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과 함께 하는 송년회

▲ 가시를 간직한 꽃들 ⓒ 김민수
그들은 언제나 우리의 곁에서 우리와 함께하고자 했습니다. 인간들로부터 받은 수많은 상처들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들이 간직한 가시로 사람을 찌르지 않고, 늘 사람들에게로 다가왔습니다. 올 한해도 그들이 있어 행복했고, 그들이 있어 살만했고, 그들이 있어 절망하지 않았고, 그들을 통해서 세상을 보았습니다.

어느새 한 해가 저물어갑니다. 저 남녘땅 제주에는 수선화가 제 철을 만나 화들짝 피어있을 것입니다.

아가들은 우리를 행복하게 합니다. 그들의 맑고 환한 웃음이 없었다면 참으로 밋밋한 세상을 살아갈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꽃들 중에도 '애기'자가 들어간 이름을 가진 꽃들이 많습니다. 그들을 만날 때마다 아가들을 만나는 것 같아 또 행복했습니다.

어느새 한 해가 저물어갑니다. 그런데 그 꽃들은 해마다 '애기'로 태어납니다.

뿌리가 되었든 꽃이 되었든 이파리가 되었든 독이 있든 없든 그것을 어떻게 다스리는가에 따라서 독이 되기도 하고 약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네 몸에 모실 수 있는 꽃들도 있어 우리의 육신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 '애기'자가 들어간 꽃들 ⓒ 김민수
▲ 식용할 수 있는 꽃들 ⓒ 김민수
그들 안에 우리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것들이 그렇게 많이 들어있는지는 몰랐습니다. 물론 욕심으로 모시면 독이 되겠지만요.

어느새 한 해가 저물어갑니다. 사람들에게 소용없는 '잡초'는 하나도 없습니다.

▲ 순백의 색깔을 간직한 꽃들 ⓒ 김민수
저마다의 빛깔을 가지고 피어나는 꽃들, 흙에는 수없이 많은 물감이 들어있는가 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갖가지 빛깔로 꽃이 피어날 수가 없겠지요. 그 많은 색깔 중에서도 순백의 색은 신비롭기만 합니다. 그들 앞에 서면 나도 모르게 순백의 마음을 잃어버린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어느새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새해 첫날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도화지에 우리는 무엇을 그렸는지요?

▲ 이름이 못 생긴 꽃들 ⓒ 김민수
이름이 못 생긴 꽃들도 있습니다. 이름은 못 생겼어도 그들의 심성은 곱기만 합니다.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억울한 일이겠지요. 그들의 이름만으로 그들을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눈으로 보고서야 왜 그 이름이 붙여졌는지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꽃들, 그 이름을 붙여준 이의 상상력이 신비할 따름입니다.

어느새 한 해가 저물어갑니다. 내가 누군지 한 단어로 설명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 바다근처에 피는 꽃들 ⓒ 김민수
태풍이 불면 파도가 넘쳐오고, 바닷물을 맞은 풀은 타서 죽어버립니다. 그런데 그 척박한 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꽃들이 있습니다. 삶이 힘들 때면 그들이 위로를 해주었습니다. 그렇게 그 곳에 자라주는 것만으로도 희망의 씨앗을 세상으로 날려보내는 그들의 삶, 그들이 있어 행복했습니다.

어느새 한 해가 저물어갑니다. 내가 존재함으로 인해 그 누군가가 행복해 할 수 있길, 웃음지을 수 있길 바랍니다.

▲ 꽃의 결실 ⓒ 김민수
꽃이 진 자리에 열매가 맺힙니다. 꽃이 피어난 이유지요. 꽃이 피었다고 다 열매를 맺는 것은 아닙니다. 열매가 되지 못하고 낙화한 꽃들, 그들이 있어 결실을 맺은 것이니 떨어진 꽃들에게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 한 달여 뒤면 육지에도 다시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할 것입니다. 만나고 싶었지만 만나지 못한 꽃들, 내년에 꼭 만나고 싶은 꽃들이 있습니다.

어느새 한 해가 저물어갑니다. 이제 잠시 숨을 가다듬어야 할 시간인 것 같습니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시간에 나의 삶을 풍성하게 하여 준 꽃들을 하나하나 바라보면서 한 해를 보내고 있습니다. 바깥날씨가 추워도 마음은 따스해 집니다. 그것이 들꽃의 힘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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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을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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