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 땅에 다시 둥지를 틀은 김정기 목사

제주 폐인.

한때 다모라는 드라마가 유행할 때 이 드라마에 빠진 사람들을 다모 폐인이라 불렀다.
제주에는 제주에 중독된 제주 폐인 들이 있다.
이들의 특징 하나는 제주 토박이들 보다 소위 육지 것들이 많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이들이 고향을 버리고 제주로 떠나올 때
사람들로부터
뭍에서 변변한 일자리 하나 구하지 못하고
귀향이나 가는 제주 섬으로 간다고
안됐다는 시선들과 동정어린 말들을 들었다는 점 일게다.

그러나 지금 와서는 오히려 동정 반 걱정 반 이들을 환송하던 그들이
제주에 와서 제주 폐인들의 사는 모습들을 보고
이제는 모두가 이들의 삶을
부러워하고 있다는 소리가 들린다.

제주 폐인들의 특징은
제주에서도
제주의 도시를 선택하지 않고
시골 골짜기에 묻혀
자연과 벗하여 산다는 점이다.

그리고 하나같이 그들의 삶이란 것이
도시 생활에 익숙해진 사람들의 눈에는
불편하고 문명의 편리함을 누리지 못해
요즈음 유행하는 웰빙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천천히 움직이면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고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다는 생각에

항상
느긋하게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선택한 가난을
풍요롭게 즐기며 살고 있어
어쩌면 진정한 내면적 웰빙 주의자로 보인다는 것이다.

제주 땅은 사람을 중독 시키는 마약같은 힘이 있다.
한번쯤 스치며 맛을 본 사람은
제주를 그리며
오고 싶어
안달을 하다가
결국은 제주에 와서 눌러 앉게 만든다.

나는 중독 증세가 좀 심한
제주 폐인 한 사람을 알고 있다.

김정기 목사.
90년 봄 중 산간 시골 납읍에 와서
거의 문을 닫다 시피 한
교회의 문을 따고 들어가
그 시골에 50명 이상이 모이는 교회를 만들었다.

어느 날은 뜬금없이 교회 마당을 파헤쳐
마을 청년들을 위한 테니스장을 만들었고
동네아이들을 위한 그림교실 음악교실을 열어
마을에 생기를 불어 넣었다

한 일 년 쯤 제주 땅을 밟고 살더니
자신이 그림을 그리고 손수 쓴 글로
도시를 떠나 새가 된
자기 이야기를 담은 수필집을 한권 내어 놓았다.

삭막한 삶만 보아왔고
그런 삶이 또 자기들에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시골 아이들과 청년들에게
인생이란 즐겁고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었고
이들에게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는
어느 날 훌쩍 미국으로 떠났다.

분명 자기는 제주로 다시 돌아 올 것 이라는 말과 함께.
그리고는 미국에서도
살기 좋다는 시애틀과 샌프란시스코에 살면서
어엿한 신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자식들을 잘 키워 냈다.

그러나 미국 생활 10년을 못 채우고 제주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납읍보다 더 깊다는 제주의 오지 한경 조수 땅에
떠날 때 모습 그대로
미국의 안락한 삶을 모두 포기하고
다시 둥지를 틀었다.

미국에서 박사까지 했다는 목사가
이런 시골에 와 있는 걸 보니
어디 하자 있는 팟지 목사 아니냐고
비아냥거리는 소리를 들어도
그는 히죽 웃고 만다.

이제
자기 나이보다 나이를 더 먹은
교회 마당의 팽나무 아래서 책을 읽는 재미와
뜰 앞의 야생화
들려오는 새소리
시골에서 소외된 아이들과 노인들을 벗 삼아
삶을 즐기고 있다.

본인이 와서 새로 지은
교회의 표어가
“밝은 문화 밝은 생활”이다.

어디 학교 급훈 같지만
여느 교회 표어 같지 않아
좋다.

여하튼
그의 곁으로 요즈음
그의 위로가 필요한
제주 폐인들이 꼬여들고 있다는 소문이 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