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심은 사람'의 작가, 장 지오노


# 나무를 심은 사람
   
 
 

 엘제아르 부피에라는 한 노인의 평생에 걸친 숲가꾸기를 그린 작품 '나무를 심은 사람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은 1953년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처음 발표되었고, 프레데릭 백에 의해 애니메이션으로 각색된 후 1988년 아카데미상을 수상하여 유명해졌다.

  이 작품의 원작자가 바로 프랑스의 작가 장 지오노(Jean Giono, 1895~1970)다. '나무를 심은 사람'은 장 지오노의 전체 작품세계 중에서 그다지 크게 다루어 지는 것은 아니지만, 위 작품을 통해 우리는 그가 '생태주의자'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위 작품 이외도 그가 처음 세상에 발표한 '목신'(PAN) 삼부작, 즉 언덕(Colline, 1929년 작), 보뮌느의 사나이(Un de baumugnes, 1929년 작), 그리고 소생(Regain,1930년 작)을 살펴보면 특히 그러하다. 한편 이러한 생태주의적이라 평가할 수 있는 작품이외에도 그는 더욱이 반인류적인 전쟁을 거부한 '반전평화주의자'였고, 또한 그것을 실천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였다.

 Je n'ai pas honte, mais A bien considerer ce que je faisais, c'etait une l'achete. J'avais l'air d'accepter. Je n'avais pas le courage de dire : < Je na par pas a l'attaque. > Je n'ai pas eu le courage de deserter. Je n'ai qu'un seule excuse : c'est que j'etais jeune. Je ne suis pas l'ache.    
   나 는 부끄럽지는 않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가 한 짓은 비겁한 행동이었다. 나는 동의하는 것 처럼 보였다. "공격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 할 용기도, 탈영할 용기도 없었다. 단 한가지 변명을 하자면, 그것은 내가 어렸다는 것이다. 겁쟁이는 아니었다.



# 전쟁과 장 지오노
▲ 군복을 입은 장 지오노

 지오노가 스무살이었을 때, 그는 1차 세계대전에 징집되어, 4년이 넘는 군복무를 통해 무수히 많은 죽음을 목격하였다. 지리한 공방전이었던 1차 대전에서 그는 베르덩-보, 르 쉬멩 데 담, 피농 습격, 르 케멜 등의 전투에 참가했다. 그러한 싸움으로 인해 170여명의 중대원 중 자신을 포함해 단 3명만이 살아남았던 것이다. 이러한 전쟁의 참혹함은 그를 평화주의자로 만들었다.
 
  1차 대전이 시작된 지 20년 후, 그는 다시 전쟁이 벌이질 것임을 느낀다. 그래서 그는 전쟁에 반대하는 한 편의 평화에세이를 발표한다. 1934년 11월, 문학잡지 '유럽' 특별호에 실린 '나는 잊지 못 한다(Je ne peux pas oublier)'에서 지오노는 전쟁의 참전을 통해 그 참상을 온 몸으로 겪었지만, 탈영할 용기가 없었다고 고백하며 반성한다. 그래서 전쟁이 끝나자마자 반전평화주의를 주장하고, 그러한 행동을 실천해 나간다. 끝내는 전쟁의 원인을 권력과 자본주의에 있다고 보고, 전쟁의 제거를 위해 그것에 저항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나는 잊지 못한다'
▲ '나는 잊지 못 한다'를 엮은 '복종의 거부'(Refus d'obeissance)

 Vous etes morts, qu'on vous a tues au grand moment ou vous cherchiez votre bonheur, et qu'on vous a tues pour rien, qu'on vous a engages par force et par mensonge dans des actions ou votre interet n'etait pas.
 자네들이 행복을 찾는 중요한 순간에 그들이 자네를 죽였고, 자네가 그렇게 죽어간 것을 잊을 수가 없어. 그들이 자네들을 아무런 이유도 없이 죽인 것도 잊지 않을 거야. 그들은 자네들을 힘과 거짓으로, 자네들이 흥미를 느끼지 않는 행위 속으로 밀어넣었지.


 La guerre est le cœur de l'etat capitaliste. La guerre irrigue de sang frais toutes les industries de l'Etat capitaliste. La guerre fait monter aux joues de l'Etat capitaliste les belles couleurs et le duvet de peche.
 전쟁은 자본주의 국가의 심장이다. 전쟁은 자본주의 국가의 모든 산업에 신선한 피를 공급한다. 전쟁은 자본주의 국가의 뺨을 아름다운 색으로 물들이고, 솜털이 돋아나도록 한다. 


Ce qui me degoute dans la guerre, c'est son imbecillite.
 전쟁에 대해 내가 역겨운 것은 바로 전쟁의 어리석음이다.

 Inutile pour tous ceux qui sont sous la meule, pour la farine humaine. Utile pour qui alors?
 절구통 안의 밀가루처럼 뒤섞인 인간들, 그들 모두에게 전쟁은 무용하다. 그러면 전쟁은 누구에게 유용한 것인가?

 Mon sacrifice ne sert a rien qu'a faire vivre l'Etat capitaliste. Cet Etat capitaliste m'erite-t-il mon sacrifice?
  나의 희생은 자본주의 ‘국가’의 생존을 부추기고 있을 따름이다. 이 자본주의 국가에게 내 희생을 바칠 가치가 있는가?



# 지오노의 평화주의 사상과 실천
▲ 1차대전을 형상화한 포스터. "14년 부터 18년까지의 지옥." 그 밑에 쓰여진 문장은 "나는 전쟁을 잊지 못한다"이다.

   필자는 그의 글을 반성, 기억, 저항의  틀로 분석하였다. 참전의 반성은 곧, 전쟁의 참혹성과 그렇게 죽어간 동료들, 그들을 죽음으로 내몬 자들, 그리고 그로부터 현재의 시간까지를 기억하는 것으로 시작되며, 그 투쟁은 권력(자)과 자본주의(국가)에 대한 저항으로 이어진다.
  산업기계문명이 일으키는 전쟁에 반대하고 그 원인이 되는 자본주의(국가)를 비판한다. 그리고 대지로의 회귀를 통한 인간의 본래적 행복추구를 그의 평화주의라고 요약할 수 있다.

 지오노는 자신의 평화주의 사상을 글과 행동으로 실천했다. 평화를 나누는 '꽁따두르(Contadour)' 모임을 구성해 활동하였으며, 2차 대전이 발발해서는 참전을 거부해 2차례나 투옥되었다.

 이미 70여년 전에 전쟁을 겪은 한 작가의 삶과 사상을 통해 우리는 전쟁과 폭력에 대한 평화주의자의 명확한 입장과 실천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전쟁과 폭력에 대한 일체의 거부이고, 단호한 반대이며, 평화에 대한 투철한 의지다.

  
Nous savons donc maintenant tres nettement de quoi il s'agit. L'Etat capitaliste a besoin de la guerre. C'est un de ses outils. On ne peut tuer la guerre sans tuer l'Etat capitaliste."
 우리는 이제 매우 명확하게 자본주의 국가가 무엇과 관계있는지를 안다. 자본주의 국가는 전쟁을 필요로 한다. 그것은 자본주의 국가의 도구 중 하나이다. 우리는 자본주의 국가를 전복시키지 않고서는 전쟁을 막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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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섬과 평화주의, 그리고 전쟁기지
 '세계 평화의 섬' 제주도민들이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을 통해 배우는 것은 자연환경의 소중함이며, '나는 잊지 못한다'를 통해 깨닫는 것은 비폭력 평화주의이다. 전쟁을 수행하는 군사기지가 제주도에 들어오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을 때, 나는 장 지오노를 떠올려 본다. 그를 전선으로 끌고 간 자들, 그의 동료들뿐만 아니라 전선 너머의 친구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장본인들은 아직도 살아서 다시금 나와 내 친구들을 전쟁으로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4.3 이라는 한국 현대사의 어두운 면을 갖고 있는 제주도에서 그러한 것을 기억하고 반성해야 하며, 다시 반복됨에 저항해야 하는 것은 '평화의 섬' 주민들의 의무이며 권리이다.

('나는 잊지 못 한다'는 [녹색평론] 통권 81호(2005년 3-4월호)에 우리말로 옮겨져 게재됐다.)

<이 글은 11월 17일자 한라일보 'NGO 칼럼'에 실린 글을 수정.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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