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훈이 만난 사람1-백기완

"백기완(白基琓). 1933년 황해 은율 생. 재야운동가. 1960년대 중반 한일협정반대운동을 계기로 통일민주화운동에 앞장섰으며, 3선개헌 반대와 유신철폐 등 1970년대 제3공화국하 민주화운동에서 남다른 역할을 했다.

1974년 '유신헌법철폐 100만 명 서명운동'을 주도하여 긴급조치 제1호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최초로 구속되어 징역 12년, 자격정지 12년 형을 받고 복역 중 1975년 형집행정지로 석방되었다. 1979년 'YWCA 위장결혼사건'을 주도하고 그 위원장을 맡아 계엄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구속,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1980년 4월 징역 1년 6개월 형을 받고 복역중 1981년 3·1절 특사로 석방되었다.

민주화운동 외에도 1972년 백범사상연구소를 설립하여 1980년 해체될 때까지 소장직을 맡으면서 〈백범어록〉 등을 출간했다. 1984년 다시 통일문제연구소를 설립하고 소장직을 맡아 자신의 저작과 통일 및 민주화운동에 관련된 책자들을 발간하고 있다.

1987년 대통령선거에서 대통령후보로 추대되었으나 선거 이틀 전 후보를 사퇴했고, 1992년 제14대 대통령선거에 민중후보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이상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나와있는 백기완 선생에 대한 소개이다.
한국의 대표적 재야운동가로서, 또한 대통령후보로도 알려져 있는 선생이지만, '통일운동가'라는 직함이 가장 어울릴 듯한 분...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는 히딩크 감독과 친한 재야어른으로 알려져 있다고도 하는데...
지난 3일, 하도리 창흥동 철새마을에서 백기완 선생을 만났다.
백선생은, 지난 31일 제주도의회가 주최한「참여정부에 있어서의 대의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과제와 해결방안」이란 제목의 연찬회에, '인생, 하늘, 바다'라는 주제 강연차 참석했었다. 오랜만에 이왕 오시는 김에 사모님과 함께 제주에 며칠간 머무르시다 갈 예정이시다.

필자가 하도리에 도착한 무렵은 오전 11시경, 이날 오전, "사람이 조그만 짐승을 잡는 게 좋은 일이 아니라 생각하지만 같이 온 젊은이들의 성화에 못이겨 낚시배를 함께 탔다"며 당신도 고기(어랭이)를 3마리나 잡았다고 너털웃음을 터뜨리신다.

잠깐만 '인터뷰'를 부탁드린다고 하자 "뭘 그런 거 물어보느냐"며 예의 언론에 대한 분노를 드러내신다. "신문이나 방송 다 악질적이야!. 물어보려면 통일문제나 물어보지, 「TV는 사랑을 싣고」라는 프로그램이나 참여해달라고 하질 않나(이 프로그램 제작진은 백선생을 모시기 위해 칠고초려를 했다는 소식이다) ..."

오해하지 마시라며 기자가 아니라는 설명을 드리자, 스스로 이야기 보따리를 줄줄 풀어 노신다. 이건 인터뷰가 아니고 야외에서 하시는 강연을 그냥 적는 꼴이지만, 오히려 자연스런 대화가 이루어져 더 좋다.

작년 부시 방한 때 서울 흥사단강당에서 부시방한 반대 집회가 열렸는데, 강연을 하셨더란다. 당시 말씀을 요약하면 이렇다.

"여러분! '깡패'와 '양아치'의 차이점을 아시오? '깡패'는 힘만 믿는 놈이요. 정의와 인도는 관계없이... 그래도 얘는 파격적 매력이 있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자기로 모르는 사이에 좋아하게 되지. 근데 '양아치'는 뒤로 와서 벽돌로 사람을 까거나 식칼로 찌르는 놈이야. 그래서 옛날말로 '꼴치'라고 해요. 또 '망난이'보다 못한 놈을 '개망난이'라고 하는데, 망난이는 사람을 죽이는 놈이지만 개망난이는 지 부모까지 죽이는 놈이라고 하지 않소. 근데 양아치는 이 개망난이보다 더 못한 놈이야. 그래서 그때 얘기했지. 현대의 '꼴치'가 누군가? 바로 부시다! 한반도의 전쟁을 도발하겠다는 놈이 부시인데, 이런 양아치가 국빈으로 오는데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마치 웅변을 하듯 거침없이 쏘아 부치시다가 눈을 지긋이 감으시며
"뚝딱손 바람개비 소리가 들린다. 처량하게 들린다...." 노랫말을 읊조리신다.

강연이 있은 후 며칠 있다가 LA타임즈 기잔가 하는 이가 전화 와서 선생님말씀이 신문에 났다고 한다. 요지는 "부시가 오면 날개쭉지를 부러뜨리겠다"던가... LA타임즈에서는 이렇게라도 백선생의 강연내용이 1단 기사라도 실렸는데, 한국의 언론은 모두 침묵한 것에 대해 몹시 서운하신 눈치다.

이거 단지 어르신의 '서운한 감정'으로 치부할 문제가 아니다. 몇년 전부터 민족의 화해와 통일이 우리사회의 화두로 자리잡고 있는 현실에서 그동안 이를 위해 앞장서 노력해 온 대선배의 의견은 뒤로 한 채, 이른바 학자연하는 전문가들의 주장만이 지면을 장식해 왔기 때문이다.

평화의 섬 제주를 지향하는 제주만 보더라도 그렇다. 요즘 평화를 얘기하는 이들이 진정 그 단어를 외칠 자격이 있는지 되물어 볼 필요가 있다. 안기부 장학생이었던 교수들이 남북화해와 통일을 주장하는 현실이고보면...

71세라는 연세에 어울리지 않게 혈색이 좋으시다. 얼핏 보면 60대 초반으로 보이신다 하니 웃음을 지으시며 "마누라 뭐 선물 줄 것 없소?"라며 너스레를 떠신다.

자연스레 이야기 주제가 제주로 옮겨간다.

"제주는 민족의 성지며. 우리 민족의 정신적 고향"이라신다.
지역언론을 통해 잠깐 얘기를 들으면서도 그 근거를 무엇으로 잡고 계시는지 궁금했었는데, 철저히 민중운동사적 관점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된다.이다. 제주가 몽골과 왜구, 미제국주의(4.3)에 맞서 가장 가열차게 투쟁해 온 역사를 가진 곳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얼핏 들으면 단지 립서비스 정도의 제주칭찬으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어지는 백선생의 말씀은 그가 제주를, 제주의 역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가슴으로 다가온다.

"10만평 정도의 땅을 확보하고 국비 3천억원을 들여(1년에 1천억씩 순차로 지원), '조선족(겨레)의 정신적 고향 문화관'을 제주에 지어야 해! 민족문화사적 차원에서 제주의 역사를 재창조하는 거지. '몽고를 때려부시던 문화관', '왜구를 때려부시던 문화관', '미제를 때려부시던 문화관' 등 이 3개의 문화관을 만드는 거야."

그래픽, 애니메이션, 조형 작업을 총동원하면 잘 만들 수 있을 것 같단다. 4.3평화공원이나 국제자유도시 선도프로젝트의 하나인 생태신화역사공원 사업추진 주체들이 역사관을 만들때 유념해야 할 대목이 아닌가 싶다.

이제 이야기 주제가 장준하 선생으로 옮겨간다.
의형제로서 두분 스토리는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지만 매번 들어도 새롭고 감동 그 자체다.

"장준하. 소주 한잔 먹어보면 알지... 어느날 장준하가 집으로 찾아와, '굽자우'하며 고기 한근과 소주 한병을 내밀었어. 근데 돼지고기를 굽는데 비게는 자기 앞으로, 살은 내 앞으로만 옮기더라구. 속으로 이 양반이 비게를 좋아하나부다 했지. 몇 년 후 이를 물어 봤더니 장준하 왈 '늙은 사람이 비게 먹고 콜레스트롤이 걸리면 좀 어떤가? 일하는 사람이 고기를 먹어야지' 하더라구... 참 인격자다."

등산을 갈 때도 짐은 나이가 더 든 자기가 지며, '세속의 짐은 자기가 지고, 백기완은 해방통일의 짐만 져라'고 하셨단다.

장준하 선생의 고귀한 인격을 더욱 절절히 느끼게 하는 대목은 바로 다음 대목이다.

유신체제 반대운동할 때 백선생하고 장준하선생이 중앙정보부에 잡혀가 일주일간 내내 고문을 받았는데, 일주일 후 하루는 중정 6국 부국장이라는 사람이 직접 심문을 하면서 여느 때와는 다른 표정으로 얘기를 꺼내더란다.

"이거 봐"
"왜 그러시오(축 늘어져서)"
"한가지 물어볼 것 있다"
"뭐요"
"너는 술만 먹으면 외상이나 바가지 씨우고 싸움질이나 하는 그런 놈인줄 알았는데, 누가 당신을 천재라 하데?"
"(속으로)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술 외상먹는 천재라는 말인가?"

그러면서 담배까지 은근히 권하더란다(안피웠지만).

나중에 알아보니, 장준하선생이 거꾸로 매달리는 고문을 당하면서

"나는 때려 죽여도 좋다. 그런데 조건을 들어주면 조사에 응하겠다. 그 조건이 뭐냐하면... 백기완은 고집이 세서, 맞아 죽어도 얘기 안할 것이다. 더 때리면 죽는다. 그가 죽으면 당신들은 정치적 반대자 한명 죽는 정도로 생각할 것이지만, 그가 죽으면 민족문화의 보고가 사장되는 것이다. 이는 인류문화사 차원에서의 손실이다. 백기완 손 안대겠다 약속하면 입을 열겠다"고 간청했다는 것이다. 그 때부터 별로 맞지 않고 조사 받았다고 한다.

이렇게 장준하 선생은 자기 동지를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줄 알았던 분이시라며 "장준하 얘기를 함부로 해서는 안된다"고 말씀하신다.

백선생을 만나러 왔다가 장준하선생까지 만나고 가는 셈이다.

함석헌, 김구, 장준하, 문익환, 계훈제...

우리나라의 통일운동 및 재야운동의 어른들이 이제는 대부분 세상을 뜨셨다.
어쩌면 백선생은 우리나라의 마지막 재야 통일운동계의 원로인 셈이다.

그렇게 좋아하시던 소주조차 사양하시는 것을 보면
혈색이 좋으신 것과는 달리 속 건강은 안 좋으신것 같다.
부디 오래 건강하시길...

돌아오는 길, 하도 난도(토끼섬) 입구를 지나며
선생님의 말씀을 떠올린다.

"아까 토끼섬 들렸더니 깨진 맥주병들이 보이고 쓰레기 때문에 영 속상했어. 강사료가 쌓이면 일부 떼어서 보내 줄께. 쓰레기 수거하는데 보탬이 되라고...
<이지훈의 쓴소리 단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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