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번에는 미국의 국립공원 관리정책을 중심으로 케이블카 문제를 살펴 보았습니다. 이어 케이블카 문제의 본질을 진단하는 두번째 글을 올립니다. 앞 글이 서론격이라면 이번 글이 본론이라 할 수 있습니다.(필자)

"국립공원, '이용'에서 '보전'으로 정책변화"
"공원훼손의 주범은 탐방객이 아닌 정부"

한국의 국립공원 관리정책의 변화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가? 미국의 국립공원이 230여 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데 반해 우리나라는 겨우 35년 밖에 안되는 일천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1967년 12월 지리산이 국내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이후 20여 개의 국립공원이 지정됐다. 1986년 12월 자연공원법이 개정되면서 국립공원관리공단의 설립근거가 마련되었으나 관리공단은 '건설부' 산하에 있었다. 1991년에 들어서 국립공원관리공단 주무부서가 '건설부'에서 '내무부'로 이관되었다가, 1998년 들어서야 비로소 주무부서가 '환경부'로 이관되게 된다.

주무부서의 변천 과정만 보더라도 쉽게 추정할 수 있듯이, 그동안 우리나라의 국립공원 정책은 보전과는 거리가 먼 개발과 이용에 방점을 두어 왔다.

▲ 6∼70년대에는 국토개발 위주의 개발중심 정책이 기조를 이루게 되는데 바로 현재의 국립공원 훼손의 일차적 원인인, 접근도로를 개발하는데 중점을 둔다. 이 시대는 관광지, 유원지적 개발로 자연공원 특성을 상실한 시기라 할 수 있다.

▲ 이러한 반환경적 국립 공원 관리정책은 궤도 수정되지 않은 채 80년대 들어서 오히려 고도화된다. 국토이용 수용시설 개발위주의 정책에 따라 국립공원 내에 골프장, 콘도, 스키장 등 대규모 민간개발사업이 허가됐기 때문이다.

▲ 90년대에 들어서야 기간의 관리정책에 대한 문제제기가 부분적으로 수용되어 이용과 보전을 고려한 관리정책이 논의되기 시작했으며, 이때 비로소 국립공원의 관리목표 및 방향에 대한 개념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자연휴식년제, 취사, 야영제한 등의 조치가 시행되기도 했으며 자연훼손 지역과 등산로 복구사업 등이 실시되기도 했으나 관리기구 미비, 예산과 전문인력의 부족 등 한계를 노정하기도 했다.

98년 들어 국립공원 관리공단이 환경부로 이관되면서 보전 중심의 관리정책으로 점차 선회하기 시작했다. 공원지역 내 음식점이나 여러 위락 시설 등의 공원 외 이관 정책이 실시된 것도 이 때부터의 일이고 생태탐방로 등의 시설로 탐방문화를 바꾸는 시도도 최근에야 시작됐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그 동안 이용과 개발 중심에서 보전을 균형적으로 사고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미국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 정도의 짧은 기간에 본 궤도를 찾기 위한 노력이 시작됐다는데 대해 높이 평가할만 하다 하겠다.

한국의 국립공원 정책이 제자리를 찾게 됨(불완전하지만)과 동시에, 보전 중심의 관리정책으로 변화하게 된 것은 2000년대 들어서이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2001년도에 개정된 자연공원법 상의 국립공원 개념 규정이다.

자연공원법상의 국립공원 지정 목적

2001년도에 개정된 자연공원법 제1와 2조에 따르면 국립공원의 정의와 지정 목적을 "우리나라를 대표할 만 한 자연생태계나 자연 및 문화경관 등을 보전하고 지속 가능한 이용을 도모함"(자연공원법 제1·2조)이라고 규정되어 있다. 그냥 스치고 지나갈 수 있는 이 짧은 문장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는 매우 중요하므로 주의 깊게 살펴볼 것을 요구한다.

95년에 이 법이 개정될 때만 하더라도 관련 조항은 "우리나라의 풍경을 대표할 만 한 수려한 자연풍경지를 보호하고, 지속가능한 이용을 도모하여 국민의 보건 및 여가와 정서생활의 향상에 기여하고자 함"이라고 되어 있었다. 즉 이 때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의 국립공원 정책은 자연생태계의 보전과 자연경관의 보호에도 관심을 두고 있지만, 여전히 국민들의 이용 도모에도 대등한 방점을 찍고 있었다는 것이다(큰 골격은 일본의 법률을 모방하고 있다. 일본은 "자연풍경지역과 생태계를 보전하고, 이용을 증진함으로서 국민의 보건·휴양 및 문화생활에 기여"한다고 되어 있다. 이러기에 일본의 많은 국립공원에는 케이블카가 설치되어 있는 것이다).

물론 95년 법안을 개정하면서 당초 '적정한 이용'에서 '지속가능한 이용'으로 문구를 수정함으로서, 이전보다는 진일보한 내용을 담게 되었지만 전문 내용의 전체적 뉘앙스는 주로 현시대를 사는 국민들의 이용편의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점을 부정하기 어렵다.

그런데 2001년에 개정된 법 조항에는 기존의 "국민의 보건 및 여가와 정서생활의 향상에 기여" 운운하는 구절을 삭제하고 '지속가능한 이용' 이라는 구절만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매우 중대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국립공원 관리정책도 미국과 같은 보호 중심의 정책으로 분명히 선회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미국의 국립공원법은 지속가능한 이용이란 개념을 가능한 자연그대로 "다음 세대들에게 물려준다"는 것으로 보다 직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필자가 케이블카와 직접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자연공원법의 변천과정을 살펴 본 이유는, 국립공원의 개념과 목적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는 케이블카 문제가 어디서 출발하고 그 해결방법은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 알 수 없다는 확신 때문이다.

이러한 이해가 부족한 논자들은 국립공원은 보전도 해야 하지만 국민들의 이용도 똑같이 고려해야 한다는 논리를 제기한다. "보전와 이용의 균형(혹은 조화)"이라는 명제는 이른바 지식인들의 가치중립적 의미로 자주 사용하는 말이지만, 공무원들 중에 이런 생각을 갖는 분들이 특히 많고, 이른바 '환경'을 전문적으로 연구했다는 학자들 중에도 국립공원의 지정목적을 이렇게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하지만 이러한 규정은 이미 한물 간 논리임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90년대에는 통용될 수 있는 얘기지만 적어도 2천년대에는 아니라는 것이다. 필자가 이를 강조하는 이유는, 케이블카 설치 당위성을 제기하는 주장의 '기초'에는 십중 팔구 국립공원에 대한 이러한 잘못된 이해에 근거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첫 단추'가 잘못끼워지면 그 결과는 뻔하지 않은가?

이렇게 얘기하니 '지속가능한 이용' 이라는 구절 속에 '이용'도 균형있게 고려하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을 펴는 사람도 있음직하다. 이는 '지속가능성'이란 개념에 대한 천박한 이해에 근거하는 것으로, 최근 '지속가능한 개발'이라는 의미를 희화화시키는 개발지상주의자들의 개념오염 시도도 한몫하고 있다고 보여진다(오해 마시라. 그렇다고 필자가 국민들의 이용을 무조건 반대하고 보호만 해야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필자가 생각하는 국립공원의 지속가능한 이용을 위한 대안은 본문의 중간 중간에 제시하겠다).

하나만 더, 2001년도에 개정된 법에는 기존에 없던 내용이 추가되어 있다. 그것은 다름아니라 "자연 및 문화경관 등을 보전"한다는 내용이다. '자연경관'의 보전 또한 중요한 국립공원의 지정 목적에 포함돼 있는 것이다. 즉 이 규정에 따르면 국립공원의 자연 및 문화경관을 해치는 어떠한 시설물도 용납하지 말아야 된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차제에 케이블카도 케이블카지만 국립공원 내에 마구잡이로 꼽아 경관을 망치고 있는 '송전탑'과 '송신탑'도 어떠한 방법으로든 해결방안을 모색해야 할 때가 됐다).

국립공원 훼손의 주범은 누구인가?

이제 각론으로 들어갈 차례다. 케이블카 설치 찬성 논리 중 제 일로 거론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과도한 등산객의 집중과 이로 인한 등산로의 파괴를 든다. 겉으로 보면 맞는 말이다. 99년만 하더라도 연 3천만명에 달하는 국민들이 국립공원을 찾았고, 이로 인해 생태계 파괴, 답압에 의한 등산로나 야영지의 훼손, 쓰레기 처리문제 등을 발생시켰기 때문이다.

이러한 드러난 현상만을 보고 그 동안 정부는 국립공원이나 자연보호지역의 훼손 원인을 국민 탓으로만 돌려 왔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국립공원 파괴의 더 큰 책임은 국가에 있다. 앞서 우리나라의 국립공원 관리주체와 관리정책의 변천사를 통해 알 수 있듯이 그동안 국립공원을 유원지나 관광지로 여기거나 국립공원 내 대규모 민간개발 사업(골프장, 스키장 등)을 허가해 준 것이 바로 대한민국 정부이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들이 국립공원에 접근하기 쉽게 산꼭대기까지 도로를 개설한 것도 바로 국가이다. 현재까지도 자연공원법 시행령에는 각종의 시설이 '공원시설'로 규정되어 있어 마음만 먹으면 어떠한 시설도 설치가능한 게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그동안 보호보다는 이용에 무게중심을 둔 정부정책의 필연적 결과이다.

국립공원을 유원지나 관광지로 생각한 정부정책이 낳은 결과가 - 국립공원을 관광지로 활용해야 한다는 생각은 관광이나 개발 쪽의 전문연구자만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황당하게도 환경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학자들 중에도 종종 이런 경우가 있다 - 아직도 국립공원에서 종종 보이는 불건전한 행락문화(술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추는)다. 이러한 행태나 등산로에 쓰레기를 버리는 탐방객의 행태는 단속과 비판의 대상이 될 뿐, 왜 이런 탐방문화가 일반화되었는지 반성하거나 책임지는 기관을 찾기는 어렵다.

만일, 이용객들의 편의를 우선하고 그들의 자유로운 이용을 보장하는 관리정책에서 탈피하여, 국립공원이란 국민 모두가 관행적인 욕구를 절제해가면서 이용하는 곳이라는 대국민 홍보정책을 일찍 시행했다면, 이러한 활동의 제한이 장기적으로 보면 국민모두의 권익을 보호하게 되는 것(이것이 지속가능한 이용의 핵심이다)이라는 설명을 꾸준히 했다면, 꼭 '정상정복' 만이 산을 찾는 목적이 되어서는 안되며 국립공원 탐방자에 대한 서비스 및 분산효과를 위해 일찍 Visitor Center, 생태학습장, 자연학습 탐방로를 조성하거나 자연해설 프로그램을 운영했다면, 이런 모습이 지속되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 마운트 레이니어 국립공원처럼, 「쓰레기를 버리지 맙시다」 따위의 단순한 구호 차원이 아니라 자연생태계의 원리를 쉽고 친절하게 설명해 자발적인 협조를 유도하는 인상적인 「환경 교육」(environmental interpretation) 프로그램을 실시했어도 이랬을까? 미국 국립공원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공원 특성에 맞는 환경교육을 개발하여 시민들과 호흡을 같이 하려 했다면? 케이블카 운운하기 전에 민족의 영산, 동북아 식물의 보고라 칭해지는 한라산에 비지터센터 하나 없는 현실을 보면서, 한라산을 찾는 탐방객들에게 '남한 최고봉' 이상의 생태적 가치를 설명해 주지 못하는 현실을 보면서도?

이 외에도 그간 우리나라의 국립공원의 파행적 운영을 초래한 재정과 구조적 원인 등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여기서는 생략한다. 단지, 왜 외국의 국립공원 탐방행태는 학습 및 휴양인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등산중심이거나 놀이개념(유원지 개념)으로 찾는가 하는 근본적인 물음과 함께 해결대안을 찾아야 함을 강조한다. 다행히 최근 들어 전국 각 지역의 국립공원에 비지터 센터와 생태탐방로들이 만들어지고 있고 자연해설프로그램이 운영되면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는 점에서 기대해 볼 만 하다.

이제 더 이상 "우리는 국립공원이란 하드웨어만 있고 공원을 운영하는 소프트웨어는 없다"(유기준)는 자조적인 평가가 나오지 않기를 기대할 뿐이다.(계속)
<이지훈의 쓴소리 단소리>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