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근민 지사의 도정관(觀)에 과연 문제는 없는가?

우근민 제주도지사가 공무원들에게 쓴 소리를 했다.
"무사안일의 구태에서 탈피해 좀 더 적극적인 자세로 도정에 임해달라"는 게 우 지사 쓴 소리의 요지였다. 우 지사의 쓴 소리는 6일 오전 도청 대강당에서 계장급 이상 간부들이 모인 확대간부회의 석상에서 행한 발언으로 이날 회의는 도청 각 실과의 스피커를 통해 전 공무원들에게 생생히 전달됐다. 그리고 도내 일간지를 통해서도 지사의 쓴 소리가 보도됐다.

우 지사의 쓴 소리를 종합하면 이랬다.

▲ 제주도가 국가의 일원으로서 해야 할 일과 책임져야 할 일이 과연 무엇인지 대승적인 관점에서 생각하고 실천하라.

▲ 중앙집권적 시대에는 정부에 의지하고 또 책임을 전가할 수 있었으나 지방자치시대에는 도와 의회, 도민들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모색해야 하는 게 엄연한 현실로 첨병으로서의 공무원 역할을 해달라.

▲ 주민들이 내는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공무원들이 어려운 문제는 피해 도망가고 점수 딸 일이나 있으면 거든다. 제주도가 대한민국을 위해 책임지는 일이 뭐냐, 중앙에 가서 얼굴 들고 다니기가 창피하다.(우 지사는 이 대목에서 우주선 발사기지, 화순항, 화력발전소 증설 등을 예로 들었다)

▲ 제주도가 심혈을 기울여 추진하는 국제자유도시와 관련, 사람들이 너무 성급한 성과를 기대하고 있다. 대형프로젝트의 경우 환경영향평가 등 인허가 기간만 5백일 이상 소요된다는 추진과정의 문제점을 적극 홍보하는 등 도민들을 이해시키고 설득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스포츠 메카’나 ‘관광제주’ 등 공허한 구호만 난무하고 있다며 관련 부서에서는 말만 앞세우지 말고 보다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하라.

우 지사는 이렇게 도정현안에 대한 공무원들의 분발을 촉구하고는 향후 인사에는 '서열 50%·발탁 50% 위주로 단행하겠다'고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소위 당근과 채찍을 든 셈이다.

우 지사의 발언은 전적으로 옳다.
도민들의 낸 세금으로 봉급을 받는 공무원들의 무사안일과 복지부동, 궂은 일은 나몰라라하고 생색내기에 알맞은 일만 찾아다니는 소위 철새 공무원들...이런 공무원들이 있다면 그 구태는 이제는 없어져야 한다. 백 번 만 번 옳으신 이야기다. 이런 공무원이 있다면 당장 파면 감이다. 지금 때가 어느 때인가.

우지사가 이런 발언을 하게 된 심정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도대체 되는 일이 없다. 대정지역 우주과학센터 설치가 그렇고, 화순항 군사기지, 한라산 케이블카, 내국인 출입 카지노(소위 오픈 카지노), 쇼핑아울렛 등등 제대로 풀려나가는 일이 하나도 없다.

여기에 국제자유도시는 제대로 되나...제주도의 표현을 빌자면 '내노라하는 외국기업'에서 수 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한지는 벌써 5년이 흘렀건만 아직 단 1달러도 유치를 하지 못한 게 현실이니 오죽 답답하겠는가. 또 제주도 행정구조개편을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지만 이 역시 자칫 잘못하다가는 '낙동강 오리알'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세간에서는 제주도정에 대해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는 도정' 이란 다소 가시 돋친 듯한 표현을 쓰지만 우 지사의 이날 발언을 빌자면 이것도 과분한 표현인 셈이다. 제주도정이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대부분의 대형 프로젝트 곳곳이 가시밭길이요 지뢰밭이다.

누구라도 손대기만 하면 곳곳에서 터질 형국이다. 그러니 일부 공무원들의 복지부동이 공공연히 이뤄지고 우 지사는 답답한 심정을 이날 토로해 냈다.

그러나 우 지사의 발언은 중대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이날 지사의 발언은 곳곳이 가시밭길이요 지뢰밭인 제주현안을 바라보는 그의 시각을 그대로 보여준 것으로 해석돼도 무방할 것으로 보여진다.

그렇다면 제주도정, 아니 제주의 앞길은 우 지사 속마음 못지 않게 답답해 질 수밖에 없게 된다. 가시밭길과 지뢰밭은 걷힐 줄 모르고 도민들은 그 불안한 행로를 계속해야 한다. 얼마나 답답한 현실인가.

우근민 지사는 우주센터 유치를 반대했다

우 지사는 도정 현안이 제대로 풀려 나가지 않고 있는 이유를 공무원들의 '구태'에서 찾았다. 지금의 문제가 일부 공무원들의 구태에서만 비롯된, 그래서 그 일부 공무원들이 구태만 벗는다면 해결될 문제라면 얼마나 좋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 지사는 문제의 본말을 뒤집고 있다. 또한 스스로 모순된 발언까지 하고 있다.

우 지사는 이날 발언에서 우주선 발사기지 유치가 무산된 것을 아쉬워했다. 대정지역 우주과학센터 유치문제는 그야말로 '눈 가리고 아웅'하는 대표적 사례이다.

우주과학센터 유치가 무산된 배경에는 대정지역 주민들의 반대도 있었지만 보다 큰 배경에는 '제주도의 반대' 입장 때문이었다.

1995년 우주과학센터 입지선정이 한창이던 당시 경남, 전남, 울산 등 전국 각 자치단체마다 이를 유치하지 못해 발버둥 쳤던 이 시기에 유치반대를 제일먼저 표명한 것은 제주도가 아니었던가. 우주과학센터 문제가 거론되자마자 도민여론을 듣지도 않은 상태에서 4월 ▲평화의 섬 이미지에 맞지 않는다 ▲송악산 개발에 반대된다는 이유를 내세워 정부에 공식 문건으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한 게 제주도가 아니었던가. 지사 자신의 공식 직인이 찍힌 반대문서를 제출해 놓고 이제 와서 아래 공무원들 탓으로 돌리려는 것은 과연 무엇 때문인지 궁금하기만 하다.

도민 반대여론을 애써 외면하지 말라

화순항 군사기지만 해도 그렇다.
화순항 군사기지 공무원들이 복지부동해서 무산된 게 아니다. 화순을 중심으로 한 해당지역 주민과 대다수의 도민들이 반대했기 때문에 설치가 유보된 것을 왜 애써 외면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우 지사는 화순항 군사기지 반대투쟁이 한창일 당시 '반대'를 요구하는 대책위의 촉구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때가 아니"라며 유보에 유보를 이어오다 도가 실시한 여론조사결과 반대(58.2%)가 찬성(24.9%)보다 2배이상 많이 나오자 마지못해 반대입장을 표명한 게 아니었던가.

'평화의 섬 이미지 훼손'을 내세워 비군사적 시설물인 우주과학센터 유치를 성급히 반대했던 제주도가 화순항 해군기지에 대해서는 굳게 입을 다물었던 이유가 궁금해진다. 그의 표현대로 해군기지도 국가사업이요 우주과학센터도 국가사업일진대...

내국인 출입이 가능한 카지노, 한라산 케이블카, 쇼핑아울렛 역시 마찬가지다. 문제의 핵심은 일부 공무원들의 구태(이쯤되면 공무원들의 구태가 무엇인지 아리송해 진다)가 아니라 도민들이 도가 추진하려는 이 정책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제주도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제주발전연구원의 도민의식 조사결과(오픈카지노 반대)에도 잘 나와있지 않는가.

도민이 반대하는 정책을 굳이 추진하고자 하면서 도민들의 반대여론에는 눈과 귀를 막고 이를 공무원들의 책임으로만 돌린다면 이는 무엇을 뜻하는가. 도민들의 반대로 정책이 표류하는 것을 두고 '무사안일'이라고 지적한다면 이는 도민들이 반대하든 말든 밀어붙이란 이야기밖에 더 되겠는가. 그리고 잘 밀어붙인 공무원에겐 승진 길을 보장해 주겠다고 말이다.

눈과 귀를 열면 길이 보인다

우 지사는 이날 공무원들에게 의미 있는 발언을 했다.

"중앙집권적 시대에는 정부에 의지하고 또 책임을 전가할 수 있었으나 지방자치시대에는 도와 의회, 도민들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모색해야 하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그렇다. 자치시대에는 도민들과 서로 머리를 맞대야 한다. 도지사와 공무원들만 머리를 맞대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도민들과 맞대야 한다. 그리고 도민들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잘 헤아려야 한다. 눈을 크게 뜨고 귀를 쫑긋 세워 도민의 여론을 경청해야 한다.

지금까지 보여준 도민여론은 도가 추진하는 주요정책에 대해 긍정보다는 부정적 견해가 많다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문제는 도민들의 여론을 외면하고 있는 제주도정에 있다는 사실이다. 도민들이 반대하는 사업을 공무원들만 족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지 않는가.

공무원들은 특정 자치단체장의 공무원이 아니라 도민의 공복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도민이 반대하는 사업을 밀어 부칠 공무원이 대명천지에 어디 있겠는가. 문제는 공무원들의 구태가 아니라 우근민 도지사의 정치적 판단이 아니겠는가. 공무원들은 지금 도지사와 도민사이에 중심을 못 잡고 헤매고 있을 뿐이다.
<이재홍의 미디어 엿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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