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장직 사퇴·후반기 '백의종군' 요구 수용의사 밝혀…일촉즉발 위기 모면

강영철 제주시의회의장이 14일 "책임질 것은 책임지겠다"고 말해, 50여일을 끌어온 '취중 폭언 파문'이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공무원노조로부터 의원직 사퇴 압력을 받아온 강 의장은 이날 공무원노조를 비롯해 도내 시민단체로 구성된 '공직사회개혁과 공무원노동기본권 쟁취를 위한 제주지역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와의 만남에서 처음으로 책임질 뜻이 있음을 밝혔다.

강 의장은 자신의 거취와 관련해 조속한 입장 표명을 요구하는 공대위에게 "26일까지 기다려 달라. 솔직히 마음속으로 50%는 여러분들의 주장을 수용했다"며 "오늘 여러분들의 모임에 명분을 세워드리겠다. 책임질 것은 책임지겠다"고 예전과는 달라진 태도를 보였다.

강 의장의 이같은 발언은 경우에 따라선 의장직을 사퇴할 수 있고, 후반기 원구성때 평의원으로 백의종군 할 수 있음을 시사한 대목이다.

공대위, '의원직 사퇴' 대신 '의장직 사퇴' '후반기 백의종군' 요구

▲ 강영철 의장과 이상윤 부의장, 김수남 의원(왼쪽부터)이 공대위측의 얘기를 듣고있다.
공무원노조는 당초 강 의장의 의원직 사퇴를 위해 시민 6000여명을 상대로 서명을 받는 등 강경한 태도를 취해왔으나, 최근 요구 수위를 낮췄다.

공대위도 이날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서 의원직 사퇴 요구를 거둬들인 대신 '의장직 사퇴'와 '후반기 백의종군'을 새 카드로 들고나왔다.

그러나 의장직 사퇴는 다음달 8일부터 열리는 1차 정례회전에 후반기 원구성을 해야하는 의회 일정상 태도를 바꿨다는 상징적인 의미밖에는 없다. 제주시의회는 다음달 2일께 임시회를 열어 후반기 원구성에 나설 예정이다.

따라서 강 의장이 결심한다는 것은 사실상 후반기에 다시 의장으로 출마하거나 상임위원장 을 맡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2시간 가까이 진행된 이날 면담에선 양쪽 다 한발씩 물러섬으로써 모처럼 사태 해결의 가능성을 열었으나 면담이 처음부터 순탄하지는 않았다.

회의 시작 전부터 공개 여부를 놓고 실랑이가 오갔고, 강영철 의장은 종전과 마찬가지로 회의 내내 '사주설' 또는 '배후설'을 제기해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으로 치닫기도 했다.

회의 공개 놓고 실랑이...강의장 '사주설' '배후설' 제기로 분위기 싸늘

▲ 김영철 공무원노조 본부장(오른쪽)과 이석문 전교조 제주지부장이 뭔가를 숙의하고 있다.
면담은 운영위원회 간사인 고상호 의원이 회의 공개 여부를 놓고 민주노총 제주본부 고승남 조직부장과 격한 언쟁을 주고받은 뒤 시작됐다.

면담에는 의회측에서 강영철 의장과 이상윤 부의장, 고상호·김수남 의원이 참석했고, 공대위에선 김영철 공무원노조 본부장과 강봉균 민주노총 제주본부장, 이석문 전교조 제주지부장, 이태권 전농 제주도연맹 의장, 김상근 주민자치연대 대표가 배석했다.

강영철 의장은 사과부터 했으나 이내 자신의 입장을 옹호하려 애썼다.

그는 "공대위가 구성돼서 의회까지 오게 된 것에 대해 원인 제공을 했기 때문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문을 연후 "그러나 의회가 신문에 난 것처럼 다 그런 것은 아니며 낡고 구태의연한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들도 시민들로부터 인정받았기 때문에 의원으로 뽑힌 것"이라고 항변했다.

강 의장은 이어 "술먹고 실수한 것 같고 사퇴하라면 의회가 존립할수 없고, 의원들의 전체 의견도 그렇다"며 의원직 사퇴가 무리한 요구라는 입장을 보였다.

그는 "법을 집행할 공무원들이 불법시위를 벌이고 현수막을 내걸고 사퇴를 하라면 어느 누가 응하겠느냐"면서 "적과 아군 사이도 아니고 공무원 노조가 월권하고 있다"고 노조를 자극했다.

강영철 "나도 피해자...배후세력 없다면 어떻게 이럴수 있나"


▲ 강영철 의장이 곤혹스러운 듯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
강 의장은 노조가 내건 현수막에 '미숙아'란 표현이 들어있는 것을 지적하면서 "처음엔 가해자였지만 지금은 피해자다. 미숙아가 4선의원이 되고 의장이 되느냐"고 반문한뒤 "배후세력이 없다면 어떻게 이럴수 있느냐"고 사주설을 제기했다.

그는 특히 "지역주민이 그만두라면 (의원직을) 그만두겠다. 의원들이 그만두라면 (의장직을) 그만두겠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분들이 그러면 월권행위"라며 노조 요구에 응할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사과표명으로 순조로울 것 같던 면담은 이때부터 틀어졌다. 공대위 대표들과 배석한 의원 등 양쪽에서 진화를 시도했지만 강 의장은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김상근 주민자치연대 대표는 "나름대로 공감대를 마련하기 위해 면담 요청을 했는데 상당히 오해가 깊다는 느낌"이라면서 "뭘 염두에 두고 배후세력을 운운하는지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강 의장 태도를 문제삼았다.

김 대표는 "공무원노조 차원에서 (의원직 사퇴를 요구)했던 것을 공대위가 유보시켰다"며 공대위의 중재 노력을 강조했다.

그러나 강 의장은 전혀 물러서지 않았다.

"배후가 시청 측근일수도...누군가는 책임져야" 정치적 음모설 제기

강 의장은 "공대위가 배후세력이란 말은 아니지만 (배후가)집행부인 시청 측근일수 있고, 저와 라이벌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뒤에서 쾌재를 부를수도 있다"면서 "후반기 의장 선거에다 오는 10월 제 선거구(용담동)에서 도의원 보궐선거가 있고, 2년후엔 지방선거도 있다"며 일종의 정치적 음모설까지 제기했다.

그러면서 "선출직이 비회기 기간에 술마시고 30초간 대화했는데 (사퇴하라면)저의가 있는 것 아니냐. 나도 의장이기 전에 한 인간이고 피해자중 하나"라며 "집행부가 됐든 사태를 부추기는(강의장은 'ing'라는 표현을 썼다) 쪽이 됐든 누군가는 책임져야 한다"고 책임을 다른쪽으로 돌렸다.

강봉균 민주노총 제주본부장은 "공무원노조를 폄하하고 비하하는 배후설에 유감을 표한다"면서 배후를 밝힐 것을 촉구한 뒤 "시의원은 한 지역 출신이지만 시 전체를 바라보고 의정활동을 펴야하는 만큼 지역주민에게만 물어보겠다는 것은 의장으로서 부적절한 발언"이라고 꼬집었다.

강 본부장은 "어떻게 하면 시의회를 정상화시킬까 접점을 찾고 중재하려고 했는데 유감스런 말만 해서 정말 유감"이라고 실망감을 드러냈다.

김영철 "원인제공 해놓고 노조에 책임 묻겠다는 것은 협박" 발끈

▲ 강영철 의장이 공대위측과의 면담 도중 물을 마시고 있다. 맨 오른쪽은 김수남 의원.
김영철 공무원노조 본부장은 "누가 피해자고 노조가 무슨 월권을 했다는 말인가"라고 묻고 "원인제공은 의장이 해놓고 공무원노조에 책임을 묻겠다는 것은 일종의 협박"이라고 강 의장의 태도를 강하게 비난했다.

김 본부장은 "여당 대표도 말 실수 하나로 책임지고 사퇴하는 마당에 시민들의 대표인 의장이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여직원에게 할수 있는 얘기냐. 여직원의 입장을 생각해봤느냐"면서 "배후조종의 실체가 누구인지 정확히 밝혀달라"고 몰아세웠다. 이어 "배후세력의 존재가 사실이라면 본부장이나 지부장직을 전부 사퇴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강영철 의장은 폭언 피해자인 여직원이 노조 조합원인지, 정부가 공무원노조를 인정하고 있는지 초점을 벗어난 질문으로 예봉을 피했다.

이상윤 부의장은 "서로 책임추궁만 하지 말자"며 요구사항을 물었고, 이석문 전교조 제주지부장은 강 의장의 피해자란 발언에 유감을 표한 뒤 "우선 의장직을 사퇴하고 추후(후반기에) 의원직만 갖고 상임위원장이나 의장을 맡지 않다는면 과거를 묻지않겠다"고 중재를 시도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양측의 신경전은 계속됐다.

이석문 "백의종군하면 과거 안묻겠다"...이상윤 "처음부터 의원직사퇴는 무리"

▲ 강영철 의장과 면담을 갖고있는 공대위측 대표들.
중재를 시도하던 이상윤 부의장도 이윽고 "어떻게 말 한마디 잘못했다고 처음부터 의장직과 의원직을 사퇴하라고 요구하느냐"고 발끈했고, 김상근 주민자치연대 대표는 "남은 임기에 백의종군하라고 개인적 결단을 요구하는 것이지 제주시의회에 요구하는 것은 아니"라고 부의장이 끼어들 개재가 아님을 요구했다.

강영철 의장은 "공무원노조는 공무원들의 권익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노조가 지금까지 공무원을 위해 성명서 한번 내봤느냐. 만만한 의회 갖고 시위(하는 것으로)밖에는 안보인다. 그럴수록 저는 더 피해자"라고 적극적으로 항변했다.

팽팽하던 입장차이는 10분동안 정회 시간을 가진 뒤에야 좁혀졌다.

강 의장이 "합법단체가 아닌 공무원노조가 요구하면 안듣겠지만 전교조 등도 있기 때문에 솔직히 마음속으로 50%는 수용하겠다. 다음주말(26일)까지는 기다려달라"고 요구했다.

공대위 측이 시한을 요구하자 강의장은 "시기를 정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책임질 것은 책임지겠다. 여러분들 오늘 모임이 명분이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고 공대위가 이를 받아들임으로써 1시간 45분에 걸친 줄다리기는 마무리됐다.

이날 면담은 모처럼 강 의장이 공대위측의 대화 제의를 수용해 이뤄졌으나 정작 얼굴을 마주하자 공대위 측은 요구 수위를 한단계 낮춘 반면 강 의장은 전혀 태도를 누그러뜨리지 않다가 막판에 가서야 타협의 여지를 남겨 많은 아쉬움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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