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배의 도백열전(26)] 제8대 전인홍 도지사 ①

제8대 제주도지사 전인홍(全仁洪·58세)을 맞은 도민들의 감회는 새로웠다.

제주도민들은 제5대 김충희 지사가 1951년 8월3일자로 퇴임한 이후 8년만에 제주출신 도지사가 부임함으로써 신임 전인홍 지사에게 거는 기대가 매우 컸기 때문이었다.

특히 전임 길성운 지사가 1953년 11월부터 1959년 5월까지 무려 5년7개월동안 장기 재임함에 따라 도정의 새 바람을 희망했던 도민들은 신임 전 지사가 북제주군 구좌읍 세화리 출신은 물론이며 초대 제주도의회 의장과 자유당제주도당 위원장, 국민회제주도본부 부위원장, 제주도총무국장, 남제주군수, 제주신보 부사장 등을 역임하면서 관계·정계·언론계 등 도내 각계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제주지역 최고의 실력가인 신임 지사의 부임을 크게 환영했다.

전 지사는 전임 길성운 지사의 이임설이 나돌 때마다 후임 지사로 거론됐던 인물이었다. 그는 1955년 제주도의회 의장 시절, 막강한 권력을 쥐고 있던 김창욱 제주지검 검사장과 법호촌(法護村) 설립문제로 충돌, 4개월간이나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은 채 검사장을 신랄하게 비판해 도민들로부터 대단한 평가를 받았었다.

"도민이 먹고 싶은 음식을 요리하는 '도민의 행정요리사 되겠다"

전인홍은 지사로 발령되기 며칠 전에 이미 내무부로부터 내정 소식을 전해 듣고 서울에 머물고 있었다. 전인홍의 지사 기용에는 제주출신 현오봉(玄梧鳳) 국회의원과 지역유지들의 강력한 천거가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전해졌다.

1959년 5월13일자로 지사 발령을 받은 전인홍은 정부 각 부처를 돌며 취임인사를 한 후에 5월21일에 제주에 부임, 도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전 지사는 "참된 민의에 따라 도정을 펴나가겠다"고 취임 소감을 피력한 뒤 "내 직장은 내 짐같이 아끼는 길이 곧 도민을 위한 길임을 명심하겠다"고 강조했다.

신임 전인홍 지사는 5월25일부터 5월29일까지 4개 시.군과 일선 읍.면에 대한 초도순시에 나섰다. 전 지사는 가는 곳마다 "나는 도정의 최고 책임자라는 관직의 입장에서보다 도민의 한 사람, 즉 도민의 공무원이라는 입장에서 도민복리증진과 국가부흥을 위해 모든 힘을 기울여 나가겠다"면서 제주출신 지사라는 점을 역설했다.

전 지사는 이어 6월1일에는 일제히 소집된 도·시·군·읍·면의회에 참석하고 "도민이 먹고 싶어하는 음식을 도민의 입맛에 맞게 요리하는 「도민의 행정요리사」가 되겠다"고 말해 많은 박수를 받았다. 특히 지방의회는 신인 전인홍 지사가 초대 제주도의회 의장을 지낸 경력으로, 전 지사를 대립관계가 아닌 상호협력관계로 여기는 등 어느 때보다 집행기관에 매우 호의적이었다.   전 지사의 취임은 또 도내 공무원 사회에 구좌출신의 등용 기회를 활짝 열어줌으로써 한림읍과 함께 제주공직사회의 양대 산맥을 이뤘다.

학교교실 태부족…건축자재 횡령 사건도 잇따라 발생

전 지사가 취임 후 처음으로 부딪친 문제는 각급 학교의 증설 등 당시 포화상태에 이른 학교정비였다. 공부를 하려는 학생은 넘쳐 났으나 이에 따른 시설은 태부족했다. 그때 제주도내 초등학교는 가(假)교실을 포함해도 교실 117개나 모자랐고, 중학교는 31개 교실(가교실 45개 제외), 고등학교 34개 교실(가교실 13개 제외)이 부족하는 등 전체적으로 182개 교실이 부족, 증축이 시급한 실정이었다.

학교에선 전인홍 지사가 부임하자마자 지사 면담을 요청하고 교실증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러나 일부학교에서는 학생을 인가 정원(定員)의 절반도 채우지 못하고 있는데다 교직원들에게 봉급조차 제대로 지불하지 못해 몇 개월분씩 체불되고 있는 상태였다.

이에 대해 전 지사는 "도내 중.고등학교는 이미 포화상태에 이르고 있으나 학교운영의 3요소, 즉 시설·교사·학생이 충분히 갖춰지지 않 는한 결코 학급증설이나 신설을 허가하지 않겠으며, 대신 기존학교를 충실히 운영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전 지사는 「학교정비문제」를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겠다면서 학교현장을 돌아봤다. 당시 각급학교에서는 부족한 교실을 짓기 위해 미군으로부터 자재 대부분을 원조받고 있었는데 횡령사건이 잦아 골치를 앓고 있었다.

전 지사는 현장확인에서 증축중인 교실의 건축자재가 시공업체에 의해 분실되고 있음을 발견하고 사직당국에 고발케 하는 한편 공사를 제주도에서 직접 감독하도록 지시했다.

그런데 한림중학교는 1958년에 AFKA(美軍 對韓民事援助處)에서 지원한 10개 교실분의 건축자재가 시공업체에 의해 횡령돼 공사가 장기 중단되고 있었고, 성산수산고등학교에서는 3개 교실의 증축공사를 착공한 후 벽만 쌓은 채 중단됨으로써 시공업체인 강남건설 대표가 구속됐다.

전 지사는 이와 같은 문제를 불식시키는 동시에 도민여론을 수렴하기 위해 전임 길성운 지사 때부터 운영돼오다가 중단된 매월 15일의 「도민 공청일」을 다시 실시하겠다고 밝히고 도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대했다. 그러나 첫 도민 공청일인 6월15일은 신청자가 한 사람도 없어 열리지 못했다.

제주시장 임명 놓고 제주사회 각계에서 치열한 로비활동

그 즈음 도민들의 관심은 역시 신임 전인홍 지사 부임에 따른 도내 시·읍·면장과 제주도청 고위공무원에 대한 인사에 있었다. 그래 7월20일자로 한림읍장·한경면장·안덕면장.·원면장은 8월6일자로, 성산면장은 8월18일자로, 제주시장은 8월31일자로 각각 임기가 만료됨으로써 인사가 불가피했다.

이 때문에 도지사실은 시·읍·면장 인사를 앞둬 지역유지들의 출입이 잦았을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일부에선 물의가 일어나기도 했다. 또한 임기가 만료되는 읍·면장 가운데는 유임을 위해 지역 읍·면의회 의원들을 동원해서 주민들에게 자신의 연임을 주장하는 연판장을 돌리는 행위까지 벌어졌다.

전 지사는 시중의 관심을 의식, "이번 임기만료되는 지역의 시·읍·면장에 대한 인사안은 이미 세워졌으며, 새로운 지방자치법에 따라 참신한 인사를 기용하겠다"고 밝혀 도지사가 말하는 참신한 인사가 과연 누구냐로 관심이 모아졌다.

일부에선 재야인사(당시 재야인사라면 관직에 있지 아니한 사람을 의미하였음)가 의외로 기용될 가능성이 클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전망하기도 했다. 전 지사는 이와 관련해서 "제주시장은 민의를 충분히 감안해 적임자를 임용하겠지만, 시장 자리를 원하는 인사들은 쓸 데 없이 인사문제로 물의를 일으키지 말았으면 한다"고 일침을 놓았다.

  전 지사는 초미의 관심이 되고 있는 인사문제를 앞에 두고 6월29일 부임 후 첫 출장길에 나섰다.
열흘만에 돌아온 전 지사는 인사 문제에 대해선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은 채 건설계가 건설과로 승격되는 것과 횡단도로 및 일주도로 보수, 교육대학 설치 등에 대해서만 언급했다. 그러나 전 지사의 서울 출장 분위기상 인사 문제는 어느 정도 매듭된 것으로 보였다. 

인사는 그로부터 닷새후인 7월14일 장윤석 도청 총무국장의 내무부 인사과장으로 이동되는 것으로부터 시작됐다. 장 국장은 5개월전인 그해 2월17일 내무부 통계국 통계기준과장에서 제주도청 총무국장으로 발령됐다. 그런데 후임은 결정되지 않았다.

전인홍 지사실에는 인사 청탁을 위한 제주도의회 의원들로 북적거렸다. 이는 제주출신이 제주도지사가 된 이후로 나타난 부작용의 하나였다. 이 때문에 전 지사는 인사를 계속 늦추면서 공무원들에게 "인사청탁 한다고 안 될 사람이 되는 경우는 없다"면서 제주도청 총무국장은 반드시 행정경험이 풍부한 사람으로 기용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였다.

후임 총무국장에는 좌문규 도청 서무과장의 기용설이 흘러나왔다. 인사는 7월24일자로 단행됐다. 총무국장에는 소문대로 좌 서무과장이 임명됐고, 산업국장에는 김선옥 사회과장(후에 제10대 제주도지사 역임) 등이 기용됐다. 좌 국장은 1950년 경찰관(경감)으로 재직중 제주출신인 제5대 김충희 도지사에 의해 도지사 비서(사무관)로 발탁된 후 도청 산업과장·상공수산과장 등을 지냈다.

이에 앞서 7월20일자로 임기가 만료된 서귀읍장에는 재야인사 송남규 前서귀읍의회 의장이 임명됐다. 이때 임기만료로 물러난 부윤경 읍장은 이듬해에 있는 제주도의회에 출마해 자신을 몰아낸 전인홍 지사를 보복하겠다는 말을 공공연히 하고 다니기도 했다.

최인규 내무장관 초도순시 "이승만·이기붕이 정·부대통령 당선돼야"

전인홍 지사의 첫 인사가 단행된 직후인 7월25일 오전10시30분 최인규 내무부장관이 제주출신 현오봉·김두진 국회의원과 함께 특별기편으로 초도순시차 내도했다.

최 장관은 이승만 대통령이 가장 신임하는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제주를 처음 방문한 최 장관은 도착 즉시 도청에 들러 직원들에게 "이승만 대통령이 아니고서는 이 어려운 시기를 바로잡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점을 제주지역 모든 공무원은 명심하고, 내년 정·부 대통령 선거 때에는 모두가 새로운 각오로 임해주길 바란다"며 이듬해인 1960년에 있을 예정인 대통령 선거를 겨냥, 벌써부터 이승만 대통령의 선거운동을 공공연히 벌였다.

최 장관은 관덕정에서 개최된 시민환영대회에서도 "내년 선거에는 반드시 이승만 대통령을 재당선시켜야 하며, 부통령 출마자는 이기붕 국회의장인데 이 의장은 가장 건실한 이 대통령의 보필자로서, 국운(國運)의 증강자가 될 것이다"고 소개하는 등 초도 순시라기 보다 선거운동을 위해 내려온 것으로 보였다.

최 장관은 특히 그때까지도 발령되지 않고 있는 제주시장을 두고 후보자들을 면접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기도 했는데, 최 장관이 도착했던 제주비행장에는 제주시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었던 고정협·김영진·김차봉씨 등이 출영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당시 읍·면장은 군수 추천으로 도지사가 임명했지만 시장은 도지사 추천으로 내무부장관이 임명했다.

최 장관은 전 지사와 현오봉·김두진 국회의원 등을 대동하고 서귀포지역 순시에 나서면서 가는 곳마다 두 국회의원을 가리키며 "이 사람들은 우리 내무부 예산을 다 뺏어가면서도 나 한테는 차 한잔 사지 않는다"고 말하며 "여러분은 정말 좋은 국회의원을 뽑았다"고 추켜세우는 등 간접 선거운동을 벌였다.

최 장관은 또 "실은 제주시지역만 보고 가려고 했는데 현오봉 의원이 서귀포를 보고가지 않으면 당신 일생에 한이 된다고 말해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여기까지 왔지만 기껏 참외·수박이 전부였다. 차 한잔 사주지 않으면서 가는 곳마다 인사 시키면서 면사무소 신축비용이다, 수리비다 하면서 돈을 내놓으라고 하여 속고 온 것 같다"면서 "여러분은 이런 구두쇠 국회의원을 선출한 탓에 행복하겠지만 나는 괴롭다"고 농담한 뒤에도 제주개발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사실을 알아달라고 말했다.  최 장관은 7월27일 제주를 떠났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