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난 돌이 정 맞는다?

멀게는 고딩 때부터, 가깝게는 최근까지 주변 사람들로부터 자주 듣는 말이 있다. 특히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부터는 아예 귀에 달고 다닐 정도다.

"거 좀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라고!"

언젠가 일간지에 돼도 않은 글을 써댄 몇몇 사이비 지식인들을 좀 씹어댔더니, 요즘엔 더욱 그 소릴 많이 듣는다. 쳇!, 누군들 긍정적으로 살고 싶질 않겠나.

물론 게 중에는 진정 나를 염려해주는 따스한 마음들도 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염려다. 그러니 자중자애 하며 몸을 아끼라는 것이다. 고마운 사람들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아니다. 그저 현실에 순응하며 살라는 이야기다. 미국의 협박으로 한반도가 전쟁 위기에 놓이건 말건, 부패한 토호세력들이 제주사회를 말아먹던 말건.

사실 그게 속 편하다. 그저 밥이나 잘 벌고 혹 여유가 생기면 필드에도 나가고, 인생 피곤하지 않으려면 그게 상책이다. 나도 안다. 게다가 간혹 듣는 비난성 충고(?)처럼 학교 선생이면 선생질이나 잘 하면 그만이다. 나도 그러고 싶다. 아이들 잘 키우는 일에만 전념하고 싶다.

'君君臣臣父父子子'

하지만 그러려면 전제조건이 있다. 내가 학교에서 교육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君君臣臣父父子子'가 이뤄져야 한다. 도 행정을 맡은 사람이라면 제주도의 먼 미래를 내다보며 일을 추진해야 한다. 행정을 견제할 의회라면 역시 제대로 견제해주어야 한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시대와 지역이 요구하는 적확한 의제를 설정하고 여론을 이끌 수 있어야 한다. 그저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지극히 한국적인(?)인 인간관계 속에 휩쓸린다든지, 단기적 이익에만 눈이 팔려 제주의 환경을 망쳐놔서는 안 된다.

그 누구보다 막중한 책임을 가진 건 지역의 지식인이다. 행정, 의회, 언론인 경우는 폭증하는 업무에 묻혀 미래를 조망하는 데에 미흡할 수도 있다. 그들 딴에는 최선을 다한다고 해서 벌인 일들이 결과적으로 제주사회를 망쳐 놓을 수도 있다. 그러기에 지식인의 책무가 중하다는 것이다. 지식인의 본질이 뭔가? 지식인의 고유 업무가 무엇인가? 사회의 비전을 제시하는 것 아닌가? 그걸 업으로 삼아 연구하고 그 대가로 밥을 먹는 사람들 아닌가?

특히 지금은 지방화 시대다. 불완전하지만 제주지역 자체에서 결정해야 할 사안들도 많아졌다. 각 지방마다 국립대학이 존재하는 이유는 다른 곳에 있지 않다. 그 지역의 비전을 제시하라는 것이다. 권력이 불러주면 흐뭇해하며 달려나가는 짓이나 하라는 게 아니다. 지역 기득권 세력으로 카르텔을 형성하곤 천년만년 그 기득권이나 이어가려는 이기적 욕망이나 실현하라는 게 아니다. 도민 전체의 미래를 책임지고 전망을 제시하라는 것이다. 그러려면 먼저 밑으로 내려와야 한다. 현장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거지와 교수의 공통점이 '한 번 되기가 어렵지, 일단 되고 나면 팔자 늘어진다'라는 조소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지식 팔아 밥 먹는 사람들, 그들은 일단 상류의식을 가지면 타락하게 된다. 그러니 항상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 제주지역의 미래가 자신들에게 달려있음을 한시라도 잊어선 안 된다. 지식인이 밥을 먹을 수 있는 근거는 오직 서민의 삶에 비전을 제시해 줄 수 있을 때만 존재할 뿐이다. 서민들이 쌀을 만들고 연료를 수송하고 집을 지어 준 것이지, 지식 그 자체가 사회에서 생산을 담당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만큼 지식인들은 직접 생산을 책임진 그들에게 보답해야 한다. 제발이지 환경영향평가서 같은 곳에 이름을 함부로 빌려주는 일들은 이제 없길 바란다. 지식인의 생명은 권력과의 유착에서가 아니라 전문가로서의 자존심에서 나온다. 전망을 제시할 수 있는 능력에서 나온다.

주제넘게 내가 글을 쓰는 이유

지역의 지식인들이 제 역할을 다 못할 때, 지역의 행정이 눈앞의 이익에 매달려 먼 미래를 내다보지 못할 때, 의회가 그 좋은 인간관계 속에서 헤매고 있을 때, 언론이 하루벌이 인생으로 경황이 없을 때, 그저 선생질이나 해야 할 나같은 놈도 나설 수밖에 없다. 지금처럼 정치 상황과 교육 환경이 개판인 상태에선 교실에만 한정되는 나의 열정은 자칫 맹목적 성실함으로 끝나버릴 수가 있다. 이건 숲 전체가 불타고 있는데도 한가하게 나무의 성장을 관찰하며 아이들에게 해설해 주는 꼴과 같다.

주제넘게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정작 발언해야 할 지식인들이 발언을 하게되면 나는 행복하게 퇴장할 것이다. 그러나 그 전까지는 날을 세울 수밖에 없다.

그러니 모나지 않게 살길 바라며 나를 걱정해주시는 분들에게 이런 대답을 드리며 함께 하기를 기대해 본다.

"정 맞은 모난 돌이 초석으로 쓰입니다."
<이영권의 직설화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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