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수확 둘
산딸
우리 아부지께선 그냥 '틀'이라 부르셨습니다.
어릴 적, 벌초를 가실 때면 도시락으로 들고 가셨던 차롱보다는 작은 '동그랑착'이라 불리던 그 그릇에 듬뿍 따 담아 오시곤 했지요.
유독 벌초가신 아버지를 기다리는 시절이기도 했습니다.
그 어린 시절을 더듬으며 몇 알 입에 넣고 오물거려 보았습니다.
똥꼬리라 불리던 찔레순도, 국수나무 새순도 유채동도 어린 시절의 맛을 잃었지만 유독 이 산딸만큼은 그 시절의 맛이 그대로인 듯 해서 미소 한 모금 머금었습니다.
곧 새까맣게 익어 쥐똥같은 모습 갖추겠지요.
쥐똥나무가 등장한 김에 제가 지닌 '쥐똥나무' 한 수 내려놓습니다.
좋은 계절 되시길 빕니다.
쥐똥나무
고봉선
허공을 남실대는 그윽한 향기
아지랭이 모락모락 피워 올리면
은밀한 곳에 숨어 있어도 나는 안다
그 울타리 안에 네가 있음을,
비틀대는 현기증과 달콤한 실랑이
코끝 멀리 있어도 빈 가슴 채우면
훑어내리다 주체 못하는 흥분
허리춤에 감추고 꺾어 든 가지 하나
둘둘 말아 어깨에 둘러멘다
물 위에 걸터앉은 새침데기 네 모습
연분홍 사랑 같은 건 난 몰라
머리 풀어헤치고 스멀스멀
내 폐부 깊숙히 흘러들어
자궁 안에 둥지 틀고 눕는데,
네 모습 세상에 다시 피어날 땐
육 남매 굽어살피다 휜 허리
업은 세월 버겁다고 비틀대는 지팡이에
푸른 싹 틔우고 벌 나비 불러들여
쥐똥 같은 까만 열매 주렁주렁 열렸으면.
고봉선 시민기자
hyhhhyh@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