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왕자들은 어느새, 바다 위를 유영하는 보아뱀과 동화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지 도무지 뒤를 돌아볼 생각이 없다.

평화로운 자연과의 대화에 작은 고래들도 끼어든다. 몇십마리의 돌고래가 넘실넘실 아이들 앞을 헤엄쳐 잠시 환상을 꿈꾸게 한다.

▲ 비양도 인근 바다에서 돌고래가 노닐고 있다.
천년의 섬 비양도.

한림항에서 약 15분 정도 배를 타고 가면 오름 하나 우뚝한 비양도에 닿는다.

한때 죽도(竹島)라고도 했다는 것이 실감 날 만큼 가까이 다가갈수록 비양봉 위에는 대나무 군락이 선명하다. 제주삼읍도총지도에는 서산이라고도 기록되어 있다.

비양도는 동서길이 1020m, 남북길이 1130m, 총면적 0.43㎢이다. 해안선의 길이는 3.5km로 도보로 약 한 시간 반 정도면 넉넉히 돌아올 수 있다.

현재 약 62가구에 169명 정도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자그만한 마을이다.

배를 타고 15분을 달려 비양도에 처음 닿는 곳은 압개 포구이다. 압개 포구는 한림항과 비양도를 잇는 포구로 1975년경부터 정비가 되었다.

한림항은 비양도의 모항이며 비양도에 여러 가지 재화와 서비스를 공급하는 항구이다. 공간거리로 보면 협재리가 더 가까우나 도항선이 다닐 수 있는 여건이나 여러 가지 상업시설이 상대적으로 한림항이 유리하므로 비양도 사람들은 한림항을 이용한다.

▲ 한림항과 비양도를 잇는 압개 포구.
압개 포구 사람들은 연중 난류의 영향을 받으므로 물 속이 차지 않아 겨울철에도 어선어업 및 잠녀어업을 하여 소득을 얻는다. 또 태풍이 불어오면 해안으로 밀려오는 해초인 감태로 짭짤한 수입을 얻기도 한다.

바닷속 바위에 붙어서 자라던 갈색의 감태들이 태풍으로 발생하는 심한 파도 때문에 뿌리 채 뽑혀 해안으로 밀려오곤 하는데 이 감태들을 잘 말려서 일본으로 수출하면 약용으로 쓰여 한때 좋은 수익원이 되었다고 한다.

이 감태 모으기는 비양도에 거주하는 노인들의 몫이다. 이는 마을 노인들을 배려한 비양도 주민의 아름다운 모습이라 할 수 있겠다.

▲ 비양도 압개 포구에 마련된 쉼터.
압개 포구에는 작은 쉼터가 있다. 이곳 나무 그늘에서는 마을 할머니들이 서느러이 앉아 한라산을 바라보고 있다.

비양도에 처음 들어서면 두 개의 송덕비가 우뚝 서있다. 이는 비양도에 수도를 놓아준 감사의 표시로 1988년 세운 비이다.

비양도에는 1965년 처음 공동수도가 들어왔고 1988년 7월에 각 가정으로 개인 수도가 보급 되었다.

▲ 비양도에 수도를 놓아준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1988년 세워진 송덕비.
비양도에는 언제부터 사람이 살았을까?

이 질문에 참 황당한 대답이 나온다. 신석기 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다는 흔적으로 '압날점렬문' 토기 2점과 탐라시대 전기에 해당하는 토기도 발견되었다 한다. 이 토기는 지금으로부터 4000 ~ 5000년 전 시기의 것으로 알려 지고 있다 한다.

"천년의 섬이라면서요?"

아이들이 놓치지 않고 질문을 던진다.

비양도는 천년의 섬이라고 한다.

그러나 생성시기에 대해 논란이 많다.

천년설의 근거로 자주 인용되는 것은 중종 25년 (1530년)에 나온 '신증동국여지승람' 38권의 제주목 고적 부분 내용이다.

이에 의하면, "고려 목종 5년(1002년) 6월에 산이 바다 한가운데서 솟았다. 산에 네 구멍이 터지고 붉은 물을 5일 동안 내뿜고 그쳤다".

그런데 이 기록에 의하면 1002년에 분출한 지역이 비양도 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다만 일본인 학자 나카무라(1921)가 1002년에 분출한 지역을 비양도로 추정했을 뿐이며 이 견해를 수용했는지는 모르나 북제주군청은 이 기록에 근거하여 비양도 탄생 천년비를 세웠다.

4000년 전 시기의 신석기 시대 토기 발견을 가지고 보면 비양도 탄생 천년설은 과연 허구인가?

이에는 지질구조로 해설이 이어진다.

즉 신석기 시대의 용암분출에 의해 형성된 현무암 대지(비양봉 조면현무암대지)가 먼저 형성되고 그 후 휴식기를 지나 1000년경에 현무암 대지 위에서 스코리아(송이) 분출이 일어나 비양봉이 형성되었다고 본다면, 신석기 토기 이야기와 비양도 탄생 천년설은 어느 정도 설명이 될 수도 있을 듯 하다.

▲ 비양도의 우영밭.
비양도에는 큰 밭이 없다. 모두 우영밭(텃밭)의 규모를 벗어나지 않는다.

비양도의 처음 정착민들은 고구마, 보리 농사를 짓기도 했으나, 바다가 워낙 어류가 풍부한 황금어장이라 수산물의 판로가 확대 되면서 어업소득이 농업소득보다 비교우위에 있기 때문에 비양도 밭은 현재 휴경지로 방치 되어 있으며 단지 우영밭처럼 마을 사람들이 먹을 만큼의 고구마와 옥수수, 상추, 콩, 파, 마늘 등이 조금 심어져 있을 뿐이다.

비양도의 바다는 풍요롭다. 주로 옥돔과 갈치, 오징어가 많이 잡힌다.

비양도 주민들은 약 40척의 어선을 보유하고 있으며, 연안어업과 근해 어업을 한다.

   
현재 비양도에는 빈집이 많은데 이는 아주 이주해간 사람들도 있지만 주소는 비양도에 두고 나가 살다가 고기가 많이 잡힐 시기에는 들어와 비양도 근해에서 고기잡이를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비양도 주민들은 당장 필요하지 않은 고기는 바다로 돌려 보낸다고 한다.

아마 바다를 고갈시키지 않으려는 배려인 듯 싶다.

비양도 여자들은 모두 잠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아이들은 제외다.

현재 25명 정도가 해녀일을 한다.

60세 이상은 조간대 부근에서 작업을 하고 나머지 해녀들은 깊은 바다에서 잠수를 하고 출가 해녀도 있다.

비양도의 해녀들은 여름 산란기에는 소라를 잡지 않는다고 한다.

▲ 비양도의 유일한 오름 비양봉.
비양도에는 오름이 오직 비양봉 하나이다. 섬이 온통 오름이다. 그 자락에 옹기종기 마을을 이룬다.

비양봉을 마을 사람들은 '가재'라고도 부른다.

비양봉은 제주도의 형성과정에서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오름이다.

정상부에 두 개의 큰 분화구가 있어서 쌍둥이 분화구에 해당되는데, 크기에 따라 '큰암메', '작은 암메'로 부르기도 한다.

비양봉은 스코리아로 구성된 분석구로 해발 114m, 비고 104m, 둘레 2023m인 오름이다.

비양봉은 4개의 봉우리로 구성되어 있다.

분화구에는 소나무, 으름나무, 팽나무, 섬오가피나무, 비양나무 등이 자라고 있다.

특히 비양나무는 우리나라에서 오직 비양봉 분화구 바닥에서만 자생하고 있기 때문에 비양나무라고 명명되었다. 비양나무는 제주도 기념물 제48호로 지정되어 있다.

비양도에는 대나무가 많다.

또 비양도에는 천적이 없는 이유로 파충류의 안정적인 서식처로 현재 누룩뱀, 쇠살모사 등이 많다.

비양도의 해안을 돌다보면 몇가지 기이한 특징들을 볼 수 있다.

먼저 '애기업은돌'을 보자.

높이 4.5m, 둘레 약 4m의 굴뚝 모양의 화산체이며 호니토이다.

용암류 내부의 가스가 분출하면서 만들어 놓은 분기공으로 주변에 40여개가 있다.

호니토는 마그마에 있던 휘발성분이 폭발하여 마그마 물질을 화구 주변에 쌓아 만들어진 것이다.

▲ 애기업은돌(왼쪽).
그리고 해안도로 곳곳에 고구마 모양이 화산탄들이 분포되어 있는데 이는 도내 최대의 화산탄 산지이다.

이것은 빠른 속도로 올라온 액체 상태의 용암 덩어리가 공중에서 회전하면서 고구마 모양으로 굳어져 떨어진 것이다.

섬을 거의 다 돌아올 때쯤 되면 넓은 초승달 모양의 호수가 나온다.

펄랑호이다.

길이 500m, 폭 50m의 염습지이다.

펄랑호에는 쇠백로가 날아오기도 하고, 갯질경이, 순비기 식물이 자란다.

이 펄랑호는 육지가 잃어버린 수많은 생물들이 살고 있는 자연사 박물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 비양도의 펄랑호.
비양도에도 당은 있다.

술일당이라 한다.

제주도 어디에서도 당이 없으면 바닷밭을 일굴 수가 없다.

제주의 안녕은 당에서 지켜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듯 싶다.

비양도에는 사철나무를 신목으로 삼고 매 술일에 제를 지내고, 즉 개날에 지낸다 하여 개당이라고도 하는데 이 당은 금릉 또는 옹포에서 가지 갈라온 당이라고 한다.

옛날에는 지나가는 배도 와서 이 당에서 제를 드리고 갔다고 한다.

그래야만 고기도 잘 잡히고 사고도 나지 않는다고 한다.

▲ 비양도의 술일당.
섬을 돌다보면 비양도 답지 않은 어설픈 모습을 자주 만나게 된다.

비양봉을 뺑둘러 해안도로를 놓은 것도 안타깝고, 수석거리라 해서 화산탄들을 단 위에다 올려놓아 전시해 놓고 있는 것 또한 우습다.

바닷가 지천이 자연 그대로 화산탄 공원인데 구지 단을 세우고 그 위에 몇 개를 올려놓아야만 했을까? 무엇 때문에...??

▲ 비양도 해안에서는 화산탄을 단 위에 올려놓고 전시해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또 펄랑호 근처에는 아주 관찰데크를 놓았다.

또 야생화 공원, 자갈밭 해변(지압보도) 등등 형식화된 모습들이 우리 일행들의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그냥 원래 비양도 해변을 걷게 했으면 그대로 지압인데....

처음 우리가 비양도를 찾을 때 일행 한 분이 "비양도 도항선이 한편 뿐인게 참 다행이다"라는 말을 했다.

이는 비양도가 많은 관광객들로 인해 훼손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과 개발이라는 미명아래 비양도 자연의 모습을 잃는 것을 염려해서 한 말일 것이다.

꼭 비양도가 박재된 것 같다.

개발의 속도와 동·식물 멸종의 속도는 비례한다고 했던가???

비양도를 나오면서 술일당 쪽으로 바라보며 빌어본다.

'그동안 비양도 사람들의 안녕을 돌보셨다면 이제 비양도의 안녕도 지켜 주시길...'

바다를 고갈시키지 않고 조금의 불편함을 참아 내는 풍요로운 섬, 어린왕자들의 동화 속 비양도가 오래오래 지켜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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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제량님은 제주의 새로운 관광, 자연과 생태문화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대안관광을 만들어 나가는 (주)제주생태관광(www.ecojeju.net) 에코가이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제주의 벗 에코가이드칼럼’에도 실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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