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주의 좌충우돌 디카사진 찍기(7)

들꽃을 만나면서 생긴 일들을 열거하자면 한도 끝도 없을 것 같습니다. 들꽃은 나를 변화시켰고, 들꽃을 알기 전의 내 모습과는 전혀 다른 나를 만들어 놓았지요.

1. 들꽃들의 삶을 보면서 나를 보다

 
▲ 양지꽃, 내가 잊고 있던 사이에도 늘 그 곳에서 피고지고 있었던 고마운 꽃이다.
ⓒ 김민수
 
양지꽃, 어린 시절 흔히 만나던 꽃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불혹의 나이에 다시 만난 양지꽃을 보면서 어린 시절 이후 그를 잊고 살았던 시간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10대 초반까지 양지꽃이 눈에 들어왔었다고 하더라도 20년 이상을 잊고 살았던 것이죠. 그 꽃이 피어 있는 것이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여기며 그렇게 긴 세월을 살아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보아주는 이 하나 없어도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어김없이 따스한 양지에서 피고지고를 반복했던 것입니다.

그때의 느낌, 무엇을 하느라 내 삶 가까이에서 늘 동행하는 이들을 보지 못하고 살았던 것일까, 과연 그렇게 빠른 걸음으로 살아온 삶이 정말로 행복했던 것일까 등등 많은 생각을 하면서 등골이 오싹해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잔설을 녹이면서 피어나는 꽃들, 바위에 피어 있는 꽃들, 바닷가 모래에서 피어나는 꽃들, 겨울에 피어나는 꽃들, 뽑히고 또 뽑아도 여전히 피어나는 잡초들과 그들의 생활사를 보면서 그들의 삶이 사람의 삶과 다르지 않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면 그들의 삶보다 더 치열하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생각하면서 그동안 작은 일에도 상처받고, 조금만 힘들어도 포기하려고 했던 삶의 방식들에 대한 반성과 다짐들을 하며 내게 주어진 일들에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가야지 다짐하고 또 다짐했습니다.

2. 느릿느릿 삶을 배우다

 
▲ 달팽이, 느릿느릿의 삶을 가르쳐 주었다. 그들의 삶은 결코 느리지 않았다. 그들만의 걸음걸이로 걸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 김민수
 
들꽃을 담으려면 천천히 걸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담으려면 몸을 낮춰야했지요. 어느 날 텃밭에서 달팽이를 만났습니다. 애써 가꾼 채소를 양식으로 삼는 달팽이, 그런데 그가 예뻐 보였습니다. 들꽃을 만나면서 천천히, 느릿느릿에 대한 생각들을 많이 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느릿느릿 살았는데 오히려 목적지에는 더 빨리 도달한 나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느린 것이 결코 느린 것이 아니구나, 빨리빨리 살아간다고 했는데 너무 먼 길을 숨가쁘게 달려오기만 했구나 하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들꽃이야기를 하나둘 연재하면서 출판사로부터 출판제의가 들어왔습니다. 그와 관련하여 다섯 권의 책을 출판하게 되었습니다. 제주의 들판을 천천히 걸어다니다보니 내 삶의 꿈은 빠르게 살 때보다 훨씬 빨리 이뤄진 것입니다. 느릿느릿 걷다보니 지름길이 보인 것입니다.

들꽃들을 만나면서 내 삶의 화두를 얻었습니다. 그것은 "작은 것, 느린 것, 낮은 것, 못 생긴 것, 단순한 것"입니다.

슈마허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 달팽이의 "느릿느릿 삶", "세상 가장 낮은" 바다의 삶, 절대로 못 생긴 법이 없는 호박꽃, 훌훌 털고가야 휘적휘적 걸어갈 수 있는 삶의 여정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비울 때 비로소 채워지는 삶의 비결에 대해서도 많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3. 난데없는 사진전을 열다

 
▲ 두번째 개인전 준비 포스터-제목과는 달리 "종달리가수왕뽑기"가 진행되면서 "독거노인들의 밥상차려드리기"로 변경해서 전시회와 행사를 진행했다. 제주에서의 마지막 전시회였다
ⓒ 김민수
 
2004년도 겨울, 제가 목회를 하고 있던 종달교회에서는 해마다 문화행사를 열었는데 마을에 심장병 어린이들이 두 명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을 돕기 위한 행사로 계획을 했습니다. 수익을 위한 사업을 고민하던 중에 출판된 책판매와 책에 실린 사진들을 전시해서 판매하기로 했습니다.

문화행사의 제목은 "End&Start 2004展"이었는데 이 행사가 알려지면서 각지에서 많은 분들이 성원을 해주셔서 생각했던 것 이상의 성금을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에는 '내게로 다가온 꽃들' 연재기사로 모인 원고비로 심장병으로 고생하고 있는 학생을 위해 사용하기도 했었습니다.

그것이 첫 번째 사진전이었는데 그 이후 여미지식물원, 북제주군청 등에서 초청사진전을 열기도 했습니다. 그 이후에도 개인전과 몇몇 전시회에 참여를 하고 사진전에서 입선도 하면서 독학을 통해 익힌 사진들이지만 조금씩 빛을 보았고 지금도 여전히 사진은 제 생활의 일부입니다.

물론, 생활의 전부로 삼아야 제대로 된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것입니다만 아직도 아마추어리즘을 지켜가려고 하고, 내 안에 있는 사진의 열정이나 끼가 이 정도까지가 아닌가 자조하고 있습니다.

지난 2월 초에 서울로 올라온 이후로는 제대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기회가 없었고, 느릿느릿하던 시골의 삶과는 달리 빨리빨리 살아도 여전히 일더미 속에 파묻혀 살아왔습니다. 그 이후로는 그야말로 가뭄에 콩나듯 어쩌다 만족할만한 사진이 나왔습니다.

4. 들꽃에 미친 사람들을 만나다

 
▲ 지난 봄 화야산에서 꿩의바람꽃을 찍다 몰카에 찍히다.
ⓒ 한송
 
들꽃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을 때 알고 있는 우리 들판에 피어나는 꽃이름이 10가지를 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꽃 관련 기사만 300여건을 썻고, 한 종류의 꽃만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가며 연재한 것이 170건이 넘으니 꽃박사가 된 셈이지요. 들꽃과 관련된 식물도감을 구입해서 하나하나 익혀가면서 들꽃에 관심이 있는 이들을 하나 둘 알게 되었습니다.

제주에서는 주로 홀로 다녔기 때문에 들꽃마니아들이 많다는 것을 알았지만 실감이 나질 않았는데 서울에서는 가는 곳마다 꽃에 미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의 들꽃예찬론을 듣다보면 들꽃을 바라보는 시선도 참 다양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개중에는 카메라를 자랑하기 위해서 혈안인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가장 비싼 카메라와 렌즈로 무장을 하고 속된 말로 폼잡는 사람들이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암암리에 카메라 자랑을 하는 사람들치고 좋은 작품을 내는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 정도의 카메라를 가지고 겨우 그 정도밖에 못 찍냐는 생각에 씁쓸하기도 했습니다.

열여섯번째 계명, 카메라를 자랑하지 마라. 동시에 자기의 카메라를 부끄러워하지도 말라. 카메라가 문제가 아니라 어떤 자세로 사물을 담으려는지가 더 소중하다.

들꽃에 미친 사람들을 만나면서 참 행복했습니다. 꽃을 좋아하는 사람치고 나쁜 사람이 없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었습니다. 꽃을 닮아가는 사람들, 자연을 닮아가는 사람들, 꽃 한송이에 감사하고 또 감사하며 내년에도 그 자리에 또다시 피어나기를 기도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참으로 건강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욕심을 부리는 사람도 있었지요. 모델이 되어준 희귀한 꽃을 전부 밟아버린(다른 사람들이 찍을까봐) 흔적을 보면 속이 상하기도 했습니다. 혹시 이번 연재를 보고 주제를 들꽃으로 정하신 분들이 있으시다면 모두의 들꽃이라는 점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는 꽃을 찍기 위해 땅에 엎드려 그들과 눈높이를 맞추지요.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사람들에 대해서도 나는 그렇게 하는가 생각해 보았어요. 꽃처럼 작은 사람들을 그렇게 소중하게 대하는지 생각해 보았지요."

들꽃에 빠져 사는 어느 대기업의 최고경영자(CEO)의 이야기입니다. 노래방의 출현이 온 국민을 가수로 만들었듯이 디지털카메라의 출현은 온 국민을 사진사로 만드는 것 같습니다.

핸드폰이나 토이카메라 같은 것을 통해서도 재미있는 작품들이 많이 나오는 것을 보면 사진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기쁩니다. 전문가들만의 전유물이 아닌 모두의 것이니 참 기쁩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디지털카메라를 예찬합니다.

 
다음에는 이번 연재의 마지막 기사로 "디카사진, 나는 이렇게 활용한다"를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에도 실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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