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학사일정 거부투쟁 중인 제주교대 비상대책위

제주초등교육의 산실인 제주교육대학이 중병을 앓고 있다.

내부적으로는 총장선거 파문으로 교수들이 대학 선거관리위원회측과 개혁교수협의회 측으로 나뉘어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고, 외부적으로는 교대·사대 통폐합에 맞서 제주교대 전 학생이 학사일정 전면 거부투쟁에 들어갔다.

교수들이 '총장' 자리를 놓고 다투는 반면, 학생들은 대학의 존립을 위해 거센 투쟁을 벌이고 있다. 누가 교수이고, 누가 학생인지 분간이 가질 않는다.

제주교육대학을 바라보는 제주사회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교육감 불법선거에 4.15총선, 그리고 6.5 재·보궐선거에 진력이 난 상황에서 또 다시, 그것도 지성의 전당이라 할 대학에서 교수들이 총장자리를 놓고 싸움을 벌이는 모습을 연출했으니 도민들의 시선이 고울 리 없다.

학생들은 대학존립위해 투쟁…교수들은 총장 자리 놓고 싸움질

이 와중에 터져 나온 게 '교대-사대 통폐합'에 반대하는 교대생들의 전면적인 학사일정거부 사태이다. 교·사태 통폐합문제는 사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오래 전부터 교육인적자원부에 의해 준비돼 왔다. 그러나 무엇이 문제이고 학생들은 왜 학사일정거부라는 극한투쟁을 하는지 이를 충분히 아는 도민들은 그리 많지 않다.

"지금까지 잘해 왔는데 왜 지금에서야 합칠 필요가 있어. 괜한 문제만 일으키고 말야" "통합하면 좋지 않나. 제주대에 통합하면 예산도 절감하고, 좋은 여건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것 아냐" 대충 이 정도가 통폐합에 대한 추상적인 찬반 논리이다.

그러나 학생들을 도민사회보다 한층 더 성숙된 고민을 한다. '초등교육의 질 저하', '지역인재의 유출' 등등 보다 거시적인 고민이 깔려 있다.

지난 7일부터 벌어진 전면적인 학사일정 거부투쟁을 이끌고 있는 제주교대비상대책위 집행부들을 9일 이 대학 총학생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고용석 비상대책위원장(컴퓨터교육과 3)과 김기범 집행위원장(사회과교육과 3), 김승찬 투쟁국장(실과교육과 3)은 기자가 총학 사무실을 찾은 시간에도 향후 투쟁방법에 대한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 고용석 비상대책위원장(컴퓨터교육과 3).
- 많은 도민들이 지금의 사태에 대해 잘 모르고 있습니다. 저 역시도 추상적으로만 알고 있을 뿐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대학과 대학을 구조조정하고, 대학사회에 경쟁개념을 도입하겠다는 게 정부의 방침입니다. 현재 교육인적자원부 내에 있는  '교원양성체제개편추진단'에서 8월말에 이같은 대학 구조조정 계획안을 내 놓을 예정입니다. 그러면 공청회를 거쳐 9월 임시국회에 상정해 내년부터 시행에 들어간다는 일정을 잡고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국립대학의 사범대와 교육대학을 통폐합하는 문제이며, 그 첫 케이스로 바로 제주교대와 제주대 사범대를 통폐합시키겠다는 게 교육인적자원부의 생각입니다. 도세가 부족하다 보니 이런 문제도 항상 첫번째로 걸립니다."

"교육의 질을 높이겠다 하면서 예산절감 위해 구조조정만 강행"

- 지금 우리사회는 사회 전반에 낀 거품으로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대학도 예외일 수는 없다고 봅니다. 구조조정은 어쩌면 지금 한국 대학 실정에서 볼 때 필요한 것은 아닌지요.

"구조조정이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지난번에 창원대와 경상대가 대학통합추진을 위한 양해각서를 교환했습니다. 대학 대 대학, 과 대 과의 통합은 가능합니다. 그러나 교육대학과 사범대학을 통합하는 것은 두 대학이 갖고 있는 교육의 특성을 무시한 겁니다."

▲ 김승찬 투쟁국장(실과교육과 3).
- 잘 다가오지 않는데 왜 통폐합이 돼서는 안 되는지를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죠.

"첫번째는 교육의 문제를 경제논리로만 봐서 예산절감을 위해 구조조정을 하자는 쪽으로 가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지금의 체계가 예산적으로 봤을 때 다소 비효율적인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과 한나라당이 밝힌 게 뭡니까. 교육에 대한 투자를 늘리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산투자를 줄이기 위해 대학을 구조 조정한다는 것은 말도 안됩니다. 양질의 교사를 배출하겠다고 하면서 투자를 줄이겠다는 게 맞지 않습니다. 제주대 교대랑 통합하면 지금의 교육대학은 과 수준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초등교육은 제주대, 그것도 사범대의 예산을 끌어다 써야 합니다. 제대로 된 투자가 이뤄질 수가 없습니다"

"노량진 입시학원에서 교사를 배출하는 게 지금 중등교육의 실정"

- 학생들은 교육의 질이 떨어진다고 합니다만  솔직히 말하면 교육여건은 지금 제주교대보다 제주대가 좋은 게 아닌가요. 좋은 여건에서 수업을 받는다면 교육의 질이 높아질 수 있다고 봅니다.

"외형으로 보이는 시설이나 캠퍼스만을 봐서는 안됩니다. 내용이 중요합니다. 제주교대는 초등교육에 투신하려는, 교사가 되겠다는 학생들만 입학하는 '목적형' 대학입니다. 반면 제주대 사범대는 교육과정을 가르치기는 하지만 '반드시' 교원이 목적이 아닌 '개방형' 대학입니다. 누구나 교직과목만 이수하고 임용고사에 합격하면 교사가 될 수 있습니다. 중등교육의 질이 떨어지는 게 바로 이 개방형 교육때문입니다. 그런데 통폐합되면 초등도 경쟁이라는 미명하에 개방형이 되고, 자연히 교육의 질이 떨어지게 됩니다. 지금 중등교사는 대학에서 배출되는 게 아니라 노량진 입시학원에서 만들어진다고 하지 않습니까"

- 외부에서는 교대생과 사대생들간에 졸업 후 취업을 겨냥한 밥그릇 싸움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습니다.

"정부는 입장에서는 통폐합시키려는 이유가 현재 중등교원은 남아 돌고 초등교원은 부족해서 중등교원을 초등학교로 보내려는 뜻도 있습니다. 이른바 '교원수급의 탄력성'을 기하겠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초등은 4년 내내 전문적인 교육을 쌓아왔습니다. 그런데 그런 교육을 받지 않은 중등교원에게 몇 과목만 이수해서 초등교육을 책임지게 한다면 그게 제대로 된 교육일 수 있습니까. 이것은 밥그릇 싸움과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교육의 질을 저하시키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또 초등교원이 부족하다는 것도 사실과 다릅니다."

"초등교육 질저하 방지대책과 요원 중장기 수급대책을 먼저 제시해야"

- 통폐합문제는 오래 전부터 있어온 이야기지만 많은 도민들이 잘 모르고 있습니다.

"도민들도 이같은 사실을 알고 있다면 반대할 것입니다. 제주교대는 지금까지 제주초등교육의 산실을 담당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게 지금 '경쟁'이라는 미명하에 무너지려 하고 있습니다. 제주교대는 또 지금까지 제주출신 고등학생 중 우수한 학생들이 육지부로 유출되는 것을 방지하는데도 나름대로 공헌해 왔고 또 앞으로도 공헌해 나갈 것입니다. 도민 여러분들의 아들과 딸의 문제이자, 제주초등교육의 문제입니다. 다음 주부터는 거리에서 대도민 홍보전을 할 것입니다. 거리행진도 하고 서명도 벌이면서 우리들의 주장을 충분히 알려 나갈 것입니다."

▲ 김기범 집행위원장(사회과교육과 3).
- 대안은 없습니까. 반대 일변도가 아닌지 생각도 됩니다.

"반대만을 하는 게 아닙니다. 일방적인 것은 교육인적자원부입니다. 대안은 우리가 세우는 게 아니라 정부가 세워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정부가 교육의 경쟁력강화를 위해 구조조정과 통폐합을 한다면 그에 앞서 교육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먼저 제시해야 합니다. '이렇게 이렇게 해서 교육의 질을 높이겠다'는 계획을 내 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교원수급문제를 임기응변식으로 해결하지 말고 보다 중장기적으로 풀  수 있는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우리를 설득해야지 아무런 계획도 없이 무조건 통폐합을 하겠다는 것은 교육문제를 경제논리로 풀어가겠다는 의지로 밖에 해석될 수 없습니다."

"교수님들 미안하다고 하면서도 행동은 보여주지 않아 답답.."

- 이야기를 잠시 돌려보죠. 통폐합 문제가 상당히 심각한데 교수들은 지금 총장선거 때문에 두 파로 나뉘어 갈등만 계속 보이고 있습니다. 학생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교수님들에게 총장선거와 관련한 공개토론회를 갖자고 요구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선관위와 개혁교수협의회 쪽으로 나뉘어 학생들에게 자신들에게 유리한 일방적인 정보만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어느 쪽이 옳고 그른지를 가늠하기가 힘들어 공개토론회를 요청하는 것입니다. 어느 한쪽 편을 들자는 게 아니라 숨겨진 진실을 알고 싶다는 게 학생 대부분의 뜻이기도 합니다. 학생들 입장에서 양측의 교수님들을 대화의 자리로 이끌어 내고 타협안을 찾을 수 있도록 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 교수들이 통폐합 문제에 앞장서야 하는 데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이편 저편을 떠나 대화와 타협만을 바랄 수 밖에 없는 입장입니다. 모든 교수님들과 함께 가고 싶습니다. 지금 제주교대가 처한 가장 큰 문제는 누가 총장이 되느냐가 아니라 교·사대 통폐합 문제입니다. 교수님들은 저희에게는 미안하다고 말씀은 하시는데 행동은 보여주지 않습니다. 정말 답답합니다"

이날 '제주의 소리'  인터뷰에 응해 준 대학생들은 이야기가 끝날 무렵 도민들에게 한 마디 부탁을 하겠다고 했다.

"제주교대는 지금 내우외환을 겪고 있습니다. 하지만 비온 뒤 땅이 굳어지듯이 제주교대는 앞으로 더욱 정당하고 지역사회와 제주초등교육에 이바지하는 대학이 될 것입니다. 힘을 주십시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