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민회 '항소 취하' 압박…김 지사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김태환 지사가 우근민 전 지사 성희롱 항소 취하여부를 놓고 장고에 들어갔다.

지난 10일 항소취하를 요구하며 항의방문 온 제주여민회 대표들에게 김태환 지사는 "다음주말까지 항소 취하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힌 바 있어 이제 김 지사가 입장을 정리해야 할 시간이 사흘 밖에 남지 않았다.

김 지사는 여민회 관계자와 만난 자리에서 "다음주말까지 여러분들을 초청하겠다"는 말도 했다. 김 지사는 이번 주말인 19일께 여민회 관계자들을 도청으로 초청해 성희롱 항소여부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힐 것으로 알려졌다.

김 지사는 여민회와 자리를 함께한 이후 주변 측근들과 이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해법을 찾았으나 아직까지 명쾌한 결정을 내리지 못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김 지사가 결정을 내려야 할 부분은 제주도가 자신의 취임 이전에 제기해 버린 성희롱 1심 판결에 대한 항소를 취하해야 하느냐와 도청내 정상적인 행정절차도 밟지 않은 채 항소를 제기한 책임자에 대한 문제 여부이다.

김 지사, 19일께 여민회 관계자 만나 성희롱 항소관련 자신의 입장 밝힐 듯

여민회는 지난 10일 기자회견과 김 지사 면담을 통해 제주도가 여성부와 서울행정법원의 결정을 수용해 항소를 취하할 것과 항소를 제기한 책임자를 가리고 그에 따른 엄중한 책임을 물을 것을 요구했다.

김태환 지사는 아직까지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둔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자신이 내릴 결정에 대해 부담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 지사가 내릴 수 있는 방안은 제주도가 이미 제기해 버린 항소를 취하하거나, 아니면 여성단체에게 고등법원 판결까지 기다려달라고 당부하는 양자택일 뿐이다.

'항소 취하'…도민통합과 여성인권 보호 '명분'…우 지사 '물 먹이기' 여론엔 우려

김 지사가 항소를 취하할 수 있는 명분은 역시 '도민통합'이다.

지난 2002년 1월 우근민 전 지사가 자신의 집무실에서 제주시 여성단체장 고모씨에게 성희롱 한 문제로 지난 2년 반 동안 여성계는 물론이고 제주사회가 심각한 갈등에 빠져들었으며, 이 문제로 여성계와 고씨, 그리고 우 전 지사 사이에는 명예훼손에 따른 법정 공방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또 고씨와 여민회는 우 전 지사와 제주도의 항소로 피해자의 인권이 계속 유린되고 있음을 주장하고 있어 도민통합과 여성인권 보호 차원에서 항소를 취하할 수 있는 명분은 있는 셈이다.

이미 여민회는 김 지사에게 "도가 항소를 취하할 경우 도민화합 차원에서 여민회도 우 전 지사 등에게 제소한 명예훼손 소송을 취하할 용의가 있다"는 언질을 준 상태이다. 

특히 비록 전임 지사에 의해 일어난 문제라 하더라도 항소의 주체는 당연히 새로운 지사가 돼야 한다는 점에서 자신의 의지가 반영이 안된 항소를 취하해 '성희롱'의 문제를 말끔히 털고 새로운 도정을 열어나가는 게 바람직 하다는 의견도 일고 있다.

하지만 과연 김 지사가 '항소취하' 결정을 내릴 수 있을지 회의적인 시각도 많다.

겉으로는 '행정의 연속성' 이라는 표현을 쓰기는 하지만, 우근민 전 지사가 자신은 억울하다며 항소한 상황에서 이미 제기돼 있는 제주도의 항소를 취하하는 게 야속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갈등우려 '불가피한 항소론' 땐 취임초기부터 여성계와 '긴장'

특히 우 전 지사와 김 지사가 도지사와 제주시장으로 재임하던 시절 관계가 그리 좋지 않았던 점을 많은 도민들이 알고 있는 상황에서 항소취하가 우 전 지사에 대한 '의도적인 물 먹이기'로 비쳐질 수 있는 점을 내심 우려하고 있으며, 이 역시 '도민통합'에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김 지사의 한 측근은 말했다.

이 경우 김 지사는 이미 행정적 행위가 이뤄진 항소에 대해서는 '행정의 연속성'차원에서 이해해 줄 것을 여민회에게 당부하고, 다만 고등법원의 결정에 대해서는 어떠한 내용이라도 그대로 따르겠다는 의사를 피력할 가능성도 있다.

또 여성계의 인권보호 차원에서 여성부의 결정을 내용적으로 받아들여 제주도청내에 성희롱 재발방지 대책을 수립하는 등 여성부와 1심 판결을 실질적으로 수용하겠다는 카드를 내 놓을 공산도 크다. 문제는 여민회가 요구하는 책임자 문책을 어떻게 하느냐는 문제이다.

항소 제기를 결정한 주체는 권영철 행정부지사와 오경생 보건복지여성국장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여민회는 특히 오경생 국장에 대해서는 강하게 책임론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김태환 지사가 항소를 전격 취하할 경우 여민회 입장에서는 쌍수를 들고 환영하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김 지사와 여성계의 관계는 서먹서먹해질 수밖에 없으며 상황에 따라서는 긴장관계까지 놓일 수 있게 된다.

전임 지사가 만들어 놓은 문제를 후임인 김 지사가 어떻게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솔로몬의 지혜'를 발휘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김 지사는 늦어도 금요일 중으로는 어떠한 형태로든 이에 대한 입장을 정할 수밖에 없게 됐다. 김 지사가 어떤 해법을 내 놓고 이 사태를 돌파해 나갈지 도민사회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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