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옥같은 눈물이...

사랑하는 도영아, 너와 내가 마지막 나눴던 대화가 어렴풋이 생각난다.

한국병원 2층 한라산 봉우리가 환히 내다 보이는 병실에서 였다.

"어머님, 이제 어디로 가젱 헴수가?"

"나, 조상신디 돌아감져" ("조상에게로 돌아간다"라고 어머님은 생각보다 빨리 대답했다, 마치 준비된 듯한 속답이었다).

"셋이모님 신디 고르라, 초신 세컬레만 소라도렝..."(세번째 이모에게 말씀드려라, 짚신 세켤레만 불살라 달라고... '저승'가는 길이 그 만큼이나 멀었던가 봅니다. 그것을 신고 어머님은 가셨습니다.).

병실에서 하루는 비가 쏟아져 농사일을 못하니까 모슬포 동네 일가 친족들이 여럿이 모여 병문안을 왔다.

"어디 아픈딘 어수강?"(어디 아픈 데는 없습니까?" 숨을 가쁘게 몰아 쉬긴 했지만, 얼마나 속이 타고 답답하고 아픈 기색을 전혀 하지 않고, 눈만 지긋이 감고 있을 뿐, 말도 전혀 하지 않았다.)

"어디 아픈디가 하나도 어신 모양이라마씸"(어디 아픈 데가 전혀 없는 모양입니다, 동생이 옆에 앉았다가 어머님 대신 대답을 했다.)

"너, 나 되어 봤냐?"(동생이 무척이나 당황을 했다. '너가 나의 입장이 되어 봐서 그런 소리를 하느냐?'는 것이었다.)

'무지막지헌 육지것들이 총들고 들어와서 동네사람들을 짐승사냥호듯 막잡아다 죽이고...이제 솔아질 껀가 허난 니네 아방 잡아다 죽여부러시녜...'(19에 시집온 어머니는 4.3이란 엄청난 시국에 말려들어서 동네 일가 친족 남자란 남자는 다 씨를 말려 놓은 마당에 그래도 남편은 '공무원'이어서 살아남는 줄 알았다. 그러나 한국전쟁이 터지자 남편도 동네 사람들과 함께 하룻밤새 잡혀가 죽고 말았다.)

"니네 아방 죽는날 나도 그 고튼 구뎅이에서 죽어불젱 헤시녜...경 헌디 니네 성제 물애기 놔뒁 온 것이 눈에 아롱거련 죽지도 못허연 살아졌저..."(너희 아빠가 죽는 그날 나도 그 같은 구덩이에서 죽어버리려고 했다...그러나 너희들 형제 갓난 아기들을 집에 두고 온 것이 눈에 아롱거려 죽지도 못하고 살아왔다.)[어머님은 26에 '홀어미'(과부)가 되어 불구인 시어머니와 호랑이 같은 시아버지를 모시고 종갓집 큰일 작은일 그리고 농사일을 다 하면서 평생을 살아왔다.]

"어머님, 어렵게 살멍도 가장 지꺼진 날은 언제마씸?"(어머님, 어렵게 살아오면서도 가장 기뻤던 날은 언제였습니까?)

"진희, 은희 수능에서 수석하였던 일..."[큰 아들이 미국서 박사학위 받았다는 것은 그리 큰 기쁨이 아니었다...그간의 희생과 고통이 너무나도 컸기 때문이리라...큰 며느리를 당신앞에 훨씬 먼저 보내야 했으니...]

슬펐던 것, 고통스러웠던 것은 기억하지 말기로 하자, 도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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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머님께 6월 7일자로 보낸 편지에 대한 답장은 상당히 짧고 간략했다. 주옥같은 눈물로 대신한 것 같다.

내가 드린 그 꽃 송이 마디에 두어개의 눈물방울 같아 보이는 것이이 맺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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