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생각하는 갈대"

새삼스럽게 떠올려지는 경구다. 그런데 파스칼이 왜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인간은 생각하는 솟대다."

그래서 나는 이 경구의 포인트를 '생각하는'으로 읽지 않고 '갈대'로 본다. 바람에 흔들리는, 그래서 도저히 튼실하지 못한 존재. 불이라도 한 번 질러지면 훨훨 타버리는 존재. 끝내는 새까맣게 그을린 대지만 남는다. 즉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라는데 초점을 맞춘다. 특히 잘못될 경우 인간뿐만 아니라 환경마저도 파괴된 현장이 떠올려진다. 그런 불완전한 존재가 '생각'을 하다니 이 무슨 조화의 산물인가. 그것도 '무한한 상상력'이라는 표현으로. 혹자는 인간의 무한한 상상력이 오늘날 인류의 진화와 사회의 발전을 안겨다 준 기저로 이해하기도 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무한한 상상력을 펼치는 인간들이 살고있는 지구는 한정적(限定的)이다. 끝없는 팽창을 담보하는 곳이 아니다. 그래서 달과 화성에까지 진출하려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이래저래 대단한 존재임엔 틀림없다. 500년 전 조선사람이 달에 인간의 발자국이 찍히리라 과연 생각이나 했을까. 오늘날 이를 실현에 옮기다니 그저 인간의 지적창조(知的創造)가 두렵기까지 하다. 그렇다보니 500년 후 미래는 혹시 이 지구가 오염덩어리로 뒤덮여 우주의 쓰레기가 되지 않을까 염려되기도 한다. 수많은 상상력의 한 가닥에 다음과 같은 생각도 더해 보자. 혹시라도 '새까맣게 그을린 대지'가 펼쳐지지나 않을까 하는 기우(杞憂)말이다. 아니 두고두고 생각해볼 문제이기도 할 것이다.

"인간은 자신들이 나서 자란 곳을 자신들이 폐기까지 할까 말까?"

이제 말을 돌려 지구를 중심으로 보자.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 가운데 인간만이 지구의 지배자인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오죽했으면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말이 다 나왔을까. 이렇게 되면 지구는 오히려 인간만을 위해 제공된 터전으로 생각하기 쉽다. 특히 서양인들의 관점이 그렇다. 에베레스트를 오르고, 남북극을 정복한 최초에는 서양인들이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지구상의 모든 인종과 개체 및 자연을 자신들이 알아야만 하고, 분석하여, 나아가 지배하려 든다. 그들의 눈에 지구는 단지 무생물일 뿐이다. 쓰다가 다되면 버리는, 아니 버릴 수밖에 없지 않느냐 하며 애써 변명까지 하기도 한다.

그런데 지구는 하나의 생물체다. 살아있는 유기체다. 적어도 내 눈에는 이런 생각이 깊었고, 지금도 깊다. 동양에서는 자연이 일으키는 모든 현상에 나름대로의 의미를 부여한다. 그것이 오늘날에 와서 다소 허망한 내용으로 밝혀질지라도. 오죽했으면 천둥 번개 친다는 이유로 임금님께서 드시는 진짓상에 반찬 가짓수가 줄어들었을까. 그래서 동양인은 인간 상호간, 또는 인간과 자연간 서로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려고 애써왔다. 자연과 인간을 동일시하려는 사상은 그만큼 동양에서 그 뿌리가 깊다.

19세기 이후 제국주의가 몰려들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서세동점(西勢東漸)이 전개됐다. 서양인들이 동양을 유린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서양인들의 물질문명은 우리의 정신문명을 압박하며 우리보고 따라오라고 했다. 그들은 지금도 자신들을 선진국(先進國)이라 부른다. 안타깝게도 동양도 그들이 말하는 선진국이 되려고 애쓴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거꾸로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수천년 이어져온 갯벌을 놓고 이야기 해보자. 독일에서는 갯벌의 간척이 오히려 엄청난 재앙으로 다가와 환경 파괴를 경험하고 나서 이제는 예전으로 되돌리는 작업을 추진 중에 있다 한다. 우리는 어떤가. 좁은 국토라는 이유로 또는 농경지 및 삶의 터전 확대라는 명분으로 여기저기 간척을 해왔고 또 하고 있다.

이제 동서양을 막론하고 지구를 다시 한 번 더 얘기해보자.

여기저기 간척을 한다. 일산화탄소를 배출한다. 원자폭탄을 터뜨린다. 종(種)을 변형시킨다. 생명을 연장시킨다. 심지어는 생명의 생산까지도 이루려고 한다. 그런가 하면 핵무기를 제조하고 이로써 상대방을 위협한다. 먼저 만든 나라는 계속 보유하고 자신들 이외에는 만들지 말라 한다. 산을 깎고 강을 막는다. 기후까지 좌지우지하려 든다. 심지어 위성 쓰레기까지 하늘에 내버린다.

누가 하는 일인가? 우리 인간이 하는 일이다. 도대체가 한정된 지구에서 공존하려는 지혜를 발휘하지 않는다. 결국에는 서로 제 살 깎아먹는 황폐한 현장만이 남는다. 어려워도 함께 살려는 생각을 잘 하지 않는다. 우리끼리, 우리와 자연끼리 서로 도우며 사는 길을 찾으려고 하지 않는다. 한정적인 지구에서…

이제 제주도를 얘기하자.

간척을 하지 말자. 일산화탄소를 포함한 오염가스 배출을 내지 말거나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자. 인간 살상 무기를 제조하지 말자. 종을 변형시키지 말자. 명(命)대로 살게 하자. 생명을 탄생시키자. 상대방을 완력으로 위협하지 말자. 자신만 가지고 남은 가지지 말라고 하지 말자. 산을 깍지 말자. 물길을 막지 말자. 쓰레기를 안 보인다고 아무데나 버리지 말자. 소수가 넓은 땅을 차지하며 즐기는 곳은 폐기하자. 자연을 지배하는 기계를 설치하려 하지 말자. … …

보존시키면서 홍보하자.
역사를 파헤쳐 이를 알리자.
한정된 곳이기에 사유(私有)보다는 공유(共有)를 강조하자.
늘 자연과 인간이 함께 사는 곳임을 알리자.
그래서 제주도는 지구촌 평화지역임을 알리자.

지혜를 짜내도 그 목표와 방향성을 직시하자.
원자폭탄을 만들었던 과학자의 후회를 곱씹자.
환경 파괴에 후회가 가능할까. 아니다. 그냥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사라지게도 할 수 있고, 생산하기도 하는 절대 존재인가 ?
지구는 하나고, 제주도도 하나다.
쓰다 더러워지면 그냥 버려도 되는 곳이 아니다.

자본의 논리로 접근해서는 더더욱 안 된다.
좀 더 쉽게 '돈 된다' 라는 논리로 제주도를 이끌어서는 안 된다.
자꾸 제주도를 '개발'하기 위한 종합계획을 세우거나 수정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제주도를 덜 파괴하며 잘 보존할지를 생각하는 계획을 세우자.
와서 보고 즐기며 돈 쓰고 가는 관광지로만 제주도의 미래를 규정짓지 말고,
와서 생활하며 느끼며 오히려 배우고 가는 생태·평화지역으로 제주도를 만들자.

우리끼리, 제주와 한라산끼리, 서귀포와 태평양끼리 함께 살려고 하자. 서로 존중하며…

2003. 9. 1 (월)
<홍기표의 제주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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