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자의 아름다움을 보고 싶다

경기도 용인에는 애버랜드가 있다. 우리나라 최대의 놀이공원이다. 바로 그 놀이공원 뒷산에는 호젓한 호수와 더불어 호암미술관이 있다. 주변 경관이 아름다워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는 딱이다. 대신 차 없는 서민들에게는 접근성이 빵점이다.

큰 맘 먹고 하루 문화생활을 누려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찾아가기 어려운 곳이다. 마치 국내 유수의 고미술품을 소장하고 있기에 가급적이면 지체 높으신 분들만 모신다고 뽐내는 것 같다.

우리의 귀중한 문화유산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배려하지 않은 것이다. 이처럼 호암미술관은 입지선정부터 다소 개운치가 않다.

호암미술관은 1984년 4월 22일에 개관하였다. 개관 20주년을 앞둔 제법 연륜을 갖춘 미술관, 아니 박물관이다. 우리나라 박물관 등록법에 사립박물관으로 올라 있기 때문이다.

'호암'은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의 아호란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부친인 이병철이 30여 년에 걸쳐 약 1,300여 점의 문화재를 수집·보존해 오다가 드디어 준공과 더불어 이 곳에 공개하게 되었다. 일단 고인이 되신 이병철의 문화재 애호정신을 높이 사는 바이다.

호암미술관은 삼성문화재단 산하에 있다. 이 삼성문화재단 이사장에 삼성그룹 회장인 이건희가 겸임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따라서 사립박물관인 호암미술관은 사실상 이건희가 소유주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의 아내인 홍라희가 현재 호암미술관장으로 재임중이다. 홍라희는 서울대 미술학과를 졸업했기에 제법 전문인으로서 자격을 갖추고 있다 한다.

호암미술관의 장점은 재벌인 삼성그룹의 지원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예·결산에 관한 한 사립박물관 중에서는 가장 넉넉한 재정 운영을 도모하고 있다.

이것이 호암미술관을 우리나라 최대의 사립박물관으로 키우는 바탕이 된다. 특히 호암미술관 내의 문화재보존연구소는 국립문화재연구소와 더불어 주요 문화재의 과학적 보존처리에 그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다.

이처럼 호암미술관은 첨단 기자재와 우수한 인력의 확보로 우리나라 문화재계에 큰 일익을 담당하고 있기도 하다.

한편, 호암미술관의 전시 및 소장 유물은 주로 고미술품이다. 아마도 국립중앙박물관을 제외하면 우리의 귀중한 문화유산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를 들어 국가지정문화재로 국보(國寶)는 총 306호 중 35호, 보물(寶物)은 총 1.380호 중 76호를 보유하고 있다. 국립경주박물관이나 국립공주박물관도 국보급 문화재를 10여 점 보유하고 있는 것에 비하면 단연 돋보인다.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금강전도 등을 보고 싶으면 이 곳에 가야 한다. 단원 김홍도의 국보 작품 군선도병((群仙圖屛)도 호암미술관에 있다. 그 외에 김득신·신윤복·강세황·장승업의 그림도 이 곳에서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각종 금동 불상·보살상도 다수가 국보·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청자양각죽절문병 및 청자조각쌍사자두침 등 귀중한 도자기, 수월관음도·아미타삼존도 등의 불화(佛畵), 다수의 사경(寫經)도 소장하고 있다. 가히 국립중앙박물관에 버금가는 귀중한 고미술품의 집합처이다.

이제 호암미술관의 홍보자 노릇은 그만해야 할까 부다. 자칫 오해를 살까 두렵기 때문이다. 정작 필자가 하고 싶은 말은 다음부터이다.

호암미술관 소장 국보 총 35호 중 23호, 보물 총 76호 중 67호의 소유자는 삼성문화재단이 아니라는 점이다. 놀랍게도 관리자는 재단, 소재지는 호암미술관이지만 소유자는 이건희로 등재되어 있다.

물론 우리나라 국보·보물 등의 국가지정문화재가 개인 소유로 등재되어 있는 것은 이건희만이 아니다.

일제 강점기 일본으로 유출될 뻔한 귀중한 문화재를 사재를 털어 구입하여 지켜낸(?) 간송 전형필의 유품도 그 후손의 소유로 서울 성북구의 간송미술관에 전해오고 있다. 이 외에도 종갓댁 등에서 가보로 물려져 온 귀중한 문화재도 다수가 개인 소유로 등재되어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사유재산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얘기하는 자체가 필자로서도 별로 내키지 않는다.

또한 문화재를 사랑하는 순수한 마음에서 그것도 사재를 털어 귀중한 유산들을 어렵사리 구입한 사실까지 폄훼하고 싶은 것은 더더욱 아니다. 문화재단을 설립하고 미술관을 건립하여 많은 이들에 소개하기까지 한 것은 오히려 평가해 줄 만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최대 부자 중 한 사람인 그가 다수의 국보·보물들을 이건희 소유로 등재한 사실까지 이해해 주십사 한다면 왠지 상쾌하지가 않다. 더군다나 그는 우리나라 최대의 재벌그룹 회장님이시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주시하며 소위 대한민국의 경제 향방을 논하기까지 한다. 그 휘하에 삼성의 이름으로 밥벌이하는 사람 역시 부지기수이다. 그런데 그 수장인 이건희가 개인으로서는 최대의 국보·보물의 소유자라는 사실까지 덧씌워진 현실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조금 서럽기까지 하다.

이제 결론내자. 필자의 주장은 간단하다. 그의 소유로 등재된 국보·보물급의 문화재는 최소한 삼성문화재단으로 그 소유권을 넘기는 것이 옳을 듯하다.

또한 삼성문화재단 이사장직에서도 물러나 학계나 문화재계에서 신망있는 분을 위촉하여 그에게 전적인 권한을 위임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단 재정 지원만큼은 지금처럼 아끼지 않으면서 말이다.

더 나아가 최소한 국보·보물의 문화재만이라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하는 것이 어떨까 한다. 그리하면 국립중앙박물관도 그의 부친 또는 그의 이름을 딴 별도의 전시실 설치를 약속하지 않을까 추정도 해본다. 더군다나 용산에 국립중앙박물관이 이제 몇 년 뒤면 완공된다고 하지 않는가.

또한 국립중앙박물관의 소장품이 되면 전국 국립박물관 순회 전시도 가능해질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막 개관된 제주국립박물관에서 우리 제주민들도 겸재의 금강전도를 감상할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꿈같은 일인가? 이런 점에서 앞으로 수십년, 수백년이 지난 후에까지 본인의 이름을 남기려면 오히려 기증이 최선의 방법이 될 수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서두에 필자가 얘기한 일반 서민들도 우리 조상들이 남긴 귀중한 문화유산을 감상할 기회를 더 많이 가지게 되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사유재산을 보장하는 민주공화국이다. 필자는 결코 강권하지 않는다. 그가 싫으면 안 하면 된다. 그렇다고 그에게 욕도 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동시대인으로서 마음속 한켠에 좀 무겁고 답답한 기운만 남을 뿐이다. 그것은 필자의 몫이다. 그 정도야 자본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필자가 감내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제 이건희의 아름다운 결정에 기대를 걸어본다.

2003. 9. 16(화) 홍기표
<홍기표의 제주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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