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최재천 선생의 을 읽고

 필자에게도 미치도록 좋아하는 두 스타가 있다. 그렇다고 그 두 분이 인기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는 아니다. 대학생 시절 밤을 새면서도 피곤함이나 지루함을 못 느끼며 읽어 내려갔던 <전환시대의 논리>나 <우상과 이성> 혹은 <분단을 넘어서>의 저자이신 리영희 선생이 그 중 한 분이고, 다른 한 분은  최재천 선생이다. 두 분은 공식 직함은 모두 '교수님'이신 점과, 빼어난 글솜씨를 통해 부단히 세상과 소통하시려 노력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열대 환경에 대한 애정


▲ 책의 표지
이 책에 들어 있는 내용들은 저자 최재천 선생이 코스타리카와 파나마의 열대우림 속에서 동물행동학을 연구하며 겪었던 동물들의 생활상을 소재로 하고 있다. 그렇다고 글의 소재가 동물들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동물들의 행동을 통해 인간의 행동을 투영해 보면서,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사회질서나 행동을 동물행동학적으로 분석하기도 하고, 사람과 동물과의 공통점과 차이점 등을 설명해주기도 한다.


열대지방에서 동물행동학을 연구한다는 게 위험이 도사리는 일일 텐데도 저자는 이 모든 과정을 즐겁게 받아들인다. 저자의 밀림과 자연에 대한 사랑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있다.


"나는 사실 안경을 끼기 시작한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비 맞는 걸 끔찍하게 싫어했다. 빗방울이 안경 렌즈에 튀어 세상을 가리는 것이 너무나 싫었기 때문이다. … 하지만 정글 속에서는 달랐다. 안경 렌즈 위로 빗물이 줄줄 흐르고 바지뿐 아니라 온몸이 속까지 완전히 젖은 채 온갖 덩굴에 다리가 걸려 진흙탕에 나뒹굴어도 마냥 좋았다. 정글 속에서, 그러니까 자연 속에서는 내 몸만 자유로워지는 게 아니라 정신까지도 족쇄를 풀고 자유로워지는 것 같았다."


등골이 오싹할 만큼 위험했던 상황이 있었음을 알려주는 대목도 있다.


"부시매스터(bushmaster)! 몸길이가 무려 3미터에 이르는, 전 세계의 살모사 중 가장 무시무시한 뱀이다.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에게 부시매스터는 공포 그 자체다.


… 그(동료 해리)가 나뭇가지 하나 집어 그 뱀의 코끝을 건드릴 만큼 가까이 집어주기까지 내 눈엔 그 뱀이 전혀 상을 맺지 않았다. 갈색 바탕에 검은 줄무늬가 얼기설기 나 있는 부시매스터는 내가 않아 있던 곳에서 1미터도 채 안 되는 곳에 똬리를 틀고 아무것도 모른 채 슬금슬금 다가오는 한 어리석은 포유동물(저자)을 측은하게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무시무시한 뱀조차도 저자는 전혀 징그러움을 느껴보지 못했다고 한다. 그저 그의 신조대로 '생명 있는 모든 것이 아름답다'고 할 뿐이다.


경쟁과 스포츠


 승자독식의 경쟁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한국인들에게 자연이 들려주는 교훈을 대신 전해주는 대목도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우리들 중에는 박쥐처럼 사는 이들도 있고 나무늘보처럼 사는 이들도 있다는 점이다. 많이 자주 먹고 빠른 속도로 소화시켜 배설해버리는 (박쥐같은)동물이 있는가 하면 적게 먹고 천천히 조금만 움직이며 사는 (나무늘부같은)동물들도 있다. 그런데 아무리 보아도 요즘 우리(한국인)들은 영락없는 박쥐들이다. 남의 피를 한 이틀만 빨지 못해도 헐떡헐떡 숨을 몰아쉬는 그런 야비하고 한심한 흡혈박쥐들이다.


… 나는 얼마 전부터 행복한 이등국가가 되자는 제안을 해왔다. 초강대국이 아니라 삶의 질이 높은 행복한 이등국가가 말이다. 우리는 너무 자주 어쭙잖게 '세계 최초' '세계 제일'을 부르짖는다. 정말 세계 제일은 말을 아끼고 가만히 있는데, 왠지 못 가진 자의 처절한 떠벌림같이 들려 못내 서글프다."


동물세계에도 사람들이 운동경기를 즐기는 것처럼 스포츠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찰스다윈의 성선택론(sexual selection)에 따르면 번식에 관한 한 투자를 훨씬 더 많이 하는 암컷에게 선택권이 있고 수컷들은 암컷들에게 선택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고 한다.


스포츠가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모르지만 수컷들 간의 힘겨루기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남자 월드컵 대표선수들에게 죽자살자 달려드는 극렬 여성 팬들은 많아도 여자 축구대표팀이 국제 경기에서 이룬 쾌거에 열광하는 남성 팬들은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도 스포츠가 수컷들의 본능에서 유래되었다는 주장에 설득력을 더해준다는 것이다.


불량정치인은 '철새'가 아니라 '진드기'


당적 바꾸기를 밥 먹듯 하는 '불량 정치인'들을 향해서는 '철새'라고 부르는 것에 못마땅하게 여겨 '진드기'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살기 위해 목숨을 걸고 해마다 긴 여정에 올라야 하는 철새들과 멀쩡히 잘 살면서 더 큰 이익을 위해 그저 길만 건너 다른 당으로 옮겨가는 정치인들을 같은 수준으로 비교하는 것은 한마디로 동물들의 신성한 삶에 대한 모독이라는 것이다.


저자가 불량 정치인들에 비유하는 진드기는 '이동성 진드기'를 말한다. 이동성 진드기는 평소에는 편안한 곳에 눌러 살다가 이동이 필요하면 새나 곤충의 몸에 붙어서 편안하게 이동하는 동물이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것은 스스로 큰 동물의 몸에 올라타지 못하는 작은 진드기는 자기보다 몸이 좀 더 큰 진드기의 등에 업혀 큰 동물의 몸에 오른다고 한다. 불량 정치인들을 진드기에 비유하는 저자의 재치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과학의 문학화


끝부분에서는 과학자로써 글쓰기의 중요성과 글쓰기에 대한 자신의 희망을 내비치고 있다.

내가 최재천 선생에 대해 처음 들었던 것은 그가 생물학자의 입장에서 미토콘드리아의 '원시공생설'을 기반으로 법원에 호주제 폐지 의견서를 제출한 때부터다. 이후 그에 대해 조금씩 알아갈수록 점점 더 그에게 경도되어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학문에 대한 열정이 남다르고, 문화 예술 등에도 조예가 깊은데다 그의 글 솜씨가 독자들을 사로잡아 과학에 관심이 없는 사람일 지라도 과학에 빠져들게 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최재천 선생은 그가 평소에 주장하는 '과학의 대중화'가 아닌 '대중의 과학화'를 위해 봉사할 수 있도록 능력을 타고 났는지도 모른다. 그의 노력과 재능이 전 국민에 과학에 관심을 갖게 하고 주먹구구가 만연하는 사회가 합리적으로 변화할 수 있게 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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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 실렸던 기사입니다.  도내 어느 여성 단체에서 최재천 선생의 강연을 계획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기사를 올립니다. 많은 분들이 참석해서 보람된 행사로 기억하게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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