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후손을 위해 통일국가의 비전을 갖자

우리는 분단의 자식들이다. 남에서 태어났다. 북에서 태어났다. 이런 것들이 우리 삶을 알게 모르게 규정짓는다. 마치 한국에서 태어난 것과 미국에서 태어난 것이 다르듯이…. 서로 자신의 세계만이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 대한민국이 한반도 유일의 정통정부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주체적이고 자주적인 한반도 역사의 계승자이다 하면서….

최소한 분단이 지속되는 상황에선 은근한 체제간의 경쟁논리가 늘 앞선다. 심지어는 경제력의 차이로 우위를 논하기도 한다. 머리와 가슴은 온데 간데 없고 몸뚱아리가 누가 큰지 따지는 어리석음을 즐기기까지 한다.

흡수통일이니 평화통일이니 적화통일이니 하는 말들이 귀를 간지럽힌다. 다른 생각을 좀처럼 하려 들지 않는다. 특히 언제 있을지 모를 통일 후의 나라에서 생각하려는 자세 말이다. 아마도 통일 후 태어나는 우리 후손들은 더 이상 남북을 다른 나라로 보지 않을 텐데….

통일 후 후손들은 남과 북을 똑같이 우리의 조국으로 공부하게 될 것이다. 해방 후 남과 북에서 있었던 제반 사건들을 어느 한 쪽이 아닌 통일 조국의 입장에서 대등하게 이해할 것이다.

그들이 바라보는 분단은 현재 정치권의 정략적 의도로 지속되는 영호남 지역갈등 정도로나 이해할까. 다시 말해 남과 북의 정권 담당자들이 서로 체제 유지를 위해 정략적으로 분단을 고착화 시켜갔다고 볼 것이다.

마치 오늘날 우리가 신라와 발해를 남북국시대로 이해하듯이…. 신라도 우리 역사이고, 발해도 우리 역사이다. 두 나라 사이의 체제 경쟁 따위는 그리 중요치가 않다.

먼 훗날에서 보면 서로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는 어린애들의 장난 같아 보인다. 그런 주장 따위가 오늘날의 역사에는 남아 있을 수가 없다. 두 나라가 펼쳤던 제반 정책들과 당시 당과 왜와의 국제관계 속에서 보여줬던 두 나라의 역할을 대등하게 보는 시각만이 역사에 기록될 뿐이다.

100년이 흐른 후 통일국가의 국사 교과서

이제 50년 뒤, 100년 뒤 우리 후손들의 국사 교과서를 들여다보자.

1945년 8월 15일. 대한민국은 일제 식민지에서 해방됐다. 그러나 원치 않게도 미·소(러시아의 전신)에 의해 38선이 나눠져 미·소 군정이 시작됐다. 결국 3년이 지난 뒤, 우리 민족은 두 개의 정부를 한반도에서 탄생시켰다. 1948년 8월 15일 남쪽에서 먼저 대한민국 정부가, 북쪽은 그 해 9월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를 수립시켰다.

1950년에는 소위 동족상잔(同族相殘)이라는 한국전쟁도 겪었다. 이 전쟁에는 미군과 UN군 및 중국군과 소련 등의 참전이 잇달아 국제전으로 비화되었다. 그 와중에 한반도와 우리 민족은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당시 냉전(Cold War)이라는 국제정세의 흐름을 현명하게 극복치 못한 결과였다. 남과 북, 두 개의 정부는 미국과 소련의 이익이 아닌 우리 민족의 미래를 내다보는 거시적인 안목과 상호 이해가 부족했던 것이다.

그 후 남과 북은 서로 치유할 수 없을 정도의 대립각을 세우면서 소모적인 국력 낭비를 지속해 갔다. 남과 북에서 국가 예산의 20%를 상회하는 군비 지출이 일상적으로 이어졌다. 이로 인해 남북의 국민들은 보다 인간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권리를 장기간 포기해야만 했다. 심지어는 '빨갱이', '수구꼴통'이라는 원색적인 상호 비방이 늘 우리 민족을 짓눌렀다.

무한한 사상의 자유가 보장되는 지금과는 달리 사회 운영의 원리가 다소 원시적이었던 것이다. 즉 어느 한 쪽의 입장만을 지지하라는 정권 담당자의 유치한 강요가 우리 민족을 가슴속까지 상처 입혔던 것이다. 더 나아가 다른 쪽을 적대시까지 하라는 비이성적인 이데올로기의 주입이 횡행했다. 이로 인해 당시 남과 북의 많은 사람들은 인간성의 황폐화를 경험하는 일이 적잖았다.

이제 통일이 된지도 수십 년이 흘렀다. 통일 직후 얼마간은 상호 이해를 위한 진통의 세월이 필요했다. 분단의 갈등으로 황폐화한 인간성을 회복키 위한 고통도 뒤따랐다. 남과 북의 국민들이 서로 우리는 분단 정권의 희생양이었구나 라는 사실을 깨닫는데는 그리 오랜 세월이 걸리지 않았다. 통일 조국의 위상을 정하는 국민적 합의가 점차 진행되었다. 다소 진통의 나날도 없지 않았지만 우리 민족은 현명하게 극복해냈다.

통일조국은 중국·일본과 당당히 동북아 3자의 중심축으로 우뚝 서는 지혜까지 발휘하였다. 과거 미국과 러시아의 군정을 경험했던 우리가 이제는 그들을 향해 더 이상 힘의 논리로 지구촌 사회를 우롱하지 말라는 충정 어린 경고도 하게 되었다. 그들도 상호 존중의 외교관계 수립을 위해 지극히 상식적인 우리의 제언을 흔쾌히 환영하게 되었다. 제3국에 의해 갈갈이 찢겨졌던 민족의 자존심이 서서히 제자리를 찾게 되었다.

교과서 얘기는 그만 하자. 그리고 제발 이 점만은 잊지 말자.

서로를 헐뜯고 자신의 이익과 입장만 강조하는 어리석은 존재가 되지 말자. 늘 후손에게 당당한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려는 인식이 필요할 뿐이다. 더군다나 도구로 사용되었던 과거 자신의 인간성을 호도하기 위해 여론을 선동하는 정형근 같은 이는 절대 되지 말자. 어쩌면 그가 불쌍해 보이기도 한다. 역사 앞에선 한낱 지푸라기도 안돼 보이는 그에게 휘둘리는 대한민국이 분단의 남쪽이었다는 사실이 후손에 부끄럽기까지 하다.

어차피 체제와 분단내의 실정법이 중요한 사람들에게는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현실만을 최고로 알면서 살기 때문이다. 근시안적으로 살아가는 그들에게 더 이상 기댈 것은 없다. 그저 동시대인인 것이 가슴 아플 뿐이다.

"이제 우리는 통일의 세계관을 갖자"

독일에서 살던 송두율 교수가 입국했다. 그것도 가족과 함께. 그가 북쪽의 노동당원이었든, 정치국 후보위원이었든 오늘날의 남쪽에선 얘깃거리가 될지 모르지만 먼 훗날 통일조국의 후손들 입장에선 그리 중요치가 않다. 몇 년 전 남과 북의 최고 지도자들끼리 만나 악수까지 나눈 마당이다. 송교수를 가슴으로 끌어안는 포용력도 분단의 남쪽에선 엄연히 존재한다.

이제 통일을 염두에 둔 세계관을 가지자. 더 이상 분단의 이데올로기에 빠져 대한민국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를 외치지 말자. 통일조국의 국호를 생각하자. 그리고 통일조국의 나라에서 남쪽과 북쪽을 바라보는 시각을 갖자. 북쪽에서 살든, 제3국에서 살든, 남쪽에서 살든 한민족끼리 아무 장소에서나 한 데 모여 민족의 미래를 얘기하는 자리를 자주 만들자.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두려움 없이 미래를 개척해 나가자. 그 자리에는 남쪽의 정치권과 지자체 등에서 서로 공생하기 위해 마시는 양주보다 쐬주가 제 격일 것 같다. 언젠가 송교수와 쐬주 한 잔 할 날이 있겠지….

2003. 10. 5(일) 홍기표.
<홍기표의 제주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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