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수의 좌충우돌 디카사진 찍기(6)

들꽃을 나의 사진 주제로 삼고는 정말 잘했다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릅니다.들꽃을 찍으면서 풍경사진도 찍고, 주제가 될 것 같은 사물들도 담는데 그때마다 감사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 첫 번째 이유는 들꽃, 풍경, 사물 등은 '초상권'이 없다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바람이 흔들어 놓는 경우가 아니면 자연 그대로의 모습 그대로 포즈를 취해 준다는 점이죠.

1. 오랜 기다림 끝에 찍은 사진이 좋은 사진일 확률이 높다

 
▲ 실잠자리와 개망초-아침 일찍 나가면 곤충들의 움직임이 빠르지 않아 쉽게 그들과 어우러진 들꽃을 찍을 수 있다. 그것도 기다림의 일종이다. 밤새 기다린 끝에 해가 뜨기 전 들판을 향하는 것, 오랜 기다림의 시간이다.
ⓒ 김민수
 
들꽃을 담을 때 손님(나비나 벌)이 곁들어지면 분위기가 살아납니다. 그러나 곤충들은 자그마한 소리에도 날아가 버리니 먼저 자리 잡고 앉아서 기다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순간포착을 하기 위해서는 오랜 기다림이 필요하지요. 일출이나 일몰사진, 조류사진 같은 것들은 그야말로 시간과의 싸움입니다. 아주 오랜 기다림 끝에 한 컷을 얻는 것이죠.

들꽃을 담다보니 풀섶에 곤충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곤충들의 세계도 재미있을 것 같아서 며칠 정도는 곤충만 찍으러 다녔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얼마나 풀섶을 재게 다니는지 여름날 반바지를 입고 들꽃을 찍으러 나갔다가 종아리가 성한 곳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망원렌즈 같은 것들이 있었으면 이야기는 달라졌을지도 모르겠지만 가지고 있는 렌즈를 이용해서 담으려니 쉽지 않았습니다. 그때, 아내는 꽃에서 곤충으로 관심영역을 넓혀가지 않을까 걱정을 했지만 나의 대답은 "걱정마세요"였습니다.

열세 번째 계명, 순간포착도 오랜 기다림 끝에 만나는 것이다. 오랜 기다림 끝에 담은 사진이 작품성도 높고, 기억에 오래 남는다.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인내가 필요하다.

2. 곤충도 어렵지만 사람은 더 어렵다

 
▲ 제주도에서 만났던 사람들, 대부분 몰래카메라에 해당되는 사진들이다.
ⓒ 김민수
 
소개된 인물사진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그들을 정면에서 담지 못하고 뒷모습이나 옆모습을 주로 담았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의 첫 번째는 초상권의 문제 때문이었고, 두 번째는 인물사진을 찍는 분들에게 누가 될 것 같아서였고, 세 번째 이유는 사진을 찍는다는 것을 아는 순간부터 자연스러운 모습에서 멀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망원렌즈가 있었다면 이런 작업이 좀 더 수월했을지는 모르겠지만 인물사진은 작가와 대상의 소통없이는 가슴을 울릴 수 있는 사진이 나올 수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인물사진을 찍는 분들을 사진의 대가라 생각하고, 저에게 있어서는 찍고 싶지만 너무 어려운 사진이 인물사진입니다. 제가 존경하는 사진작가 중에 최민식 선생이 계십니다. 그 분의 사진은 인물사진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분의 사진 한 장 한 장에는 그 당시 삶의 애환이 다 들어있어서 자꾸만 눈길이 갑니다.

 
▲ 할어버지는 늘 허허롭게 웃으셨다. 그러나 늘 그 분을 만나면 그 안에 한을 가득안고 살아가시는 듯 하여 마음이 아팠다. 어느 날 노인분들과 함께 한 곳에서도 그는 홀로 앉아 그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 김민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물사진을 찍으려고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인물사진은 참으로 많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물론 인물사진도 주제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지금은 서울에서 생활하는 관계로 계획에 차질이 생겼지만 제주도에 있을 때 한 가지 꿈이 있었습니다. 아직도 그냥 꿈으로만 남아있는데 제주해녀들의 사계(四季)를 담는 것이었습니다.

인물사진의 분야도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서울에서 제가 찍고 싶은 인물사진은 소외된 사람들, 그 중에서도 노숙자나 달동네에 사시는 분들의 사진 혹은 달동네의 골목길 사진입니다. 아직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습니다만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무조건 찍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주제를 찾아서 찍으면 사진의 깊이가 깊어질 수 있을 뿐 아니라 그들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열네 번째 계명, 피사체를 담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마라. 그들과 소통하고 그들을 이해할 수 있을 때, 더 나아가 그들과 하나가 될 때 감동적인 사진이 나올 수 있다.

3. 사진을 들여다보면 역사가 들어있다.

 
▲ 2006년 서울 송파구 거여동 재개발지구-앞으로는 보디 못할지도 모를 블럭, 쇠창살...맨 뒤의 방향지시판이나 에어컨은 이 골목길이 과거가 아닌 현재의 골목길임을 알려준다.
ⓒ 김민수
 

간혹 사진첩에서 어린 시절 찍었던 사진을 볼 때가 있습니다. 맨 처음에는 그냥 지나쳤는데 어릴 적 내 모습뿐 아니라 사진 뒤로 남아있는 고향의 풍경이라든지, 어릴 적 살던 집이라든지, 옷가지 등등을 보면서 '아, 그 때는 이랬었구나!'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좋은 사진은 아니지만 위의 사진은 어느 골목길을 찍은 사진입니다. 사진에서 원처리한 부분을 보시면 거기에는 많은 정보가 들어있습니다. 2006년 서울의 어느 골목길의 풍경 속에서 읽을 수 있는 수많은 정보들, 그것이 하나의 역사자료가 되는 것이지요.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 삶의 현장을 생생하게 담아내는 이들을 보면 부럽기만 합니다. 잠시 멈춰진 순간이 말하는 수많은 메시지, 그것을 아무나 담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초절정고수들이 담을 수 있는 내용일 것입니다. 들꽃을 찍으면서도 그랬지만 결국 사진은 발로 찍는 것이라는 것도 알았다. 발이란, 단순히 걸어 다녀서 발이 아니라 발로 찍는 사진이라는 것은 그의 삶으로 찍은 사진일 것입니다. 발로 쓰는 시, 발로 찍는 사진은 같은 맥락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열다섯 번째 계명, 사진은 발로 찍는 것이다. 사진에 삶이 들어있지 않으면 공허한 사진이 될 수밖에 없다.

저의 주제는 아직은 들꽃입니다. 그 주제들을 하나 둘 넓혀가고 싶은 욕심이 있지만 그 넘어야할 단계들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선뜻 다가가지 못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진으로 업을 삼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사진의 세계에 깊게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기도 하고, 특정 사진을 찍기 위해 최소한 렌즈를 새로 마련해야 할 경우에는 많이 망설여집니다.

'좌충우돌 디카사진찍기'를 연재하면서 장롱에 모셔둔 400만화소 똑딱이 디카를 호주머니에 넣고 출근했습니다. 역시, 작은 카메라의 장점이 상당히 많았는데 문제는 손에 DSLR카메라가 익숙해져서 제대로 된 사진을 찍지를 못했습니다. 연장이 손에 맞으려면 자주 만져야 합니다. 손에 맞던 연장도 오랫동안 소원하며 어색해지는 것입니다.

 
다음 이야기는 "들꽃들을 카메라에 담다 생긴 일"이라는 제목으로 꽃을 담는 과정에서 겪었던 이야기를 소개됩니다.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에도 실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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