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팔순 생일을 보내신 어머니

 
▲ 손주와 함께 케익 촛불을 끄시는 어머니
ⓒ 홍용석
 

 
▲ 팔순 생일에 기뻐하시는 어머니
ⓒ 홍용석
어제는 어머니의 여든 번째 생신 날입니다.

어머니의 연세가 팔순이 되시는 의미 있는 날을 잘 기념하고 싶었습니다. 어렵게 사는 막내가 안쓰러워 그 연로하신 나이에 손녀를 봐 주시러 오신 어머니. 그런 어머니의 여든 번째 생신 날이라 맛있는 것이라도 좀 해드리려 했는데, 어머니은 일체 못하게 하십니다. 막내의 어려운 사정을 생각해서 그러시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흰밥에 미역국 끓이고 여수에 있는 누나가 며칠 전 보내온 생선 좀 굽고 어머니께서 오실 때 가져오신 호박으로 전을 부쳐서 상에 올렸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떡 케이크’를 얹었습니다. 떡 케이크는 제주의 모 라디오방송에서 받은 상품권으로 마련하였습니다.

팔순 잔치 상치고는 초라했지만 어머니는 더 없이 기뻐하십니다.

“어제 니네 형들하고 통화했는데, 내가 여수 가면 팔순잔치 한다고 하더라. 그 때 잘 먹을 테니 마음 쓰지 말거라.”

막내 손녀 돌봐주시려고 멀리 제주까지 오셔서 팔순 생일을 보내신 어머니. 팔순 생일이 너무나 싱겁게 지나가고 있지만 전혀 개의치 않으시고 검소한 생일상을 기쁘게 받으신 어머니. 자식사랑에 이렇게까지 헌신하시고 넓게 생각해 주시는 어머니 참 감사합니다.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가 여든의 나이가 되었을 때 제 아들이 필요하다고 멀리 타향에서 저를 찾을 경우 피곤한 몸을 이끌고 아들을 도우러 갈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때가 80회 생일 무렵이고 추석이 다가오는 시기일 때 아무 망설임 없이 아들에게로 갈 수 있을까?

얼른 답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팔순 생일뿐만 아니라 팔순의 추석까지도 낮선 곳에서 조용히 보내셔야 할 어머니. 그 모든 것을 다 아시면서도 기꺼이 이곳까지 와주신 어머니. 어머니의 사랑이 참 감사합니다. 어머니의 말씀이 이어집니다.

“요즘은 지민이가 처음보다 덜 울고 잘 논다. 참 좋다.”

어머니께서 아주 기분 좋게 말씀하십니다. 저 역시나 둘째가 잘 논다고 하니 훨씬 더 마음이 편하고 좋습니다. 어머니가 그만큼 덜 힘드시니까요. 그런데 그 다음에 이어지는 어머니의 말씀이 저의 마음을 찡하게 하셨습니다.

“처음에 지민이가 많이 울 때는 이러다 애 살빠지면 어떡하나 하고 걱정이 많이 되더라. 이제는 잘 노니까 살 빠지는 일은 없을 것 같아서 좋다.”

 
▲ 손녀 지민이를 돌보시는 어머니
ⓒ 홍용석

똑 같은 일을 두고 어머니가 좋아하신 이유와 제가 좋아하는 이유가 달랐습니다. 어머니는 지민이가 덜 우니까 지민이 살 빠지지 않을 것 같아서 좋아하셨던 것입니다. 정말 어머니의 사랑은 얼마나 깊으시고 어머니의 마음은 얼마나 넓으신지 헤아리기가 어렵습니다.

연로하신 어머니에게 큰 짐 덩어리를 맡겨 놓은 못난 막내아들. 이 못난 자식은 그저 어머니가 제주에 계시는 동안 마음 편하시게, 그리고 아픈 데 없이 건강하게 계셨으면 하고 바랄 뿐입니다. 그 이상 어머니께 해드릴 게 없는 제 자신이 안타깝습니다.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에도 실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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