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분실하고 나를 반성하다

참 이상한 날입니다. 회사에 출근하고 여느 때처럼 근무를 하는데 휴대폰이 울리지 않습니다. 오전 열한 시가 지나도록 단 한 통도….

가끔 회사의 전화회선이 다 통화중이면 제 휴대폰으로 울리는 경우가 많은데 다들 약속이나 한 듯 조용합니다. 회사의 전화가 통화중이어서 잠시 보류를 한 적도 두 번이나 있었는데도요.

사실 제가 하는 일이 여행사에서 단체를 담당하는 팀장이라 견적을 보내고 그에 대한 내용을 상담할 때는 꼭 제 휴대폰번호를 알려드립니다. 그러면 고객 쪽에서는 궁금한 사항을 제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 세세한 내용을 상담합니다.(한밤중에 걸려올 때는 정말 난감합니다.)

이런 상황에 휴대폰이 단 한 번도 울리질 않으니 조금 의아해 하고 있을 즈음 아내에게서 제 사무실로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왜 휴대폰 안 받아?"

전화기 저 편의 아내 목소리는 상당히 짜증나 있었습니다.

"엥 한 번도 안 울렸는데…."

그러면서 도시락과 지갑, 담배 등등 온갖 잡동사니가 들어 있는 제 가방 속에서 휴대폰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아내의 "오늘은 날 잡고 아주 오래도록 술 마실 것"이라는 전화를 끊고 본격적으로 휴대폰을 찾았는데 어디에도 없습니다.

어제의 행적을 더듬어 보았는데 도무지 휴대폰을 분실한 만한 꺼리를 찾지 못하겠습니다. 술을 마시지도 않았고 퇴근 무렵에도 친구에게 전화가 와서 받았고 평소와 다름없이 퇴근 후에 걸어서 집으로 갔고…. 다만 그 휴대폰을 가방에 넣었는지 바지 주머니에 넣었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혹시 집에 있을까 전화를 하니 어머니가 받습니다. 집에도 없답니다. 지금까지의 제 휴대폰의 고요는 울리지 않은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것입니다.

회사전화로 제 휴대폰번호를 눌렀습니다. 몇 번인가는 계속 울리더니 이내 낭랑한 여자의 음성으로 바뀝니다.

"연결이 되지 않아 삐 소리 후 소리샘으로 연결 됩니다 연결 후에는 통화료가 부가되오니…"

다시 해도, 다시 해도 똑같습니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숱하게 저처럼 휴대폰 통화를 시도했을 것입니다. 마음 좋은 어떤 사람이 제 휴대폰을 습득해서 받아 주기라도 한다면 좋으련만…. 숱하게 휴대폰 벨이 울렸는데도 아무도 받지 않는 걸 보면 그런 행운도 일찌감치 포기해야 하나 봅니다.

회사전화로 저를 찾는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합니다. 말미에는 꼭 "휴대폰 안 받으시네요…" 한마디씩 합니다.

저는 그 말에 "아 네… 계속 회사전화로 통화중이어서요…" 하고 얼버무립니다.

그런데 마침 점심 지나서 세미나 고객들이 제주공항에 도착합니다. 한 번의 답사와 수십 번의 통화 끝에 유치한 중요한 행사이고 제가 일정 동안 동행을 해야 하니 휴대폰이 없으면 도저히 업무가 안 됩니다. 시계를 보니 남은 시간은 한 시간이 채 되지 않습니다.

급한 마음에 회사 근처 통신회사 대리점에 가서 임대폰이 있나 문의했습니다. 현재 보유하고 있는 것은 없고 오늘 저녁에나 결과를 알려준다고 하니 마음이 다급해집니다. 휴대폰은 있어야 하겠고… 그렇다고 직원 것을 빌려 갈 수는 없고….

▲ 덕분에 새로 장만한 휴대폰입니다. 할부로 샀는데 다달이 아내에게 돈을 타내야 합니다. ⓒ강충민
그래서 고민 끝에 번호이동을 하고 휴대폰을 새로 장만했습니다. 그것도 최신형 슬림형으로…. 번호이동을 하니 생각보다 부담하는 금액은 크지 않았습니다. 덜컥 새로 휴대폰을 장만하니 나중에 휴대폰비용을 어떻게 아내에게 타낼까 하는 걱정도 앞섰지만 그것보다는 일단 위기를 모면했다는 안도감이 들더군요.

이렇게 새로 장만한 휴대폰을 들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공항에서 고객을 맞고 무사히 행사를 치렀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생긴 것이 있었으니 바로 분실한 휴대폰에 입력되어 있던 전화번호였습니다. 행사를 끝내고 한숨 돌려 새로 구입한 대리점에 갔습니다. 전 휴대폰에 입력되어 있던 전화번호를 새 휴대폰에 옮길 수 없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다시 찾기 전까지는 말이죠.

하긴 그도 그럴 것이 휴대폰은 지금껏 딱 세 번(새로 산 것 포함해서) 구입하면서 기계의 특성이나 외양, 기능 이런 것은 전혀 관심이 없었고 그냥 걸고 받는 것만 되면 되었으니까요.

▲ 책상 속에 발견한 10년 넘은 전화번호 수첩입니다. 이 속에 있는 연락처의 사람들과는 지금 전화하고 있을까요? 문득 궁금해집니다. ⓒ 강충민
그마저도 그 전에 한 번 바꿀 때도 워낙에 낡아 아내에게 이끌려 가서 어떻게 바꾸는지도 신경 쓰지 않았고요. 그저 아내가 시키는 대로 했을 뿐….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전화번호 입력이라는 기능이 참 편하다는 생각을 했고 자연스레 전화번호를 적는 작은 수첩을 멀리하게 되었고요. 이 수첩은 휴대폰이 보편화 되지 않을 때부터 지갑 속에 넣고 다니던 것이었는데 아마 고등학교 때부터 간직한 것 같습니다.
 
전 사실 워낙에 "최신" 혹은 "기능"이라는 것에 손사래를 치는 편이라 휴대폰분실후의 불편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저도 어느새 그 편리함에 익숙해졌나 봅니다.

▲ 짝잃은 배터리와 충전기입니다. 충전기는 새로 사지 않아도 사용가능했습니다. ⓒ 강충민
퇴근 무렵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전화번호를 헤아려보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가족부터… 당연히 아내의 전화번호는 알고, 집 전화. 회사전화, 누나, 동생의 집전화는 알고…. 그 다음 그들의 휴대폰 번호는….

참 미안하게도 큰누나의 휴대폰번호가 생각나지 않습니다. 일주일에 서너 번도 더 통화하는데…. 내친김에 친한 친구, 후배, 선배들의 번호도 생각해보기로 했습니다. 병순, 석훈, 경보, 형진, 진형, 동현 그리고 태욱, 성준, 허교수님, 태희 등등등…. 이렇게 쭈욱 이름을 써보는데 전화번호가 정확히 기억나는 이는 많지 않습니다.

끝번호가 생각이 나면 중간 번호를 모르겠고 011인지, 018인지, 010인지 그것도 헷갈립니다. 사실 제가 사소한 것도 기억을 잘 하는데 번호 앞에서는 맥을 못 춥니다. 이게 다 어느새 기계문명에 길들여진 제 탓입니다. 이제 그들에게서 전화가 걸려오기 전까진 제가 걸 수 있는 번호는 한정되어 있습니다.

▲ 문방구에서 새로 전화번호수첩을 샀습니다. ⓒ 강충민
퇴근 길 어둠이 내린 거리를 걸어가는데 생맥주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평소 같으면 아내에게 양해를 구하고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며 지금은 조합하지 못하는 그들의 전화번호를 눌러 "야. 튀김닭에 생맥주 한 잔 하자!" 했을 텐데 아쉽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는 불쑥불쑥 그들의 상황은 아랑곳 하지 않고 전화를 해댔던 것 같습니다. 우정 혹은 친하다는 명목으로 한밤중 그들의 단잠을 깨우며 "흠씬 두들겨 맞은 기분이다"라고 하며 위안을 받고자 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어김없이 밤 열한 시가 되면 휴대폰 전원을 끄고 혹시 모르는 그들의 애달픔을 들어주지도 않았고요.

집 앞에 거의 다다를 즈음 문방구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근 십 년만에 전화번호 수첩을 다시 샀습니다. 혹여 다시 발생할지 모르는 휴대폰 분실에 대비하기보다는 저의 필체로 다시 그들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으며 그들을 감사하고 싶습니다. 그들에게서 다시 전화가 걸려오면….

▲ 10년 넘은 전화번호수첩, 새로 산 휴대폰, 새로 산 전화번호수첩.. 이렇게 나란히 놓으니 기분이 묘합니다. 새로 산 수첩에 빽빽하게 소중한 사람들의 번호를 적을 작정입니다. ⓒ 강충민
외칩니다.

저를 아시는 분들… 전화 좀 해주세요… 앞으로 잘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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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에서 실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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