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화해 과거사위, 전국 형무소 희생자 유해발굴 밝혀
7일 대전 '골령골' 일대 답사…"내년 6월부터 발굴"

▲ 지난 7월 대전 골령골 위령제에서 참석한 한 유족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제주도내 4.3희생자 유해발굴에 이어 대전 골령골에 묻힌 대전 형무소 4.3희생자를 포함한 전국 형무소 희생자에 대한 유해발굴이 국가차원에서 이뤄진다.

이로써 58년간 맺힌 한을 풀지 못한 4.3 행방불명인 희생자 유가족들의 응어리진 가슴을 풀어줄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더욱이 2008년 4. 3 제60주기를 앞둬 전국 곳곳에서 4.3희생자의 유족을 찾는 진실규명 작업이 한걸음씩 빛을 보고 있어 여전히 부족한 진실규명 작업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는 평가다.

▲ 진실화해과거사위가 대전 골령골을 비롯해 전국 형무소 희생자에 대한 유해발굴 계획을 밝혀 기대를 모으고 있다. 제주4.3유족회가 올해 7월 8일 대전골령골 현지를 찾아 4.3희생자 위령제를 지내는 모습

정부, 전국 곳곳에서 스러진 '4.3 행방불명인' 희생자 유해를 찾는다

7일 오전 제주특별자치도는 제주대학교와 (사)4.3연구소 등 유해발굴단과 유족 등 10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4.3 당시 20~30여명이 매장된 곳으로 추정되는 제주시 화북동 '가릿당동산' 동녘밭 현지에서 '4.3희생자 유해발굴 개토제' 열렸다.

이와함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송기인)는 이날 오전 대전시청에서 '전국 형무소 재소자 희생사건 설명회'를 갖고 "내년 6월 말부터 유해발굴작업에 들어가겠다"고 밝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날 설명회에는 진실화해위 김동춘 상임위원(차관급)과 김무용 조사1팀장, 관련 유족과 시민사회단체 관계자 등 50여명이 참석했다. 이어 진실.화해 과거사위는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금홍섭 국장 등의 안내로 유족들과 함께 대전시 동구 산내 골령골의 대전형무소 재소자 학살터를 찾았다.

산내학살사건은 한국전쟁 당시인 1950년 7월초 제주 4.3사건 가담자를 포함한 대전형무소 재소자 수천여명(1천800명~7천여명)이 군인과 경찰에 의해 집단처형된 사건으로 1999년 미국의 비밀문서 해제로 사실이 밝혀졌다.

▲ 대전 산내 골령골 학살터를 찾은 유족들

대전 산내 학살은 전국 형무소 집단학살 사건 중 규모가 가장 큰 사건으로 알려져 있으며 매해 제주4.3유족회에서는 대전 골령골을 비롯해 전국 7개 형무소 학살터를 돌며 위령제를 지내오고 있다.

진실화해위는 이날 "희생자 매장 추정지 기초용역 조사결과가 나오는 대로 유해발굴 작업에 들어갈 계획"이라며 "하지만 산내 골령골 등 일부는 희생 인원이 워낙 많은데다 발굴을 위해 사유지도 매입해야하는 상황이어서 내년에 확보된 관련 총 예산이 10억 정도 밖에 되지 않아 간단치는 않다"는 입장이다.

현재 진실화해위에 접수된 전국 형무소 재소자 희생사건은 민간인 집단희생 관련 7778건(11월 30일 기준)의 4.2%인 330건이며 조사 개시를 결정한 201건(조사개시  이후 추가 접수 129건)을 형무소별로 분류하면 대전형무소가 51건으로 가장 많다.

다음으로는 전주형무소 36건, 목포형무소 24건, 대구형무소 19건, 광주형무소 18건, 공주형무소 9건, 군산형무소 7건, 진주형무소 6건, 마산형무소 4건,  김천형무소 4건, 서울형무소 4건, 인천형무소 4건, 부산형무소 3건, 청주형무소 3건, 마포형무소 2건, 안동형무소 1건, 춘천형무소 1건 등이다.

▲ 7일 오전 제주에서는 4.3 유해발굴을 위한 개토제가 열렸다.
하지만  학계와 시민단체에서는 전국 형무소 재소자 희생사건이 한국전쟁 발발 직후  전국적인 규모로 동시에 발생했다는 점에서 피해 규모가 방대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피해자가 대부분 당시 군사재판에 의해 죄인으로 규정짓거나 여전히 이념정국에서 자유롭지 않은 좌익 사범 관련자가 다수 포함돼 있어 유족들이  진실규명 희생자 신청을 기피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날 김무용 진실화해위 조사1팀장은 "전국 형무소 재소자 희생사건에  대한  조사는  시.도를 통한 기초조사를 거쳐 당시 법적 절차적 정당성 여부와 지휘.명령계통 책임소재, 처형 집행과정, 전체적인 피해규모 등을 밝히는 방향으로 진행할 것"이라며 "특정형무소를 먼저 하는 것이 아닌 전국적으로 일괄 조사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 4.3 당시 학살터에 대한 유해발굴은 지난 5월 제주시 화북천변에서 이뤄져 3구의 유해가 발굴됐다.

이와관련 4.3유해발굴단은 "한국전쟁 발발 직후 전국적인 규모로 동시에 발생한 전국 형무소 재소자 희생사건에 대한 국가차원의 조명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시점에서 4.3 유족들이 거는 기대가 크다"며 "보다 정부에서 예산지원과 확보가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기대를 나타냈다.

한편 전국 형무소 재소자 희생사건은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직후 각 형무소에 수감돼있던 재소자들이 군.경에 의해 집단희생됐다고 주장하는 사건으로, 진실화해위는 지난달 7일 제29차 전원위원회의에서 직권조사 개시 결정을 내린 바 있다.

<대전 골령골 산내학살이란?>

▲ 대전 골령골에 새겨진 비문
1950년 7월, 대전형무소에는 제주4.3사건과 여순사건 관련 정치범들로 포화상태였다. 정원이 1200명이었으나 3배가 넘는 3000-4000명이 수감되어 있었던 것으로 당시 간수들에 의해 확인되고 있다.

수형인들의 대부분은 제주4.3사건과 여순사건 관련자, 전쟁직후 예비검속된 보도연맹원 등 이었다.

1950년 7월 6, 7일 양일에 걸쳐 명적계를 보고 분류된 수형인 중 사상범들은 8-10일 사흘에 걸쳐 대전시 산내면 골령골로 끌려가 미군과 사회 유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전원 학살당했다.

그러나 학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형무소 관계자들이 3일간 수형인들을 끌고나갔다고 증언하는 것과 달리 현장 총살집행자 등 관련자들은 학살이 총 10일간 진행되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또한 주변에 살던 주민들도 열흘간 학살이 진행되었다는 동일한 증언을 하고 있다.

이는 수형인 학살 이후, 대전 지역의 보도연맹원과 좌익 관련 활동 전력이 있는 이들을 예비검속하여 모두 학살하였기 때문으로 밝혀졌다. 즉 형무소 사상범 외에도 군경이 후퇴를 시작한 7월 14일∼16일 막판까지 골령골에서는 학살이 끊이지 않았던 것이다.

대전형무소에서 학살된 수는 해제된 미군문서에서는 여순사건 관련자 1200명, 제주4.3사건 관련자 300명 등 총 1800명이라고 하고 있으나 3000명 이상이 학살된 것으로 추정되며 앨런 위닝턴 등 외신기사는 7000-8000명이 학살된 것을 보았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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