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개최된 삭도검토위원회 회의 이후, 다시 케이블카 문제가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이에 케이블카 문제의 본질은 무엇이며 해결방법은 없는지, 지금부터 세차례에 걸쳐 살펴 보려 한다.

박정희 정권부터 이어져 온 해묵은 논쟁거리

그 동안 전국적으로 자연공원 내 케이블카('삭도'라는 명칭이 전문적이며 법률상 용어로 사용되고 있으나, 대중성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여 여기서는 편의상 '케이블카'라 쓴다) 설치와 관련한 찬반 논란이 있어 왔지만, 아마도 가장 치열하게 전개된 곳이 한라산을 둘러싼 제주도가 아닌가 싶다.

'민족의 영산'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이 곳에 케이블카를 설치하려는 시도가 박정희 정권 시절부터 최근까지 이어져 온 '현재진행형' 이슈이며, 그만큼 논쟁의 역사 또한 깊다.

이와 관련한 '용역' 또한 없는 지방살림에 수억원의 재정(지난번만 하더라도 7억원)을 들여 수차례 시행됐으나, 논쟁을 잠재우기는커녕 찬반 갈등을 오히려 증폭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으며 이에 따라 막대한 혈세만 낭비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작년, 환경부에서조차 다시 이 문제를 '용역'을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 있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큰 우려를 갖었다. 어쩌면 필자가 현대판 희귀병인 '용역알러지병'에 걸려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지금까지 용역이란게 과업 발주자의 기대에 충실한, '예측 가능한(?) 결과물'을 종종 아니 대부분 제출해 왔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확인하기 때문이다.

다른 경우는 정책당국이 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예민한 사안의 경우, 외부 연구진의 '용역'을 통해 면피하거나 책임을 떠넘기려는 의도에서 비롯되는 경우도 있다. 어느 경우든 이는 '용역만능주의'로 귀결되며, 이른 바 용역에 참여한 몇몇 연구자들의 능력과 마인드에 의해 그 결과가 결정된다는 점에서 그 위험성은 상존한다 하겠다.

오해 마시기 바란다. 필자는 이번 용역을 발주한 환경부나 이에 참여한 연구진들의 능력이나 객관적 마인드를 폄하하거나 명예를 훼손할 의도가 전혀 없다. 오히려 환경과 관련해서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국책연구기관인 「환경정책평가연구원」에서 이 용역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대가 크다.

단 이 용역을 수행함에 있어 '적은 예산'과 '짧은 연구기간'이 우려된다는 점만 지적하고자 한다. 아무쪼록 이 연구용역이 제대로 이루어져 케이블카와 관련된 논쟁이 종식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하며 글을 연다.

검토의 출발점은?(문제해결의 근본 Key)

한라산 케이블카 반대운동을 시작한지도 벌써 10여 년이 다되고 있다. 한라산 자락에서 직접적인 반대운동을 벌이기도 했으나, 필자가 주력했던 것은 단순한 감성적 반대를 넘어서 객관적인 반대 논리를 개발해 내는데 있었다.

운동 초기에는 케이블카와 관련된 자료는커녕 국립공원과 관련된 자료조차 변변히 없어 애를 먹었다. 이곳 저곳, 심지어는 신문지상에 연재되는 보도내용까지 취합하고 관련법을 뒤적이면서, 겨우 문제의 윤곽을 잡게 되었다.

그것은 '케이블카 자체'가 아니었다. "케이블카가 환경을 보호하는가 아닌가"가 아니었다. 바로 "국립공원을 어떻게 이해하는가"가 문제였다. 이러한 근원적 물음에 이어 "국립공원의 지정목적과 관리방향은 무엇인가"가 이 문제를 해결하는 두 번째 물음이 된다. 왜 그런지 지금부터 미국의 사례와 한국의 자연공원법 규정을 중심으로 살펴보려고 한다.

미국의 국립공원 관리정책(요세미티 사례를 중심으로)

1871년 미국의회는 '옐로우스톤 공원법'을 제정했다. 그 다음해인 1872년 그랜트대통령이 이 법에 서명함으로써 세계 최초의 국립공원이 탄생된다. 역사가 짧은 미국인들이 전통을 자랑하는 유럽인들 앞에서 기죽지 않고 내세우는 자존심이 바로 자연자원인데, 미국은 「옐로스톤」을 지구상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한 뒤 "국립공원이야말로 미국인이 생각해 낸 아이디어중 역사상 가장 훌륭한 것"이라고 스스로 치켜세웠다 한다.

미국 또한 처음 국립공원 지정 당시, 공원 관리에 있어 자연보존적 측면보다는 관광목적의 이용에 더 비중을 뒀었다. 그러나 자연생태계의 철저한 보존 없이는 국립공원으로서 가치가 없으며 오히려 이용만족도에 떨어진다는 인식이 확산되어 자연생태계 보존을 전제로 한 공원이용을 도모하는 관리정책으로 전환한다.

그 중 대표적인 사례가 「야생으로 되돌리기(자연 그대로의 요세미티)」 20년 프로젝트를 시행한 요세미티 국립공원이다. 이 프로젝트는 지금으로부터 23년 전인 80년 9월부터 시작됐는데, 세계 국립공원 사상 처음으로 공원관리종합계획(GMP)이란 전략 프로그램을 수립했다.

96년 들어서는 GMP를 보다 구체화한 요세미티계곡 실천계획(VIP)을 발표, 21세기 요세미티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GMP나 VIP 모두 "공원 방문객의 이용·편의시설을 최대한 감축하는 것만이 요세미티를 살리는 길"이라는 확고한 믿음 위에 세워졌다.

이를 위한 첫번째 과제는 「공원 안 모든 자가용 승용차를 추방한다」는 것이었다. 방문객이 일단 공원에 들어오면 타고 온 자동차를 두고 공원에서 제공하는 셔틀버스를 타도록 유도함으로써 자가용 추방의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폐쇄된 자동차 도로는 대부분 자전거 전용 도로로 전환하거나 휴식공간으로 남겨뒀고 철거된 야영장은 요세미티 고유의 식물을 심어 야생 동·식물 서식지가 될 수 있도록 했다. 둘째로, 엄격한 입산제한 조치를 실시했다. 공원 곳곳에 「금지」(prohibit)란 팻말과 함께 "이곳은 자연복원 프로젝트가 시행되고 있으므로 절대 들어가지 마시오"라는 글귀를 적어 놓았다.

이러한 프로젝트의 시행 초기에는 많은 시민들이 "인간이 이용할 수 없다면 자연의 모습을 되찾아 본들 무슨 소용이 있느냐"며 공원 측에 항의했으나 공원 측은 이 같은 일부 시민들의 항의를 자연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진통」으로 규정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대다수 시민들의 인식은 공원 측을 이해하고 협조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VIP는 지금까지의 성과 외에 계곡 안 숙소 및 창고·수리시설 268개, 캠프장 116곳, 종업원 1,030여명의 숙소, 주차공간 1,200여대 분 등을 철거대상 시설물로 확정했고, 머시드 강변의 유서 깊은 다리 3개와 목장 2곳, 엘리노 호수를 잇는 도로 4곳을 철거하는 계획도 포함시켰다.

이를 위해 공원 측은 공원 경계선 밖 3㎞쯤 떨어진 엘 포탈이란 곳에 「제2의 요세미티 단지」를 건설했고, 계곡 내 공원 주요시설물 중 경찰서, 화재예방시설, 재난구조대만을 남기고 모두 제2의 단지로 이전키로 했으며,「시민들만 쫓아낸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심지어 '공원본부'도 이전했다. 상가건물은 빠짐없이 환경영향평가를 해 철거하거나 최소한 환경친화적으로 개조하였으며, 연방국립공원관리청(NPS) 요원 및 상인 등을 합쳐 공원 안 상주인구를 평소 170명, 시즌 때 480명으로 제한한다는 「인구억제」 정책도 세웠다.

철거와 이사 외에 자연경관 보존 및 생태계 복원을 위한 프로젝트도 활발히 진행시켰다. 계곡 안 미러호수 부근에는 자동차 도로를 갈아엎고 흙을 깔아 초지를 조성하는 등 복구작업을 편 것이다(이상은, 지난 96년 <경향신문>에 연재된 '창간 50돌 해외특별기획 : 세계의 국립공원, 생태계 보고 그 현장을 가다'(96.10.6 ∼96.12.28> 기사 중 요약 인용).

왜 미국 국립공원에는 케이블카가 없나?

요세미티의 사례를 다소 길게 인용한 이유는 한국의 국립공원 관리정책과 비교해 보기 위함이다. 물론 이 기사가 연재된 지 벌써 햇수로 7년이란 세월이 흘러 시의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지만, 여전히 그 내용 중에 참고할만한 합리적 핵심이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바로 국립공원의 최초 지정국가가 미국이라는 점, 그동안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정착된 미국의 국립공원 보호와 관리정책이 여타 국가에 비해 가장 '선진적'일 것이라는 판단에 근거한다.

종종 케이블카를 거론하면서 이른바 '선진국'(유럽, 일본, 호주 등)에 케이블카가 설치돼 있으니 우리나라도 설치하자는 주장을 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선진국이므로 그 나라의 모든 정책 또한 '선진적'이라 판단하는 모양이다.

이른바 선진국의 대명사로 불리어지는 미국의 최근의 제국주의적 패권주의 정책도 선진국이므로 용인하고 배워야 하는가? 나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도 대북 정책도 반대하지만, 그들 중에서 배울 것이 있다면 바로 국립공원 관리정책이라 생각한다.

다시 물어보자. 미국은 왜 그 많은 자국내 국립공원에 케이블카를 단 하나도 설치하고 있지 않는 것일까? 우리나라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광활한 면적인데, 조금 파괴되면 어떠랴는 생각을 가질 만도 한데... 그렇지 않은가?

정말 이것이 궁금해서 최근 미국의 여러 국립공원을 45일간 탐방하고 돌아온 서재철(전 제민일보 기자)씨에게 물어 보았더니 케이블카가 한 대도 보이지 않더란다. 요즘 곧잘 거론되는 '환경친화적 케이블카'를 설치할 기술이 없어서 그럴까?

필자가 이를 강조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그동안 수차례 '용역'을 실시하고 해외시찰이 조직됐지만 국립공원 관리의 선진지역이라 할 수 있는 미국은 검토대상으로 거론조차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그 알량한 '환경친화적 케이블카'라 선전되는 호주 스카이레일만이 단골 답사지역으로 선정돼 왔다.

현재 케이블카 문제는 크게 보면 국립공원 관리정책의 틀 속에 있기 때문에 케이블카 설치 여부는 그 나라의 국립공원 관리정책의 기조 속에 검토되어야 마땅함에도 이를 분리시킨 채(의도적이든 아니든) 케이블카가 환경적이냐 아니냐는 기형적인 논쟁으로 빠져들고 있다고 보여진다.

이는 지식인들이 종종 빠질 수 있는 함정인데 이러한 거시적 안목에서 접근하지 않았을 때, 그 결론은 뻔하다. "환경친화적 케이블카라면 고려해 볼만 한 것 아닌가?"라고. 그러면서 이를 반대하는 논자들에게는 '무조건적 반대론자'로 매도하기까지 한다.

다시 돌아오자. 왜 미국은 그러지 않고 있을까? 앞서 잠깐 언급했지만 미국은 230여 년에 걸친 국립공원 관리정책을 시행하며 여러 시행착오를 반복하는 가운데 '확고한 철학'을 가지게 됐다. 그것은 바로 국립공원을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돌려놓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인공시설은 철거하고 애써 설치해 놓은 공원 안 자동차 도로조차 뜯어냈다. 숲속에 그림처럼 지어놓은 숙박시설도 공원 밖으로 이전하고 있다(만일 케이블카가 설치됐었다면 그 시설 또한 과감히 뜯어냈을 것이다).

멸종된 늑대를 다시 불러들이기 위해 수년간 공을 들이는가 하면 외래 동·식물을 추방하기 위해 엄청난 돈을 쏟아 붓기도 한다. 국립공원의 존재 의미가 '국민이용 편의'에서 '자연보전 중심'으로 분명하게 옮겨간 것이다. 이 같은 환골탈태(換骨奪胎)는 국립공원의 보전과 개발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올라 있는 우리 현실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이것이 바로 현재의 케이블카 논쟁을 푸는 열쇠이다.(계속)
<이지훈의 쓴소리 단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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