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희의 시네마 줌(5)] '하류인생'

벌써 오래 전이다.「넘버 쓰리」를 관람하고 영화관을 나오는데 자꾸만 입안에서 대사 하나가 읊조려지고 있었다.

"너, 호수의 백조를 보았니? 하얀 백조가 물위에서 우아하게 춤을 추지만 물 속의 발모가지는 어떤 줄 알아? 발버둥을 친다고, 발버둥을! 산다는 게 그런 거야!"

「빠삐용」의 최후 탈옥에서 스티브 맥퀸이 뱉어낸 가슴 뭉클한 대사에는 못 미치지만 이렇듯 한 편의 영화를 다 담을 수 있는 대사 한 토막을 가슴에 품고 영화관을 나오는 일이란 흐뭇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임권택의「하류인생」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주먹과 시대가 톱니바퀴로 물려 가는「하류인생」은 씨발, 밥 먹고 살아보기 위해 기껏 잡아놨더니 대가리들이 또 바뀐다.
 
1957년, 홍익고등학교 3학년 2반 교실에 동일고등학교 쌕쌕이 태웅(조승우 분)이가 나타난다. 친구의 앙갚음을 위해 이웃학교를 찾은 그는 멋지게 한판을 벌이지만 허벅지에 칼을 맞고 만다. 거친 세상, 더 거칠게 살아야 살아남을 수 있는 하류인생의 전주곡은 그렇게 시작된다.

주먹은 때로 파란만장하지만 그에 반해 사랑은 비좁고 단조로운 곡조를 통해 울고 웃는 모양이다. 자신의 허벅지에 뒷다마 치듯 칼을 꽂은 승문(유하준 분)의 집을 찾아간 태웅은 그곳에서 연상인 혜옥(김민선 분)과 눈이 맞아버린다. 눈이 맞은 건 사랑만이 아니다. 정치와 주먹이 맞물린 곳도 바로 승문의 집이다. 승문의 아버지 박일원은 민의원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할 후보자. 그는 비겁하게 뒤에서 칼을 꽂은 아들을 향해 이렇게 호통을 친다.

"니가 꽂았으니 니가 빼라!"

내친 김에 한 걸음만 더 나가보자. 선거유세가 시작되자 유세장은 자유당의 사주를 받은 정치깡패들의 난입으로 아수라장이 된다. 이승만 정권의 반대편에 선 무소속 후보 박일원이라고 자유로울 리 없다. 첫눈에 반한 혜옥마저 재룡이파(동대문파)에 의해 봉변을 당하자 분노한 태웅은 재룡이파의 행동대장 살모사를 쫓아가 한방에 눕혀버린다. 건달들의 아지트인 미도극장은 태웅과 혜옥의 보다 밝은 미래를 예감한 듯 '靑春劇場'이 상영 중이다.
 
일약 명동파 보스로 태웅이 자리를 잡아갈 즈음,「하류인생」의 전체를 담을 노래가 애잔하게 깔린다. '사랑한다고 말할 걸 그랬지, 님이 아니면 못 산다 할 것을……마음 주고 눈물 주고 정도 주고 떠나버렸네..' 그러나 이 노래의 가사도 매끄럽지만은 않아 보인다. 그땐 다들 이렇게 불렀던 것이다. 마음 주고 눈물도 주고가 아니라 마음 주고 몸도 주고라고!

▲ 임권택 감독의 영화 「하류인생」 한 장면.
명동파의 큰형님인 보스가 달려가자 화면도 바뀐다. 1960년 4월19일이다. 바뀌는 건 그것만이 아니다. 중간보스 오상필(김학준 분) 밑에서 해결사로 살아가는 태웅 앞에 승문은 대학생이 되어 시위대열에 있고, 혜옥은 졸업과 함께 선생님이 되어 있다. 최루탄이 빗발치던 4.19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승문을 만난 태웅은 학교로 혜옥을 찾아가고 잠시 흩어져 지냈던 주인공들은 다시 재회를 한다.

그리고 1년 뒤, 1961년 5월16일 박정희 정권이 등장을 하고 대한민국은 백척간두에 서서 방황을 한다. 기다렸다는 듯 백주에 삐라가 날린다. 아름답고, 처절하고, 성스러운 진통 속에서 혜옥이 아들을 낳자 태웅은 5.16 군사정권의 폭력조직 소탕전과 함께 건달세계를 청산한다.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았다. 그렇다면, 어디로 갈 것인가? 주먹으로 시작한「하류인생」에 이제 주먹은 없다. 개 같은 정권에 빌붙어 놀아먹던 건달들을 향해 건달이면 건달답게 놀라던 풋내 나는 정의마저 온데간데없다.

그리고 보니 건달세계를 청산한 태웅이 영화제작에 손을 댈 무렵이다. 순간, 임권택 감독의 얼굴이 스쳐 지나간다. 그러나 그것도 꿈 같은 한순간, 반공영화가 판을 치던 그 시절에 여배우의 속옷을 이만큼 더 벗기고 저만큼 더 벗겨 무슨 소용 있으랴. 가위질 앞에 태웅의 첫 영화제작은 참담한 실패로 돌아간다.

▲ 임권택 감독의 영화 「하류인생」 한 장면.
자, 이제 어디에서 돌파구를 찾을 것인가? 빚더미에 앉은 태웅은 중간보스였던 오상필을 다시 찾아가고, 1963년 12월「하류인생」에 미국의 씨아이에이가 등장한다. 암호명 007의 할리우드 영화가 상륙하고, 오상필을 통해 미군 시설물을 짓는 군납업에 태웅도 가담하게 된다. 단순한 주먹이 뛰어들기에 그곳은 너무 높은 벽이었을까. 아니면 너는 죽더라도 나는 살아야 하는 군납업계의 비정한 생리를 아직 간파하지 못한 탓이었을까. 주먹의 로비는 여전히 단순하다. 서너 번 사십오도로 허리를 꺾었다가도 상대방이 고자세를 취할 때면 세상 더러워진다. 씨팔, 사십오도로 허리 꺾고 봉투까지 내밀어가며 기껏 잡아놨더니 중앙정보부장이 또 바뀌어버린 것이다.

더욱 참담한 것은 두 아들마저 버리고 집을 나간 아내의 가출이다. 다 가족을 위한 일이라며 태웅은 항변하지만 그러기엔 아직 호화스러운 구석이 많아 보인다. 햇빛 좋은 방에서 두어 해 잘 지내고 왔다지만 하류인생이라고 불러주기엔 연민이 더 필요하다. 방법이 없다.  건달과 여대생이 만나 그랬던 것처럼 아내를 찾아가 모든 것을 몸으로 보여주고 몸으로 말할 수밖에. 임신만 시키면 어쩌지 못하는 시절도 있지 않았던가.

세 번째 아이를 임신하자 1960년대는 이제 가고 없다. 무엇이 희망이고 무엇이 절망인지, 그조차도 분간하기 힘든 현실 앞에 다가서는 건 1972년. 그 틈바구니에서 태웅의 아내 혜옥은 울먹이며 이런 고백을 했던가. 당신과 두 아들을 버리고 강원도로 떠나올 수밖에 없었던 사연에 대해.

"승문이가 언젠가 이런 이야기를 한 적 있어요. 권력과 주먹은 같은 구조를 갖고 있는데 정치보다는 깡패들이 더 낫다고요."

가위를 든 순경들이 한참 장발단속을 하고 잣대를 든 순경들이 희희낙락, 처녀들의 미니스커트 길이를 재고 있을 때다. 그녀는 다 쓴 편지에 추신을 달 듯 이렇게 말했었다. 금붕어는 한번에 3천 개의 알을 낳는데 그 중 1500개가 부화한다고! 그 누구도 전부를 얻을 수 없음이 세상이요, 우리네 삶이라고.

※ 필자인 박영희 시인은 1962년 전남 무안군 삼향면 남악리 태생으로 1985년 문학 무크 「民意」로 등단, 시집 「조카의 하늘」(1987), 「해 뜨는 검은 땅」(1990), 「팽이는 서고 싶다」(2001)를 펴냈으며, 옥중서간집 「영희가 서로에게」(1999)도 있다. 시론집 「오늘, 오래된 시집을 읽다」와 평론집 「김경숙」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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