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인물을 화폐에 시민연대' 김경애 교수의 각별한 '만덕 사랑'

"김만덕이 도대체 누구야?" "왜 그렇게 '목숨'을 거는데?"

여성인물을 새 화폐에 넣기 위해 발벗고 나선 김경애 동덕여대 교수(55·여성학과)가 요즘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김 교수는 다름아닌 '여성인물을 화폐에! 시민연대'(시민연대) 회장.

서울 사람들로선 당연한 질문이다. 아사직전의 제주백성을 1000명도 넘게 구한 제주 의녀(義女)로 조선 당대엔 이름을 날렸지만 후대 사람들은 야속하게도 그를 철저히(?) 외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만큼 김만덕은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제주와는 인연이 없는데도, 김교수의 '만덕 사랑'은 유별났다. 언론에 칼럼을 쓸 때나 기고를 할 때도 김만덕은 빠지지 않았고, 여성 모임을 찾아다니며 선전도 했다. 모의 화폐를 만들어 돌리기도 했다. 김만덕을 알리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마다하지 않았다.

오죽 극성을 부렸으면 주위에서 그랬을까. "김만덕이 누구야?"라는 말은 여기서 비롯됐다.

칼럼에도 모의화폐에도 "김만덕" 극성…"하다보니까 그렇게 됐다"

김 교수는 얼마없어 모 일간지가 자신을 인터뷰한 내용이 대문짝만 하게 나올 거라며 뛸 듯이 기뻐했다. 인터뷰에서 김만덕을 새 화폐 모델로 강력 추천했다는 것이다.

이쯤되면 김 교수는 처음부터 김만덕을 화폐 모델로 '찍었을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김 교수는 "하다보니까 그렇게 됐다"고 웃어넘겼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김만덕에 대해 직접 쓴 논문까지 들고 제주를 찾았다. 제주국제협의회와 김만덕기념사업회, 제주대평화연구소가 11일 오후 중소기업지원센터에서 '21세기 제주사회와 여성'을 주제로 연 학술대회에 '김만덕 삶에 대한 여성주의적 재해석'을 발표한 것.

'김만덕과의 인연'은 우연히 맺어졌다. 여성학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평소 여성기업인에 대한 관심이 많았는데 지난해 여성관련 서적을 살펴보던 차에 김만덕이란 존재를 발견하게 됐다. 눈이 번쩍 뜨였다. 그의 표현을 빌자면 김만덕은 "상당히 독특한 소재"였다. 역사속의 여성기업인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때부터 김 교수는 김만덕을 찾아다녔다. 이날 논문 발표도 김만덕을 잘 알아서가 아니라, 더 잘 알기위한 기회로 삼을 요량이었다.

"자료가 없어서 혼났습니다. 제주여성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걱정도 많이 했습니다. 그래도 '이번 기회에 좀 더 연구해 보자' 해서 나름대로 이래저래 해석을 가했습니다"

"역사속의 여성기업인은 찾을수 없었다"…우연히 맺은 '김만덕과의 인연'

   
그런데 논문을 쓰면서 김만덕이 생각보다 훨씬 훌륭한 인물임을 깨닫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김만덕을 한마디로 표현해달라고 묻자 돌아온 대답. '한마디'가 아니었다.

"현대에 있어 '양성적 인간상'은 매우 중요한 주장입니다. 여성은 여성답게, 남성은 남성답게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진정한 덕목이 뭔가. 남에 대한 보살핌과 부드러움, 개척적이고 진취적이며 유능한 능력. 감성적이고 이지적이며 독립적인 인물. 여성으로서의 욕구도 스스럼없이 분출한 여인. 남녀가 어우러진 인간상. 21세기에 추구해야할 이상적인 인간상, 여성상을 지닌 멋있고 아름다운 여인입니다"

김 교수가 시민연대를 만든 꾸린 것은 지난해 6월5일. 꼭 1년전의 일이다. 1학기 개강에 앞서 학생들에게 '여성으로서 바꾸는 싶은 것들'을 질문했다. 거기서 추린 4개 주제중의 하나가 '여성인물을 화폐에' 담는 것. 한 학기 동안 이 주제를 정규 커리큘럼으로 다뤘다.

수업이 끝나면서 학생들과 함께 만든 것이 시민연대였다. 이 주제를 갖고 지속적으로 캠페인을 벌여보자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인터넷상에 카페도 개설했는데 지금은 여성단체 리더 들까지 합세해 회원수가 150명이 넘는다.

이 때 시민연대가 생각하는 화폐 모델 후보 7명도 발표됐다.

신사임당과 유관순, 명성황후, 선덕여왕, 허난설헌, 이태영 박사에다 김 교수의 강력한 천거로 김만덕이 포함됐다. 물론 당시에도 김만덕을 아는 이는 없었다. 고(故) 이태영 박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변호사이자 여성계의 대모.

"편견으로 비쳐질까봐 후보군에 신사임당 포함…앞으로 뺄까도 생각"

지금은 진보적 여성단체들이 "가부장적 여성상을 상징하는 인물"이라며 난색을 표하고 있는 신사임당을 당시 후보군에 포함시킨 이유를 물었다. 신사임당은 율곡 이이 선생의 학문을 연구하는 율곡학회가 가장 적합한 인물로 꼽고 있다. 특히 올해는 신사임당 탄생 500주년이 되는 해.

"그때(1년전)만 해도 신사임당을 배제하는게 또다른 편견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잘 알고 있기도 하고요. 그래서 일단 올려놨는데 어차피 좁혀가야 하는 만큼 이제는 뺄까도 생각중입니다"

김 교수 말에 따르면 여성계에선 유관순을 가장 유력한 후보로 보고 있다. 현역 여성 국회의원들도 그렇게 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성계는 나름대로 의견을 피력하고 있을뿐 여성인물 화폐 넣기 운동은 시민연대가 주도하고 있다.

시민연대는 언젠가는 후보를 1명으로 압축시켜야 상황. 그러나 새 화폐 발행 자체가 상당히 늦춰질 것이라고 한다.

여성계 등에선 오래전부터 시끄럽지만 사실, 새 화폐 발행은 아직 계획조차 잡혀있지 않은 상태.

김 교수는 오히려 잘됐다고 했다. 발행시기를 늦추면 늘출수록 김만덕의 존재를 더욱 드러낼수 있기  때문이다.

새 화폐 발행 늦어질 듯…"더 알릴 수 있으니까 오히려 다행"

"정부가 '경기도 좋지않은데 새 화폐 발행이 중요한 사안은 아니'라고 합니다. 잘 됐습니다. 그만큼 김만덕을 더 평가하고 더 많이 소개하는게 나으니까요. 신사임당 처럼 세상에 널리 알려져야 합니다"

김 교수는 사견이라며 김만덕과 이태영 박사를 가장 선호했다. 그러나 둘 다 맹점이 있다고 했다. 김만덕은 너무 알려지지 않았고, 이태영 박사는 현대와 가까운 인물이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그러면서도 김만덕에 대한 홍보를 게을리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심포지엄도 하고, 인물 재평가 작업도 하면서 전국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김만덕을 알리는 등 여론을 모으겠다고 집념을 보였다.

그가 농담삼아 내뱉은 한마디는 그를 조상으로 둔 제주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컸다.

"제주에서도 많이 노력해야 합니다…전국으로 알려야 할게 아닙니까?"

"김만덕을 전국에 알린 공로를 인정해야 합니다. 저한테 표창이라도 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웃음)

그러면서 직접적으로 제주도민들을 향해 분발을 촉구했다.

"제주도에서 많이 노력해야 합니다. 모든 관광객들이 김만덕을 알고 가게끔 공항에 그의 동상이라고 세워야 하는거 아닙니까. 김만덕은 제주 뿐 아니라 전국의 여성에게도 소중한 존재입니다. 새롭게 영정도 제작하고 홍보해서 전국으로 알려야 합니다.

지금 영정은 너무 초라합니다. 단지 화폐에 싣는 게 중요한게 아니라 세계적으로 내보여야 하니까요. 또 위조방지 차원에서라도 더 세밀해져야 합니다. 의녀반수의 화려한 옷도 있지 않습니까.

(모의)화폐도 좀 만드시죠? 신사임당은 굉장히 멋있는데…. 추사 김정희가 쓴 글도 넣고. 저희한테 보내주면 막 뿌려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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