충심으로 수긍할 수 있는 교정을 많이 해 주는 교정인 일 수록 훌륭한 교정인이다.

저자는 후기에서 "이 책을 쓰는 2006년은 희망을 암흑으로 역전시키는 변절의 한 해였다.…… 좌익을 운운하는 자가 우익의 죄악을 선취하고, 우익을 운운하는 자가 좌익의 비전을 마구 활용하고, 도무지 정치노선이나 이념노선의 변절이 상실되어 버렸다. 이러한 혼돈의 죄악으로부터 나 도올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고 했다.

이 책이 억압과 폭력의 역사에서 자유로운 우리 청소년들이 제대로 된 세계관을 형성하고, 합리적으로 소통하며, 논리적으로 서술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줄 것으로 믿는다. 그리고 기성세대들도 이 책을 통해 졸고 있는 자신들의 이성을 일깨워서 저자가 지적한 "변절과 혼돈"의 시간을 빨리 지날 수 있기를 바란다.

※ <논술과 철학강의 2>도 곧 소개하겠습니다.

이기사는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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