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배의 도백열전(27)] 제8대 전인홍 도지사 ②

이승만 대통령의 일곱 번째 제주방문은 최 장관이 왔다 간지 일주일 뒤인 1959년 8월3일에 있었다.

이 대통령의 순시는 이듬해로 예정된 정·부 대통령 선거운동보다 대통령 자신이 가장 관심을 두고 있는 송당목장을 돌아보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송당목장에 파견근무하고 있는 미국인 수의사 스틴슨이 임기를 마치고 귀국준비를 서둘고 있어서 이에 따른 사무인수인계를 전제로 목장현황을 파악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의 이번 순시에는 최인규 내무부장관이 수행했다.

이 대통령은 이미 85세의 고령으로 인해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어 비행기에서 내릴 때도 수행원의 부축을 받을 정도로 노쇠한 것처럼 보였다. 전인홍 지사는 이 대통령의 순시계획을 이틀 전에야 통보 받아 영접준비에 크게 애를 먹었다. 전 지사는 부임 후 처음으로 맞은 대통령 순시인데다 다음해에 있을 정·부 대통령 선거를 의식, 관덕정에서 열린 도민환영대회 주변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재출마를 요구하는 아치와 플랜카드를 세웠고 주민들을 대거 동원시켰다.

이승만 대통령 3.15선거 앞둬 송당목장 둘러 보기 위해 제주방문

도착 즉시 가진 환영대회에는 방송국이 현장 중계했으나 갑자기 마이크가 고장 나 먹통이 되는 바람에 환영대회에 참석한 군중들은 대통령의 얘기를 전혀 듣지 못하고 집에서 라디오중계를 들은 사람만 청취했을 뿐이었다.

이 대통령은 "그 동안 제주개발에 관심을 가지고 자주 왔다갔다하는 사이에 제주도가 하나 둘씩 발전되는 모습을 보고 대단히 기쁘며, 제주사람들은 축산개발과 관광개발에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송당목장에 들른 이 대통령은 목장관리상황 등을 돌아본 뒤 김진복 목장장과 수의사 스틴슨을 불러 얘기를 나눴다. 스틴슨은 "한국인의 기술이 우수하여 앞으로 목장운영을 충분히 잘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목장에서 하룻밤을 묵은 뒤에 제주를 떠났다.   이 대통령의 제주순시는 이것으로 마지막이 됐으며, 이듬해 4월19일 학생의거로 장기집권의 권좌에서 물러났다.

이 대통령은 제주를 떠나기 직전 제주비행장에서 측근 등을 모두 물리친 채 전인홍 지사를 승용차 안으로 불러 제주개발과 도로확장을 신신 당부했다.

이 대통령의 순시이후 모처럼 지사실에서 안정을 찾은 전 지사는 후임 제주시장 인선에 생각을 집중시켰다. 주변에선 현재 최수진 제주시장이 최인규 내무부장관과 성(姓)이 같다는 점을 들어 유임될 것이라는 설이 돌기도 했다. 그것은 최 장관이 취임한 후 총경 10명을 경무관으로 승진시킬 때 3명이 최씨였다는데서 비롯됐다. 또한 8월31일자로 임기만료된 후임 제주시장 추천서에 전인홍 지사가 벌써 결재했다는 얘기까지 전해지는 등 제주사회는 온통 후임 제주시장에 관심을 모았다.

제주시장에 고정협 자유당제주도당 내무위원장 임명

후임 제주시장은 최수진 현 시장과 고정협 자유당제주도당 내무위원장으로 압축된 가운데 8월16일 좌문규 道총무국장이 시장 추천서를 가지고 상경했다는 소문이 나돌았으며 8월21일에는 최 시장이 사표를 제출함으로써 자유당의 강력한 지원을 받고 있는 고 위원장의 시장 기용으로 굳혀졌다.

결국 9월1일자로 단행된 인사에선 예상대로 고정협 자유당제주도당 내무위원장이 제2대 제주시장으로 임명됐다.

  「용머리 왕방울」이라는 별명을 가진 신임 고정협 제주시장은 1958년 제4대 국회의원선거에 자유당 공천으로 입후보했다가 근소한 표 차이로 낙선한 바 있는 정치가였다.

행정경험이 전무한 그는 선거당시 「찍고 보자 고담용, 먹고 보자 고정협」이라는 재미있는 일화를 남겼는가 하면 성격이 활달해 많은 사람이 뒤따르기도 했는데 "1960년 정.부 대통령선거를 앞둔 중차대한 시기에 막중한 책임을 맡게 됐다"는 말로 취임소감을 피력했다.
 
전인홍 지사는 행정경험이 많은 사람을 제주시장으로 공약하겠다는 의지를 보였으나 대통령 선거를 앞둔 자유당 입장에선 자유당 당원이 더 필요하다는 중앙방침에 밀렸던 것이다.

그 무렵 전 지사는 1959년 8월30일자로 개관된 서귀포관광호텔의 운영문제를 놓고 곤욕을 치렀다. 서귀포관광호텔은 서귀읍에서 관리하고 있었다.

교통부 서귀포관광호텔 건립 후 민간에게 위탁 운영

서귀포관광호텔은 자유당 정부가 역점사업으로 추진해 왔던 것이었다. 이를 적극 지지하고 나선 사람은 그해 초에 내무부장관에서 교통부장관으로 자리를 옮긴 김일환이었다. 김 장관은 전라남도 광주의 무등산과 강원도의 설악산, 제주도의 서귀포를 호화 근대식 호텔건립후보지로 정하고 교통부 직영으로 설립해 운영하기로 하고, 특히 서귀포에는 섶섬과 문섬이 한 눈에 바라다 보이는 곳(옛 허니문하우스의 자리)에 관광호텔을 건립하기로 했다.

그러나 서귀포관광호텔은 교통부의 거창한 발표에도 불구하고 국비 3500만환으로 연건평 50평 규모에 객실 7실이 지어졌을 뿐이었다. 다만 그때로선 구경하기 힘들었던 욕실과 수세식 화장실, 라디오 등이 객실마다 설치된 것이 고작이었다. 교통부는 준공날짜가 가까워지자 교통부가 직영하기로 했던 방침을 바꿔 제주도 책임아래 일반사업자를 선정, 위탁관리 하겠다고 밝혀 전인홍 지사를 난처하게 만들었다. 더구나 침구와 탁자.식구 등의 시설물을 설치해준 비품임대료로서 매년 50만환을 납부하라는 것이었다.

전 지사는 서귀포관광호텔이 서귀읍에 있는 기존 일반호텔보다 나을 게 없고 읍내에서 1km나 떨어져 너무 한적해 이용객이 적을 것 같다는 판단과 전기·전화 사용료와 교통부에 내야 할 비품임대료 때문에 국가에서 관리운영해줄 것을 계속 요구했다. 교통부의 입장은 전혀 달라지지 않은 채 전 지사에게 호텔운영을 맡도록 강요했다.

전 지사는 더 이상 거절하기가 어렵자 1959년 8월 서귀포의 한재길·이희순 부부를 도지사 관사로 불러 호텔을 임대조건으로 운영해줄 것을 부탁했다. 한재길씨는 호텔로 들어가는 진입로가 포장되지 않고 물도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난색을 표명했으나 전 지사의 간곡한 요청으로 운영을 수락했다.

결국 서귀포관광호텔은 서귀읍이 관리하고, 운영은 한재길씨가 맡는 조건으로 8월30일 문을 열었다. 하루 숙박료는 4000환, 2인1실의 경우는 2000환이 추가됐고 식사대는 별도로 받기로 했다.

이날 개관식에는 교통부차관이 참석했다. 교통부는 개관을 앞두고 전인홍 지사에게 제주관광개발에 관한 제주도의 프로젝트를 제출하라고 지시해왔다. 부임후 초도순시와 내무부장관.대통령 순시로 도정을 제대로 살필 여유가 없었던 전 지사는 머리를 짜낸 끝에 도청내 계장급 이상 간부 전원에게 관광개발계획안을 제출하도록 했다.

도청 간부들이 제출한 아이디어에는 여러 가지가 나왔다. 그 중에 관심을 끌었던 것은 ▲제주시의 용연과 사라봉부근에 관광호텔 설치 ▲한라산 개미목 또는 백록담 부근에 관광등반객을 위한 산장설치 ▲산천단 부근에서 한라산 정상까지 케이블카 설치 ▲삼양·함덕해수욕장 개발 ▲한라산수렵장 개발 등이었다.

서귀포관광호텔 개관이후 모처럼 도정에만 전념하고 있던 전 지사에게 뜻하지 않은 천재(天災)가 발생, 엄청난 시련을 안겨줬던 것도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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