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로 다가온 제주의 꽃들(34)

제주하면 떠오르는 것 중의 하나가 '밀감'입니다.

하우스 귤이 요즘 나오기 시작하는데 단 맛은 있어도 제 철에 나는 귤이 정말 제 맛을 내기 마련입니다. 귤에 대해서 주워들은 이야기로는 귤과 탱자는 깊은 관계가 있다고 하는데 탱자나무와 교접시킨 귤이 당도도 높고 품질도 좋다고 합니다. 그러니 어쩌면 귤의 조상뻘 되는 것은 아마도 이 못생기고 시어터진 탱자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탱자는 무엇보다도 가지마다 달고 있는 성성한 가시가 상징인 듯 합니다.

가시는 억세고 날카로워서 감히 가까이 할 엄두조차 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목장같은 곳에서는 소나 말이 담을 넘지 못하게 하느라고 철조망대신 탱자나무를 심기도 했을 것입니다.

대중가요 '가시나무' 중에 이런 노랫말이 있습니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곳 없네
내 속엔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마치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지고 갈 때에 쓴 가시면류관을 보는 듯도 하고, 아니면 내 안에 가득해서 남을 콕콕 찌르는 가시같이도 느껴집니다.

그런데 식물 중에서 가시를 달고 있는 것들은 대부분 자신을 지키기 위한 수단입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장미과의 꽃들인데 예쁘니 사람들이 너도나도 소유하고 싶다고 꺽습니다. 그 등살에 자신을 지키기 위한 가시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바라보면 가시들이 그렇게 밉지만도 않고, 나에게도 나 자신을 지킬 가시 정도는 하나 가지고 살아야겠구나 생각도 하게 됩니다.

남을 찌르기 위한 가시는 흉기겠지만 자기를 지키기 위한 가시는 그와는 다른 것이죠.

   
제주의 민중들은 참으로 많은 고난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변방의 섬이요 유배의 섬인 것으로도 부족해 몽고로부터의 100년 동안의 압제만으로도 부족해서 일제 36년, 그리고 해방이후에도 4·3항쟁에 이르기까지 고난의 역사였습니다. 어쩌면 이 모든 것들이 자기를 지킬 수 있는 가시를 가지지 못한 연유도 있을 것입니다.

오직 몸뚱이 하나만 가지고 열심히 땀 흘리며 살다보면 좋은 날이 오겠지라는 바람이 오히려 헛된 바람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탱자나무의 꽃.

가시가 성성한 가시만 보면 그 줄기에서 이토록 연한 꽃이 핀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합니다. 어쩌면 그래서 더 예쁘게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부드럽지 않은 꽃, 연하지 않은 꽃이 어디에 있습니까? 아니, 새로운 것들 중에서 연하지 아니한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지금은 굳어진 저 가시도 맨 처음에는 부드러웠을 것입니다.

부드러움이 강한 것을 이기는 진리를 보는 듯 합니다.

연약함 속에 깃들어 있는 강인함을 보여주고 이제는 가지마다 성성히 달은 가시를 통해서 그 연약함을 넘어서서 어느 누구도 감히 쉽게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강함을 가진 나무가 된 탱자를 보면서 부드러움과 강인함의 조화를 보게 됩니다.

   
부드러움과 강인함의 경계를 잘 아우르는 꽃.

그러다 보니 그 속내에도 같은 마음을 담고 있어서 신맛과 단맛의 경계를 아우른 것 같습니다. 시다 못해 쓴맛의 탱자가 있을 때 단 맛을 내는 밀감이 있을 수 있었다는 것은 이것을 말하죠.

가시를 달고 있어도 예쁘기만 한 꽃을 만나려면 이제 꼬박 1년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나 그 1년은 하루처럼 다가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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