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새벽 부모님이 걸었던 길을 따라 걷다

“넋 났저게. 그디 혼번 가 보라게.” (넋이 나갔다. 그곳에 한 번 가봐라.)

어머니가 근심스레 말을 꺼냅니다. 어제부터 성화십니다. “야이넨 곧당 봐도 병원가는 것도 몰르곡 할망집 가는 것도 몰람시냐!”(얘들은 말해봐도 병원갈 일과 할머니집 가는 것도 구분 못하느냐!“) 저희가 별로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을 하셨는지 저와 아내를 책망하며 방안으로 들어가십니다.

저와 아내는 요즘 며칠동안 딸 지운이 때문에 밤잠을 거의 못자고 있었습니다. 감기기운인가 싶어 소아과에도 매일 갔다 왔지만 열도 없는데 별다른 이상 없이 지운이가 통 밤에 잠을 제대로 못자고 있었습니다. 낮에 지운이를 봐주는 처남댁도 낮잠도 통 안자고 계속 업어달라고 칭얼대기만 한다고 했습니다.

지운이는 잠이 들었다가도 금새 깨서 울다, 보채다 했습니다. 그러면 아내와 제가 번갈아 가며 업고 재우는 것을 반복하면 새벽 무렵에야 설핏 잠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이틀 동안 계속 되니 여간 걱정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힘든 것은 아무렇지도 않지만 이제 갓 두 돌이 지난 지운이를 옆에서 지켜보노라니 애처로워 대신 아프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자꾸 할망집에 가보라고 권하는 것입니다. 퇴근 무렵에는 큰누나도 전화가 와서는 “무사 확확 할망집 가지 안행 뭐 햄시니!”(왜 빨리 할머니집에 가지 않고 뭐하느냐!)하며 저의 무신경을 탓했습니다.

아마 어머니가 전화로 저희 부부의 무지와 무성의에 대해 누나에게 낱낱이 얘기하신 모양입니다.

할망집이란 아기가 밤에 깜짝깜짝 깨서 울거나 놀랬거나 잠을 잘 자지 못할 때 찾아 가는 곳입니다. 그래서 제주에서는 비단 아이 뿐 아니라 어른들도 큰일을 당했거나 놀란 일이 있는 경우에는 “넋 났다” 혹은 “넋 나갔다”라고 하고 그곳을 찾아 가서 비는 것을 “넋 드린다” 라고 합니다. 그렇게 “넋을 드려주는 분들은 대개가 할머니들이셔서 할머니집의 제주방언인 “할망집”이라고 부르는 것 같습니다.(“넋드리는 디” 라고도 합니다.) 점집과는 엄연히 다른 곳이고요.

 
▲ 쌀,귤,배,사과,술 이렇게 준비했습니다.
ⓒ 강충민
 
사실 아내와 저는 할망집에 가기 싫다거나 게으름을 피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느 부모처럼 지운이가 아파할 때 대신 아파해 주지 못함이 못내 미안하고 가슴저림을 느끼구요. 그런데 요즘 아내가 회사에서 치르는 시험 준비 때문에 밤늦도록 공부를 하는 터라 그럴 짬이 없다고 생각한 거였지요. 맞습니다. 다 핑계이고 어머니 말씀처럼 저희 부부 무지하고 무성의합니다.

“엄마. 조들지 맙서. 내일 새벽에 지운이 돌앙 갔다 오쿠다.” (어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내일 새벽에 지운이 데려서 다녀 올게요.) 어머니 방문을 살짝 닫고 나오는데 채 얼굴표정은 보지 못했지만 적잖이 안심하는 모양이었습니다. 제가 지운이를 업고 달래는 사이 아내는 내일 할망집에 넋드릴 때 갖고 갈 과일, 쌀, 술을 사러 마트에 갔습니다. 이김에 원재도 같이 데리고 갈 작정을 했습니다.

새벽 네 시 자명종 소리에 깼습니다. 사실 지운이를 아내와 번갈아 가며 업느라 채 두 시간도 자지 못했만... 지운이는 또 밤새 울다 깨다를 반복했고요.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설핏 잠이 든 지운이를 안으려는데 금새 눈을 뜹니다. 또 한 번 홍역을 치를까 재빨리 “지운아 엄마,아빠랑 빠빵가자.”하는데 다행히도 울지는 않습니다. 저는 원재를 안고 아내는 지운이를 안고 집을 나서는데 어머니가 문을 열어주십니다. 여전히 얼굴에 근심이 가득합니다.

초인종을 누르니 한참 만에 문이 열립니다. 할머니는 깊은 잠을 주무셨나 봅니다.
방안에 준비해 간 쌀과 과일 술 내려놓으니 할머니는 옷을 갈아입고 들어오십니다. 주무시는 곳과 넋 드리는 방은 분리되어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 할망집을 온 것도 세 번째입니다. 그 때도 이렇게 새벽에 왔었고요.

 
▲ 커튼을 젖히면 불상과 탱화가 모셔져 있습니다.
ⓒ 강충민
 
찬 물이 든 큰 양푼을 할머니가 내려놓으며 “휘”하고 길게 휘파람처럼 숨을 내뱉습니다. 그리고는 한 쪽 벽면에 있는 커튼을 젖힙니다. 낯익은 탱화가 보입니다.
이제 시작하는 모양입니다.

탱화를 향해 정성껏 할머니가 절을 올립니다. 지운이는 다행스럽게도 울지 않고 말똥말똥한 눈으로 “함머니. 함머니.” 합니다. 원재는 방석위에 어른처럼 의젓하게 앉았습니다.

 
▲ 낡은 술잔입니다. 술잔의 술로 애들의 옷을 조금 적셔 머리를 살며시 눌렀습니다..
ⓒ 강충민
 
할머니가 절을 올리고 탱화를 마주보고 앉으니 아내가 재빨리 돈을 드렸습니다. 할머니는 쌀 위에 돈을 얹고는 헛기침을 한 번 하고 방석에 앉습니다. “야이가 예 밤이도  안장 막 울엄수다. 병원도 갔다 오고 해신디 열도 어신디예. 경허곡 아들도 봐 주곡예.” (얘가 밤에 잠 안자고 계속 울어요. 병원도 다녀왔고 열도 없는데. 그리고 아들도 봐 주세요.)

제 무릎에 앉은 지운이를 가리키며 재빨리 할머니에게 얘기 했습니다.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저희가 사는 곳, 저와 아내의 나이, 성, 원재와 지운이의 나이와 이름을 묻습니다.

 
▲ 할머니입니다. 앞모습을 찍으면 혹여 누가 될까 차마 못하고 뒷모습만 찍었습니다.
ⓒ 강충민
 
할머니의 간절한 기원이 이어집니다. “강씨 자손 올리 마흔 박씨 자손 서른 요답. 동새배기 초자오랑 이추룩 빌엄수다.못장 앵앵 우는 애기 돌앙 오난 영해그네 가거들랑 꼭 좀 재와줍서.“(강씨 자손 올해 마흔 박씨 자손 서른 여덟. 이른 새벽에 찾아와서 이렇게 빌고 있습니다. 잠 못자서 앙앙 우는 아기를 데리고 왔으니까 이렇게 치성을 빌어 돌아가면 꼭 잘 자게 해 주십시요.)

“구진거 묻엉오곡 안 좋은 거 보와불곡 몰랑 묻엉 온거 싹 다 걷어 가 줍서.”
(더러운 것 묻어서 오고 안 좋은 것 보게 됐고 몰라서 묻어 온 것이 있다면 한 꺼번에 다 걷어 가 주십시요.)

“찻질에서 노래곡 가회당에 탁 푸더졍 노래도, 그땐 이거 아무일 아니난 기냥 넘어 비신디 이제 보난 미신 일인곡, 두린 것들이 애들 질르난 파싹 겁이 난 일이라...“
(찻길에서 놀래고 계단에서 넘어져서 놀랬는데 그때는 아무일도 아닌 것처럼 그냥 넘어 갔는데 이제사 보니 무슨 일인가, 어리석은 부부가 아이들을 기르다 보니 부쩍 겁이 나서...“)

간절한 기원이 이어지는 중에 할머니는 손짓으로 저희에게 갖고 온 원재와 지운이의 옷을 달라고 합니다. 술잔의 술로 옷을 조금 적셔 아이들의 머리에 살며시 세 번씩 누릅니다.

그리고는 창문밖으로 하얀종이를 태워 날리고는 앉아서 아이들을 부릅니다. “강 원재야!” 하고 물으니 원재가 “예”하고 대답합니다. “아이고 우리 원재 오랐구나” (아이고 우리 원재 왔구나.) 지운이에게도 똑 같이 했는데 지운이는 대답하지 않아서 제가 대신 대답했습니다. 쌀을 집어서 세어보더니 저에게 아내에게 먹으라고 했습니다. 저희들은 언제나처럼 쌀알을 씹지 않고 삼켰습니다.

“이제 오랑 집이 가민 아뭉터 안 허키여. 조들지 말앙 가라.” (이제 왔다가 집에 가면 아무렇지 않을거다. 걱정하지 말고 가거라.) 할머니가 집은 쌀알을 바라보며 저희에게 안심시킵니다.

어릴 적 저는 유난히도 가위눌림이 심했습니다. 식은땀을 흘리고 한 밤중에 소리를 지르면, 새벽이 되면 어김없이 아버지와 어머니는 저를 들쳐 업었습니다. 새벽 세시쯤 되는 시간 주섬주섬 저의 옷을 입히고 이웃마을 할망집에 갔습니다. 그것도 한 시간 가량이나 걸어서 그 길을 걸었던 것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쌀과 과일과 술이 든 봉지를 들고 저는 아버지의 넓은 등에 얼굴을 묻으면 금새 잠이 들었습니다. 꿈결처럼 잠결처럼 아득히 새벽길에는 우리 셋 밖에 없는 듯 했고 어느새 도착하면 알싸한 향내음이 코를 찔렀습니다.

할망집에서 저는 어머니의 무릎을 베고 다시 잠이 들면 두런두런 할머니의 기원이 이어졌고 누군가의 손이 자꾸 얼굴을 어루만지고 손을 잡아 주었습니다. 아버지였습니다.

이제 저도 당신들이 걸었던 그 길을 따라 걷습니다. 너무도 편하게 따뜻하게 히터가 작동되는 차를 타고 말입니다. 돌아오는 길 다시 저를 업고 집까지 걸어 왔을 그 들을 생각하며 괜시리 이 길을 걸어보고 싶어졌습니다.

어느새 동이 터오고 있었습니다.

 
▲ 원재가 더 없이 씩씩합니다.
ⓒ 강충민
 
▲ 다녀오고 나서 지운이가 잠도 잘 잡니다. 부쩍 많이 자랐습니다.
ⓒ 강충민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에도 실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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