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지역 카메라기자 취재활동 보장 요구하며 취재거부…침묵시위

각종 시위현장을 쫓아다니며 도민들에게 다양한 영상과 사진으로 시위현장의 생생한 모습을 보도해 오던 도내 카메라 기자들이 이번에는 스스로 카메라를 내려놓고 시위에 나섰다.

다양한 사건·사고 현장에서 벌어지는 뉴스를 성역 없이 취재해 도민들에게 알권리 차원에서 뉴스를 제공해 온 제주지역 신문·방송·통신의 카메라 기자들의 모임인 제주카메라기자회(회장 정이근·제주일보 사진부장) 소속 기자들이 8일 오전 제주국제공항에서 취재활동 보장을 요구하며 침묵시위를 벌였다.

일반 시민들이 보기에는 어디든지 막힘 없이 뛰어들어가 물불 안 가리고 취재를 하던 카메라기자들이 자신의 생명줄이나 다름없는 카메라를 땅바닥에 내려 놓고 '국정원은 제주공항 취재를 보장하라'는 피켓을 들어 침묵 시위하는 모습에 "세상이 이런 일도 있나"라며 의아해 할 현장이었다. 제주에서는 처음으로 벌어진 카메라기자들의 시위였다.

제주에서 처음 벌어진 카메라 지자들의 시위….사진기자들의 쌓였던 분노 폭발

그러나 도내 카메라 기자들 입장에서는 제주공항공사,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만 제주공항 보안을 책임지고 있는 국정원에 그 동안 쌓여왔던 분노가 이날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것이었다.

제주국제공항에서는 이날 건설교통부 제주항공관리사무소가 150억원을 들여 준공한 관제탑 개관행사가 열렸다.

제주지역 언론사 카메라 기자들은 당연히 개관행사 취재에 들어갔고, 또 이날 행사의 하일라이트인 관제탑을 취재하는 것은 기자들에게는 당연히 주어진 책무였다.

그러나 국정원은 카메라 기자들의 관제탑 취재를 통제했고 3명의 기자만 관제탑을 취재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관제탑 개관행사에서 관제탑 취재 통제…카메라 기자 취재거부·취재 기자도 동조

   
그 동안 국정원의 취재통제에 강한 불만을 가져왔던 카메라기자들은 국정원의 이같은 통제에 강력히 반발, 취재를 거부했고 현장에 있던 보도 기자들도 국정원의 이같은 일방적인 방침에 따를 수 없다며 취재를 거부, 제주공항 현장에서 침묵시위를 벌였다.

도내 카메라사진기자들의 시위는 이날 행사에 대한 보도 통제가 직접적인 계기가 됐으나 실제로는 상당한 불만이 쌓여왔었다.

제주공항은 국내공항중에서도 가장 보안이 엄격할 정도로 소문난 공항으로 그동안 제주공항을 취재하려는 보도·카메라 기자들과 이를 막으려는 공항공사 측과 크고 작은 마찰이 잇따라 발생했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지난 2월 APEC 정상회의 개최지 선정을 위한 정부의 APEC 실사단이 제주공항 현장에 대한 실사를 벌였을 때였다.

APEC 실사단 공항 실사 당시 부산공항은 취재허용, 제주는 '철통보안' 불허

제주사회의 초미의 관심사가 된 이날 실사에 도내 언론인들은 20여명이 취재에 나섰고, 실사단은 공항 귀빈실에서 공항시설 및 보안상태 등에 대한 브리핑을 받은 뒤 활주로와 계류장 등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계류장으로 이동했으나 공항공사 직원들은 "사전 취재승인이 없었다"며 기자들의 현장 취재를 통제해 결국 중요한 취재가 무산됐다.

그러나 이보다 이틀 앞서 부산공항공사에서 진행된 APEC 실사단 현장 조사에서는 현지 기자들에게 계류장 취재까지 허용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도내 카메라 기자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았다.

당시 현장에서 취재를 통제 당했던 한 기자는 "APEC 행사가 얼마나 중요한 행사인가. 당시 부산 언론에서는 제주공항에 문제가 많다며 부정적 기사를 써 보낼 시기였다. 그렇다면 제주에서는 무엇이 문제인지, 아니면 부산에서 의도적으로 제주공항을 폄하하는 것인지 확인해야 하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제주공항은 보도를 통제했다"고 말했다.

제주공항 전국공항 중 '취재통제' 가장 심한 기관으로 악명 높아
 
이 기자는 "보안은 충분히 이해한다. 또 기자들도 협조해야 한다. 그러나 부산은 취재기자들에게 충분한 배려를 하면서 취재협조를 하는데 제주는 안된다는 것은 '보안' 문제가 아니라 제주공항공사와 국정원의 비뚤어진 '권위의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라며 당시 상황을 소개했다.

공항공사는 대한항공이 지난4월 '장애인의 날'과 '세계 안내견의 날'을 맞아 제주공항에서 시각장애인들이 보호자 없이도 안내견의 도움으로 항공기 탑승수속과 보안검사, 그리고 항공기까지 탑승하는 시각장애인 항공체험을 벌였을 당시에도 카메라 기자들의 현장 취재를 통제했다.

공항공사는 설과 명절 때 고향을 찾는 귀성인파 취재 때만 간간히 보도를 허용했을 뿐, 지난 해부터는 제주공항에 대한 취재를 거의 통제해 도내 기자들 사이에서는 최고의 '언론통제 기관'으로 명성을 날리는 실정이다.

   
카메라기자회 "공항 보안 미명 아래 국정원이 모든 것 조율"

제주카메라기자회는 이날 침묵시위 현장에서 발표한 성명을 통해 "제주국제공항은 국제자유도시의 관문으로서 연간 수백만명의 국내외 관광객들이 드나드는 곳으로 제주공항은 다른 지방은 물론 세계 각지를 연결하는 관광제주의 핵심시설 중 한 곳"이라며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공항에서는 각종 취재활동이 '보안강화'라는 미명아래 통제 당하고 있다"고 밝혔다.

카메라기자회는 "이는 제주공항보안대책협의회의 대표기관인 국정원이 이 모든 것을 조율하고 있으며, 한국공항공사가 공항의 출입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국정원 아래서 아무런 권한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며 국정원이 실제 언론에 대한 보도를 통제하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카메라 기자들은 "우리나라의 관문인 인천공항 등 다른 공항의 경우를 볼 때 이 같은 제주공항 보안기관들의 행태는 구시대적 발상에서 나온 반역사적,  반국민적 태도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며 국정원의 행태를 강력히 비난했다.

힘있는 기관행사 때는 취재허용…나머지는 불허…5·6공 당시 특권을 누리려나

기자들은 이어 "건설교통부 등 힘있는 기관의 행사 때는 취재를 허용하고 그 외 다른 취재를 허용하지 않는 무원칙한 '보안'은 과연 누구를 위한 보안이며, 국가기관의 행사 때는 보안이 철통같이 지켜지고, 언론이 취재를 하면 보안에 구멍이 뚫리냐"면서 "(보안기관들이) 5·6공 시절이나 있음직한 그런 특권을 누리려는 것인지 참으로 개탄스러운 작태가 아닐 수 없다"고 밝혔다.

이들은 "공항보안대책협의회 대표기관인 국정원과 공항공사, 건교부 제주항공관리사무소, 경찰 등 관련 기관들에게 권력남용을 즉각 중단하고,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며 보도통제 철회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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